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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2:41~46 2005-11-28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님을 시험하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헤롯 당원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모두 한 가지도 이길 수 없었고, 이제는 주님께서 저들에게 한 가지의 구약성경의 예언을 통한 질문으로 완전히 저들의 입을 막아 버리셨고 다음 장에서부터는 저들의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거룩한척하는 위선을 책망하시는 모습을 접하게 될 것이다.(마12:35~37; 눅20:41~44)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하여 다윗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여 약속하신 신령한 복을 충만이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



Ⅰ.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정의는 바로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된다.(42f)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

여태껏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지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신앙의 지도자들 뿐만이 아니라, 주님의 곁에서 예수님의 진리를 직접적으로 들었던 군중들은 물론이고, 오늘 동일한 질문으로 묻고 계시는 주님 앞에 모든 인류는 각각으로 이 주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려야만 할 것이다. 마치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 하신 것처럼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역사 속에 모든 사람 하나 하나에게 묻고 계신 질문이시다.

1.아담이후의 모든 사람 각자에게 물으시는 질문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에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이 주님의 질문에 바른 답변을 드리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이땅에 다시 재림하신 후 심판의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라도 반드시 답변해야만 될 질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을 때 바른 답변을 드릴 수 있다면 그보다 복된 일은 없겠지만 이 역사의 말미에 심판석에 앉아계실 때에야 비로소 억지로 고백 드린다면 너무나 늦은 것이고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계시며 이 땅에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셔야 될 것을 성경의 최초 아담과 하와의 범죄 직후에 이미 선언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3:15)

그리고 많은 믿음의 조상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 역사 속에 외쳤고 이 역사의 중심에 오셔서 이 세상이 생기면서부터 이 역사가 끝날 때까지의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이 세상에 왔다가 이미 떠난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살 때 “너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고 현재와 장차 이 세상에 태어날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한 물음을 묻고 계시고 물으실 것이다.

이러한 물음은 오늘 먼저 이 질문에 바른 응답을 드렸던 사람들과 현재도 같은 응답을 드리는 먼저 택함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계속 묻고 계신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을 통해서 오시는 왕으로 알고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한 나머지 자신을 겸손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 줌으로 대대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마27:11; 막15:2; 눅23:3; 요18:33)

2.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그리스도를 인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에 덧붙여서 “뉘 자손이냐 …?” 하신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이미 자신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질문에 바른 답변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전제한바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의 동족들은 이 귀중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유대인들은 성경 속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약속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였었다. 그러나 오히려 시간과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것을 깨닫게 된 오늘 우리들이 얼마나 큰 행운아들인가를 생각케 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 즉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하여 약속하시고 보내신 그리스도야 말로 그 약속의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모든 족속이 온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약속을 따라 오신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하는 행운은 일생에 최고의 깨달음이요 행복이다. 믿습니까?

3.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묻고 계시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아들로 오실 육신적인 것은 알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저들의 생애에 지울 수 없는 오류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기 위하여 선택하신 계보가 바로 다윗의 후손이다. 성경은 이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든지, 바위가 쩍 벌어져서 그 가운데서 알이 나와서 그 알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비록 예수께서 탄생하신 이스라엘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갈4:4) 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위하여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그대로 사용하셔서 여자의 후손으로 나게 하시되 일반인들처럼 남자를 통해서 나지는 않으시고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 시키셔서 육체적으로도 우리와 완전히 꼭 같은 사람으로 나게 하셨다. 할렐루야!

그러나 비록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지만 역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과 전혀 차이가 없는 하나님이시다. 언제나 은혜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이 신성을 몰라서 바리새인들처럼 은혜를 거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100% 인간으로 100% 하나님으로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4.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신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에 따른 바른 응답은 바로 신앙의 고백이다. 이 역사 속에 오고 오는 사람들 그들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기록은 그들 개인과 그 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그들의 바른 응답이 곧 나의 바른 응답은 되지 못한다.

다윗이 비록 자신의 후손으로 날 약속을 바로 이해하고 고백을 바로 했지만 그들의 후손으로 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믿음의 조상의 고백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하여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고 만 것을 지금까지의 주님께서 답변해 주셨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본다.[요8:40b …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이 말씀을 다루고 있는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바른 고백을 드리고 순종한다면, 깨닫지 못하고 다윗을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뻐기면서 그 약속의 주님을 자신의 삶에서 쫓아내 버린 그들 보다도 더 복된 사람들이고, 당연히 같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실제적인 후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도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라거나 “우리 집안에 아무개가 믿음이 좋아서 그리스도에 대해 충성하고 있으니까..!” 라는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평가와 관계를 바로 가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 역시 또 다른 이전에 계속해서 주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그쳤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오늘 우리 각자에게 “너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계신다. 바른 고백과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



Ⅱ.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바로 알아지는 그리스도.(43~44)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에 대한 바른 답변을 드릴 수 없었던 다윗과 바리새인들과의 차이는 바로 성령의 문제임을 우리는 성경전체에서 깨닫게 된다.

1.성령만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바로 이해하게 한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다윗이라는 사람은 밧세바로 인한 범죄 후부터는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다윗의 의지를 하나님께서 성령의 도구로 움직이셔서 대부분 인간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시편을 가장 많이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사람이었다. 마태는 다윗이 자신의 후손으로 나실 그리스도를 주라 칭한 것은 성령에 의해서라는 고백을 드리고 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 [칭하다, 헬, 칼레오(kaleo) - 부르다, 하게 하다, 불리우다(요1:42 가라사대; 고전10:27 청하다)]

이것은 바울의 선언과 일치하는 것을 본다. “…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바르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에 의해서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의지인 성령을 의지하지 못하므로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참하지 못한 것이다.

2.성령만이 기록된 진리를 진리로 이해 하게 한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 약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 국가의 믿음의 영웅이었던 다윗의 기록한 그들이 늘 읽고 쓰는 시편을 인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왜 앞에서 들으면서도 그 말씀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이해하지 못했을까? 이 역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을 의지하여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는 경계를 주고 있다. 성경의 저자인 성령의 감동을 힘입지 않고서는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말씀하시는 것을 기록한 성경의 깊은 의미를 결코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 그것은 바로 성경을 성경으로 이해하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믿습니까? 오늘도 성령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기록한 이 진리의 말씀을 성령과 더불어 이해하고 소화 하므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으로 듣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3.성령만이 역시 모든 관계까지도 바로 정립하게 해 주신다.(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이 말씀은 육신의 사람들인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말씀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다윗이 아직 나지도 않은 자신의 계보에서 나실 메시야를 향하여 “주(主)”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가르침이시다.

인간적으로 헤아린다면 자신의 후손을 향하여 어떻게 존경과 찬양을 드릴 수 있었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자녀 됨의 관계,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나 자신을 위한 고난의 십자가, 그리고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라는 신비한 원리, 피가 다른 남남인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모는 신비한 관계의 원리는 다윗처럼 성령의 감동 없이는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관계의 원리이다.

즉,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관계회복을 통해서 자연과 이웃과 나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의 원리는 인간이념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관계이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인간 이념으로 한 곳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함을 느낀다. 아직도 그리스도의 교회 만큼이나 온간 인종과 계파가 자유롭게 결속되어서 오랜 세월동안 지체를 유지하는 일은 역사 속에 없다.

정치적으로도, 이념으로도, 이익 집단으로도, 오락 집단으로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얼마나 이 교회를 흩으려는 박해와 핍박이 자행되었는가? 그런대도 2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진리의 집단으로 지켜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결속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신비한 하늘의 원리가 있을 뿐이다.



Ⅲ.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원한 언약과 사역을 본다.(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인용된 본문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말씀인데 이것을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 그렇게 하셨다는 것으로 완벽하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된다.

아버지께서 아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을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는데 역시 구약성경 시편45:6의 인용이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히1:8)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말씀들이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0:30)는 말씀을 역시 유대인들에게 하심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과 하나님을 같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돌을 맞으실 뻔 하셨고, 제자인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m)이라고 아버지와 자신을 역시 동일시 하셨다.

성령의 오심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라는 정중한 소개를 하고 계신다.

때문에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거나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는 신비한 고백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사 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회계하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다.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의 전이 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에 대한 바른 정의는 바로 우리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과 직결된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 라는 말씀처럼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그리스도는 바로 알아진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은 같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성령과 더불어 말씀을 읽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주님을 대신하여 성령과 함께 이 역사 속에서 우리 주변의 각 사람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로 구속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이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주님께서 죄와 상관없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가서 이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께 온전히 하나가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