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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1:25~36 2007-09-2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아브라함의 선택과 야곱을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 주시고 애굽에서의 국가로의 번성과 큰 권능의 이적으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를 통과케 하여 마침내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에 정착케 하신 많고 많은 기적의 역사와 함께 자신의 선택한 백성으로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5~6)하셨던 하나님은 결국 선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메시야를 이 땅에 탄생시켜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실현은 정작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부터는 그 약속이 이방세계로 넘어간 듯 했지만 그것 조차도 창세전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다.

지금도 우리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고 표면적으로는 이 대한민국 같은 이방세계가 복음의 종주국 같을 정도로 땅끝을 향하여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또 하나님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으신 듯 보여지기까지 한다.

또 구원의 조건이 믿음으로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원칙에서도 아직도 불신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하실 조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하심이나 선물을 주심에 있어서 절대로 반환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자신에게 제사를 드릴 대상으로 레위 지파를 지명하셨는데 사실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제사장 직책을 할만한 특별한 충성이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끝까지 레위 가문이 충성되지 못함에도 계속 제사장 직책을 빼앗지 않는 것을 봐서도 정말 ‘그렇구나!’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시켰다가도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다른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 일반인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이 다시 구원의 중심으로 대두되는 내용이 오늘 말씀이고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자신 역시 이스라엘 사람인 바울은 감탄하는 내용을 말미에서 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복음송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다는 말씀이고 마찬가지로 오늘 미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역시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면 그것을 빼앗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



Ⅰ.버려졌던 이스라엘의 구원.(25~27)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첫번째 상고할 부분은 어떻게 불신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25절이 조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도록 하자.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아직 깨닫지 못하는 숨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여러분도 그것을 꼭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란 이런 것입니다.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은 완고하지만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 오는 날에는 그 완고한 마음을 버릴 것이고”(공동)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26)

여기에 대한 이론이 구구하다. “어떻게 불신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냐 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믿는 사람들 즉, 영적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인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에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구약의 두 곳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해결하고 있다. [사59:20,21,27:9(70人譯)] 어쨌거나 의역된 인용문의 내용은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셔서 이스라엘의 불신을 제거 하시겠다.’는 것이다. 특히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왜 [이스라엘]이 아닌 [야곱]인가! 에도 뜻이 있다고 본다.

[야곱-발뒤꿈치를 잡았다]는 뜻처럼 불신의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복을 계산하는 것 때문에 어쩌면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보여진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27)여기 역시 하나님께 가장 큰 죄는 불신이기 때문에 이 불신을 없이 할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다.는 것이다. 믿음은 분명히 각자의 결단이고 선택이지만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 불신을 제거하시는 것도 우리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제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신의 원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거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불신을 제하시고 구원하실 때가 있으실 것이라 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같은 이방인 된 우리 골육과 다른 잃어진 영혼들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



Ⅱ.베푸시고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28~29)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서는 다시 이스라엘의 현실과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해 주고 있다. 왜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느냐 하면 바로 이방인인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탄생이나 택하심으로 하면 저들이 선조 때부터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앞에서 바울은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이야기한 바 있다. “그 가지들(이스라엘)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8)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2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29) 서두에서 말했던 대로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선물이나 선택의 은총은 다시 거두어 가시지 않습니다.”(공동)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하지 않습니다.”(표준새)

하나님은 한번 하신 일을 절대로 바꾸시는 일이 없으시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믿음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사람들은 장난으로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질 것 같으면 “한 수만 물립시다.” 그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한번 하신 일에 절대로 변개하시는 예가 없으시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이왕에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이젠 무슨 짓을 해도 버리지 않으신다.’ 이러한 확신은 주님을 순종하는 믿음 안에 견고히 서있을 때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보호를 스스로 벗어난다면 위험이 있음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는 한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말씀이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나를 불러주신 것 때로는 주님을 안타깝게 할 때도 있지만 주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이상 절대로 구원의 선물을 철회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자.



Ⅲ.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30~32)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우리 모두는 그냥 그대로 둬도 멸망의 자식들이요, 우상숭배를 해서 하나님을 사실상 진노케 했던 멸망의 자식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언약의 민족 이스라엘을 복음에 불순종하게 하심으로 우리 모든 이방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상 숭배자들이 주님의 복음에 초청을 받아서 놀라운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런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성경 말씀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3~8)

이러한 말씀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본문 30~31절의 말씀은 다르지 않음을 본다.

결국 하나님의 불신에 대한 진노는 바꿔서 말하면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불러들이시는 사랑과 긍휼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22절의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는 말씀을 이해했었다.

이런 이유에서 이 부분의 결론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32) 결국에 가서는 언약백성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간격이 여기에서도 허물어 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공동) 이럼으로 하나님의 공평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방인이 볼 때는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만 사랑하셨는가? 왜 그들과만 언약을 맺으셨는가?” 라고 불평할 수 있었고 복음 속에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불순종에 두심으로써 이방인들을 먼저 복음 속에 부르시고 “왜 하나님은 우리와 메시야 약속을 하시고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먼저 복음의 은혜를 입게 하셨는가?” 하는 이스라엘의 불평이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에게서도 불순종의 죄를 제하심으로써 모두가 구원의 선물을 누리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기간 동안 이스라엘과 이방세계를 불신 속에 가두어 두신 것은 십자가를 통한 복음의 선물 구원의 선물을 온 인류에게 차별 없이 주시기 위해서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았다는 놀라운 감격을 감사로 고백할 수 있는 …



Ⅳ.하나님의 놀라운 지혜(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바울 사도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신비한 구원 계획과 그것을 이 역사 속에 이루어가시는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 로마서의 믿음으로 통한 구원의 진리를 마무리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구약 성경 두 곳을 인용하면서 영광을 돌리고 있다.(사40:13; 욥41:11)

오늘의 감정으로 가장 적절하게 번역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표준새)

[지혜, 헬, 쏘피아(Sophia(현명한, 숙련된, 경험 있는, 높은 인간 지성, 신성한); 지식, 헬, 그노시스(gnosis(아는 것, 지식, 학식, 학문)]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지식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참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께로서만 온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로 이 지식이나 지혜를 간교하게 사용하지 않으신다. 마귀 사탄만이 이 지식과 지혜를 흉내내면서도 가장 간악하게 쓴다.(인간 세계에서도 이 지혜와 지식의 사용을 통해서 하나님께 속했는지 마귀에 속했는지를 알 수 있다.)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 지식과 지혜를 그의 백성들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지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탄식하신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f)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가장 많이 끌어서 쓴 사람이 솔로몬일 것인데 솔로몬은 그 비법을 공개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1:7, 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나 지식을 절대로 돈 받고 팔지 않으신다. 모두 거져 주신다.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풍성히 주신다.

그러나 지식을 가졌어도 그 지식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세상의 지식은 천 갈레 만 갈레 나눠지고 또 지식을 소유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가진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서 망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지혜와 지식을 한량없이 공급하신다. 이 시대에도 지혜의 성령께서 그의 참된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끝없이 공급하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

시편 기자도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111:10)라고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논한다면 한이 없을 것이다. 바울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역사 속에 쓰신 지혜와 지식을 감격하며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마귀는 인간을 구원에서 끊어지게 하려고 온 갓 간교한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과의 큰 차이이다.

34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은 이사야40:13의 인용이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우리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류를 사랑하고 구원하시려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구원의 방법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감탄이고 있다.

35절의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는 하나님께서 친구들에게 끝까지 자신의 순결함을 주장하는 욥에게 나타나셔서 책망하시는 말씀 중에 일부분이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욥41:11)

우리는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도록 받았기 때문에 (감사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받았기 때문에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으면 드릴 수조차 없는 존재들이다. 연보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인하여 드리는 것이지 또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비록 자신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는 기도가 거절 되지만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지을 성전을 위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온 갓 필요한 물질을 드리게 하면서 드려진 물질로 인하여 감격하면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라고 고백하면서 다시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사실 내 소유로 되어 있는 것도 다 주님의 것이고, 주님께서 손을 벌리시면 돌려드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쁘게 드릴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시는데 드리지 않으면 나중에 그보다 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우리는 더러 경험하고, 드리지 못하겠다고 발악을 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가져가시는 경우들도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36) 우리의 거듭난 생명도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 때문이고, 배워 가진 지식도, 재산도, 함께하는 사람들도, 명예도 … 모든 만물은 다 주님으로부터 왔다. 믿습니까? 그리고 주님 때문에 유지되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찬290:1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그렇다면 돌아갈 곳에 준비 해 두는 것이 지혜 아닌가? 빈 주먹 지고 와서 모든 것을 가족으로서나 사회로서나 받았다면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또 그것을 지키는 것이 내 힘이 아니라면… 돌아가기 전이라도 주님께서 요구하시면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원의 신비도 주님으로부터 왔고, 오늘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주님께로부터 왔고, 유지되고 돌아갈 것들이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 드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