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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1:33~46 2005-10-23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막12:1~12; 눅20:9~18

우리는 앞에서 이미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로는 순종하고 행동으로는 거역한 아들과 그와는 반대로 비록 말로는 불순종하였으나 깨닫고 회개하여 행동으로 순종한 아들의 비유를 논한바 있고 주께서 이것을 역시 이스라엘에 비유하고 계신 것임을 생각했다.

이 포도원의 비유 역시 그리스도에 대해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을 거역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이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 말미에 메시야 예언에 이스라엘이 가장 익숙하게 인용하고 있는 시편 118:22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메시야를 거역하는 자는 형벌 받을 것임을 강하게 경계하신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비리를 구약의 역사와 예언을 들어 증거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노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를 추종하는 까닭에 역시 무리를 인하여 분감을 삭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는 내용은 구약성경에서도 더러 나타나는 비유들이다. 시편80:8~16아삽은 애굽에서 가져다 열방을 쫓아내고 심으신 포도나무가 강성하였지만 주께서 담을 헐어 버리시므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들짐승에게 상한다고 탄식하면서 회복시켜 달라는… 하소연을 올리는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이사야5:1~7 주님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를 맺은 것에 대한 탄식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비슷한 내용을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2:21)

에스겔15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포도나무의 가치가 나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 있다고 증거하면서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 나무는 땔감 외에 소용되는 데가 없다고 경고하신다. 다시 에스겔 19장에서는 포도나무에 어울리지 않는 높이의 큰 가지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교만에 대한 경계를 주고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호10:1) 라는 번성할수록 우상숭배에 빠지는 이스라엘에 대해 탄식하신다.

이런 모든 비유들의 공통점은 포도나무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반면에 오늘 본문의 비유는 포도원 관리자들에 대한 경계의 내용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사실에 있어서 불성실한 포도원 관리들로 인하여 포도원의 가치를 잃어버린다고 하는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시지만 그러한 주님의 일깨워 주심에도 반항하고 거역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예수를 제거해야 겠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양심에 화인 맞은 모습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할 때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해서 깨어지고 부서지는 데 까지 완악한 사람들은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대중들의 눈치에 의해서 행동을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Ⅰ.포도원 주인의 완벽한 준비와 위임.(33~34)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이 비유의 내용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 만큼 분명하다. 집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 농부는 종교 지도자들, 집주인이 보낸 종들은 선지자들, 아들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비유의 대상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이 비유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하셔서 우리에게 주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여기 집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지게 하려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짤 큰 술확을 파고, 접근하는 도적들로부터 지킬 수 있는 전망대까지 세운 후에 소작인들에게 주고 갔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여 고칠 것이나 더 준비할 것 없이 완벽하게 해주었고 오죽하면 포도를 수확해서 즙을 짤 시설까지 갖추어 줬는가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사실 소작을 하는 농부들은 부지런히 걸음만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전정(剪定)만 잘하면 되도록 완벽한 준비를 해 준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불완전이란 허용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조차 도움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 완전무결하신 분이시다.

태초의 창조의 사역을 봐도 생명이 살 수 있는 모든 바탕을 먼저 만드시고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를 창조하심에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묘사를 창세기 기자는 계속하고 있다.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신 것도 완벽하여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낙원이었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느끼는 교회까지도 바울 사도의 고백을 빌리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고 선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약성경 속의 교회를 [원시교회] 라고 하여 완벽한 교회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약속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신약의 교회는 완벽한 교회로 법과 조직과 치리와 교제와 전도와 구성의 완벽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었다. 그런 이유에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7)

그런데 언제나 사람의 생각과 법이 더해지면서 교회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다만 맡겨주신 그대로를 충성 되게 지키고 관리하고 키워 나갈 뿐 한 가지도 모자람이나 부족하여 고칠 것이 없는 완벽한 형태로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이 이 포도원의 비유가 첫째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그리고서 열매를 거둘 시기에 열매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종들을 보내셨다고 기록되고 있다.

우리가 다음에 상고하게 되겠지만 이 마태복음25:14~30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악한 종은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 라고 평가 했지만 주인은 분명이 “…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 라고 책망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주님은 절대로 주지 않은 것을 달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실과 때가 되었다고 믿으시고 실과를 받으러 오실 것이다. 완벽하게 주신 주님께 반드시 감사로 드릴 수 있는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Ⅱ.포도원 관리자들의 악한 행동의 경계(35~42)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1.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보내진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말한다.(35~36)

하나님께서는 정당히 요구할 것을 달라고 종들을 자신의 포도원을 맡긴 이스라엘에 보내셨다. 여기 보내신 종들은 물론 하나님의 뜻을 전한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진실한 선지자들은 구약의 마당에서 이스라엘 왕이나 백성들로부터 사랑 받지 못했고 오히려 배척 당하기 십상이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19:10, 14) 이것이 불의 선지자라고 하는 이사야의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이었고, 열왕기상22장에서 400 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온 갓 좋은 말로 왕에게 아부할 때 바른 말씀을 증거한 [미가야]는 감옥에 가두고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물과 빵만을 주어 고생을 시켰다.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대하24:20~2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말씀하고 계시다.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눅11:51) 이밖에도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는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 하러 보낸 선지자들은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바른 진리를 증거 하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미움을 받으면서도 생명의 진리를 증거 할 책임이 있다.

분명히 농부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포도원을 관리하도록 위임 받은 일꾼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요 왕이든 제사장이든 다 하나님의 위임을 받고 성실히 하나님의 나라를 돌봐야 할 책임을 가진 자들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또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시도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이것은 좀더 가까이 가져와서 이해하면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고 그 교회의 주님과 머리의 권위를 도용하고 악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2.마침내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37~39)

세 번씩이나 종을 보냈지만 두들겨 맞고 죽임을 당하자 주인은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막12:6)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눅20:14~15)

이 비유는 분명이 메시야이신 예수 자신이 예루살렘 성밖의 골고다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는 증거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전하기 위해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계속 괴롭히고 죽일 뿐 아니라 마침내 만 인류를 위해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밖의 해골의 동산 골고다에서 죽이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고 물론 이것 조차도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로 쓰셨다.

오늘 우리 자신들이 욕심과 죄성으로 가득 찬다면 주님을 섬긴다는 교회 속에서 또다시 주님께 아픔을 드릴 수 있음을 경계해야만 한다.



3.자신들이 자신들의 죄를 직접 고하고 있다.(40~41)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언제나 악한 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을 성경의 여러 군데서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형 판결에서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27:24~25)라는 이 무서운 한마디 때문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대대로 수난과 죽음을 당한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분이 나면 쉽게 자신의 저주를 자신의 입으로 내뱉으면서 분노를 표시하는데 주의 해야 할 부분이다. 때문에 신앙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분감을 가져도 자신의 저주를 맹세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입장에는 분내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임을 여기서도 깨닫는다. 이런 두려운 경계를 받는 우리들은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거역하여 화를 당하는 어리석음을 당하는 자들은 한 사람도 없기를 …



Ⅲ.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42~46)

(42)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 인줄 알고 (46)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이 말씀은 시편118:22~23말씀의 인용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알 정도로 익숙한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여기서 예수께서는 물론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한 이 종교 지도자들은 그 영광의 자리를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 이 경계는 그 당시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경계로 주시는 교훈임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포도 나무의 특성은 오직 하나 열매밖에 없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쓸모없는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특히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43)는 경계는 우리 모두가 지속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결실해야 함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마태복음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셨고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는 경계도 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계의 교훈들이다.

마지막으로 경계한마디를 보고 정리하자.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44) 이 돌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교회의 모퉁이 돌이요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부딪힘을 경계하는 교훈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건 오늘 우리 시대건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2~33)고 경계한다. 그리스도께 거치는 자,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는 자는 분명 깨어지고 가루가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계로 가져야 한다. 말씀이나 비유를 들으면서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어떤 성경보다도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는 요한복음 15:1~11의 내용으로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의 긴밀성을 말씀하셨다. 예수는 자신이 참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으로써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와의 신앙적인 결속 안에 머무는 것을 새로이 권고하신다. 예수에게 붙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과실 맺음의 전제이며 또 기도 응답의 조건이다. 제자들의 삶은 그렇게 과실을 맺는 데 의미와 목표가 있다. 과실을 맺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이런 입장에서 요한복음15:1~11은 많은 점에서 본문인 마21:33~44에 병행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교회를 주셨다. 우리가 고치거나 더할 것은 없고 오로지 충성하여 열매 맺는 것 만이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여 진리의 대항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복으로 받은 이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 일꾼의 자리를 빼앗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