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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시 19:7~11 2020-01-12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성장에는 반드시 섭취 즉, 음식물을 먹어야만 하는데 요즘 우리의 건강 상태를 보면서도 이러한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주로 좋아 하는 음식에 따라하서 건강 상태가 만들어지고 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하여 보조 식품이나 vitamin을 먹는 일이 일반적인 삶의 과제가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0) 라는 고백을 읽게 되는데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비싼 24K 순금보다 귀하게 여기고 가공하지 않은 벌집에 들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 꿀보다 더 달게 여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표현을 시119:103에서 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좀더 구체적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혼이 자라가야할 가장 귀한 음식으로 여기며 고백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일정하게 섭취해야할 영적인 음식이고 우리 육신의 음식을 먹음같이 영적으로 균형있는 성장을 위해서 영적인 식물을 올바르게 섭취할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권면해 주고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고른 영양소의 필요가 육신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육신은 100년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영혼은 영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또 이런 영혼의 건강 상태도 우리 각자의 육신이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 못지않게 영혼의 건강 상태를 마음에 두고 살아야만 할 참으로 중요한 과제다.



Ⅰ. 영적인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음식으로 여긴다.(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오늘 날 완전한 음식을 구하기가 어렵고 찾아낸다고 해도 그 가격이 훨씬 비싸다.(유기농으로 재배한 것들은 그렇다.)

여기 두절에 나타나는 중요한 생명의 재료는 “율법”과 “교훈”이다. 물론 다음 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경외하는 도”나 “여호와의 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적어도 성경에서 주어지는 율법이나 교훈을 비롯한 모든 말씀의 목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과 “교훈”을 묘사하기를 “완전하여” “확실하여”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구촌이 온 갓 삶의 쓰레기들로 말미암아 오염되어 망가져서 땅에서 나는 식물이나 바다의 생선들은 물론이고 육고기 조차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의 세상에 과연 완전하며 건강을 확실히 보장할 먹을거리가 있는가!’ 묻는다면 확실한 답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육지의 채소나 곡식들은 농약이나 환경오염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 어렵다. 먹을 수 있는 가축 역시 성장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약을 먹이고(양어장의 항생제 사용) 본래의 사료들이 아닌 인공사료를 먹이는 것이나 유행성 가축질병이 범람하고 있다.

바다에는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이 산을 이루고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바다의 새들이나 고기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꺼림찍하고, 방사능 오염이 된 생선들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생선이 드문 상황이다.

그러나 세상의 육신의 음식이 이렇기 때문에 영적인 식물에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가 염려할 수 있지만 다행히도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라는 말씀과 함께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라고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영혼을 소성시키며” 라는 결과를 확신할 수 있다. 좋은 음식들은 기력이 쇠한 사람들에게 원기를 다시 회복 시켜주는 것처럼;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되살아나게 하는 영적인 건강회복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세상의 많은 치료를 위한 약품들은 치료의 역할을 하는 대신에 좋지 않은 역할도 해서 부작용이라는 것 때문에 우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라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온다.

우리 육신의 음식들도 머리를 똑똑하게 하는 약제들이나 음식들이 있는데 주로 등푸른 생선을 먹을 때 [DHA] 나 [키토산] 같은 것들이 그런 영향소라고 하고 한약에 [총명탕] 같은 것들은 머리를 잘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제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참으로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이나 “여호와의 증거”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읽고 그 교훈을 항상 듣는 사람들이 그럴 수 밖에 없다. 요즘 이런 하늘의 지혜나 교훈이 잘 못 사용되는 일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약속은 분명하다.

이런 신앙적 고백을 역시 119편에서 쓰고 있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시119: 99~100)

영혼의 양식인 성경을 읽지 않으므로 영적으로 허약하고 어리석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을 경계로 가질 수 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8)

여기서도 역시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교훈”과 “여호와의 계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건강보조식품이나 약품은 과대포장 선전하여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역시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라고 하였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니 정직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순종하는 자들을 틀림없이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게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바른 표현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어두운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빛나게 한다는 약속이다.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 영혼의 눈을 밝게 해주는 생명의 교훈이다.

계시록 3:14~ 에서부터 라오디아 교회를 향하여 탄식하면서 v18b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당부를 하신다. 결국 우리의 영혼의 눈이 건강해야 천국을 가는 길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직한 교훈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한 말씀은 “눈을 밝게 하시도다”라는 영적 건강에 귀중한 영양소임을 증거하고 있다.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시키며,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시도다” 모든 신령한 몸의 건강을 증진시킴을 확인하게 된다.



Ⅱ. 영원까지 의로움으로 키우는 생명의 양식이다.(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세상의 어떤 음식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정결할 수 있을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2~3)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두 사도의 고백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장에 필요한 요긴한 양식임을 증거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생명의 양식임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라고 기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먹는 즐거움이 있는가!

역으로 이야기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는가? 시편기자는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119:131) 사실 못먹고 살던 시절에 음식 앞에서 헐떡거리는 모습은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아도 굶주림을 모른다면 심각한 영적인 상태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싶어 헐떡이는 모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데서 육신의 음식을 헐떡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말씀에 대해 헐떡일 수 있는 영적으로 굶주림을 경험하는 자가 할 수 있는 고백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라는 표현이다.

물론 사람들의 입장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려먹는 것으로 건강을 잃게되는 입장에서는 입에 단 음식만 찾는 것은 문제가 되고 특히 이런 것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더 큰 성장의 장애가 된다. 이것은 영적인 음식의 편식에서도 균형있는 성장에 역시 문제가 된다.

그러나 다윗이 고백하는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나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라는 말씀을 대하는 자세의 표현들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경외감으로 섭취한다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음식을 먹지 않고 건강을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Diet 를 한답시고 음식을 먹지 않고 살을 빼다가 오히려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영적인 Diet 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결과로 육신은 건강한데 영혼은 홀쭉하게 마른 신앙한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늘 굶주림을 느끼고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렘15:16) 라거나 주님의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는 장성한 건강 상태로 날마다 천국을 향해 더욱 자라가는 …



Ⅲ. 조심하며 꾸준히 행하여 큰 상을 받는다.(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콤하게 먹고 꾸준히 활동하여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 큰 상을 받게 될 것임을 확인한다. 좋은 음식만 많이 먹고 활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비대해지고 건강을 잃게 되는 경우들을 본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은 억지로 라도 걷고 운동을 하여 육신의 건강을 지켜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이럴진대 영원을 위한 건강을 위하여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정결한 영혼의 양식을 거져 얻어 먹었다면 그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꾸준히 그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먹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은 동일하게 항상 경고를 주신다. 앞에서 우리 영혼의 양식이라고 나누었던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은 모두 우리 하늘을 향해 가는 天路歷程의 백성들에게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최종적인 영광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영적인 활동을 해야 에너지를 필요로 하여 말씀을 필요로하게 되고 사모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활동이 없는 사람이 배고픔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원리는 영적으로도 그대로 이다. 영적인 활동을 열심히 함으로 영적인 양식에 배고파하고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신앙적 이치이다.

또 영적인 활동이나 운동을 교회생활 하는 것에만 고정하는 생각들을 더러 가지고 있는데 역시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교회활동은 영적인 힘을 보충하고 격려와 소망을 키우기 위한 일부분이다.

교회에서 듣는 메시지 역시 이것이 영적인 삶의 에너지로서 일부분일 뿐이지 전체가 아니다. 문제는 매 주 듣는 메시지 조차도 듣지 못하고 스스로 말씀을 찾아 먹지 못할 때 그 영혼은 파리해 갈 수 밖에 없다.

우리 육신이 규칙적인 식사가 필요하듯 영적인 규칙적인 식사는 교회의 모임에 참여하여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온전하지 못하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영적인 갈등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기도할 때 이웃으로부터 들려오는 “들어 읽으라, 들어 읽으라(Tolle lege, Tolle lege)”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서 로마서를 읽는 가운데 회개에 이를 수 있었다는 내용은 유명한 일화이다.

성경은 말씀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OT, NT를 막론하고 수없이 당부히고 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6~7)

마지막 책 마지막 장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여기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을 쉽게 이해하면 ‘잠긴 상태로 두지 말라’ ‘덮어두지 말라’ ‘가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덮어둘 책이 아니라 펼쳐 읽어야 될 책이다.

자주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영의 양식인 성경 말씀은 어려운 내용이라서 꼭 누가 해설을 해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말씀을 읽는 것 자체부터 영적인 훈련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바른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일어난 복음의 역사를 소개하면 된다.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사랑은 나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꼭 조직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특별히 학문적일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죽으셔서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나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죽음에서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셔서 지금도 나의 부족함과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며, 이 역사의 마지막에 그를 사랑하는 나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이보다 더 호소력있는 복음은 없다. 나의 삶 속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요 나만이 증거할 수 있는 고백이자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생명의 능력이다.

어쩌면 이러한 당부의 말씀이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1) 라는 말씀이다. 경고는 반드시 받아 들여야만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는 더욱 중요하다.

또 하나의 귀중한 약속은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먹고 그 말씀이 주시는 교훈을 받아 들이면 마지막에는 상을 주시는 그 상은 세상에서 너도 받고 나도 받는 상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으로는 받을 수 없는 큰 상이다.

그 상은 아직 우리의 눈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성경에 약속하시는 것으로 봐서 생명의 면류관일 것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b)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키며”, “눈을 밝게 하시도다” “영원까지 이르고”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건강한 성장을 가져오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먹어도 과식이 되지 않는다.

이 말씀은 꼭 신학을 공부해야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진보와 성장을 위하여 인공적인 조미료를 전혀 섞지 않은 나를 살게 하고 우리를 살게하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매일 세끼의 식사를 하듯 규칙적으로 충분히 섭취함으로 영혼이 늘 소성함을 얻고 영적인 눈이 늘 밝아서 천국을 볼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