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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2:3~8 2007-10-07
오직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  
우리는 믿음의 대헌장인 이 로마서의 실천부분의 서론을 지난 주에 다루면서 그것은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의 섬김이 ‘제사’ 라는 말과 함께 ‘몸’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생각했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과 나 개인의 관계 속에서 확대되어 교회 즉,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체로서의 섬김의 자세를 다루고 있다.

오늘 본문의 교회지체로서의 섬김의 기본은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라는 중심을 제시하고,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섬김의 기본을 그리스도인의 나눔 속에서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 섬김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다음의 말씀(9~13)에서 제시를 한다.

마지막 부분(14~21)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심지어 그리스도인을 원수 시 하는 경우에 까지도 세상의 악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의 악으로 대항하는 어두음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같은 악이 아니라 ‘선’으로 그들을 대항하고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율법 시대의 ‘눈은 눈으로’ 라는 대응방법은 완전히 바뀌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왜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저항주의의 선한 투쟁을 했는가 하는 해답을 여기서 찾게 된다.

그러므로 지난 시간부터 시작된 믿음의 실천은 자신에게서 교회로,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확대되어가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런 진행을 보면서 믿음이란 결코 개인의 삶 속에서만, 가정 속에서만 교회 속에서만 한정될 수 없음을 배운다.

같은 원리에서 교회와 세상 속에서 이중적일 수 없는 신앙의 귀중한 원리도 깨닫는다.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거듭난 삶의 원리는 나의 형제, 자매와 나누어지고 그러한 나눔이 불신의 세상 속에서도 다르게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진리의 가르침은 교회와 세상 속에서의 각각 양립하는 이중적인 삶일 수 없음도 배운다. 즉 교회 속에서와 세상 속에서 각각 다른 두 가지의 원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의 원리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살 수밖에 없음을 제시한다.



Ⅰ.내게 주신 은혜대로 권면하고 섬겨야 한다.(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오늘 우리 모두에게 먼저 자신의 받은 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지체로서의 섬김을 교훈하고 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없이는 은혜를 끼칠 수도 교훈을 줄 수도 없는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 속에서 지체 상호간의 관계이다. 나 자신이 받고 경험한 것이 있어야 그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남이 받은 은혜에 참여하고 권면 할 수 있다.

이러한 바울의 자세는 그의 보내는 서신들의 대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롬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고전3:10)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갈2:9)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3:7)

내가 받은 은혜가 있어야 너에게 주신 은혜도 인정하게 되고 같은 성령 안에서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 속에 주어진 [은사나 은혜]는 모두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으로 고린도전서 12장에 같은 맥락을 볼 수 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 라고 바울은 각각의 섬김의 은사를 가진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권면을 주고 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씀은 좀더 가까이 이해하기 위하여 앞뒤를 바꿔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라!” 섬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이다. 영적으로 겸손하지 못하여 ‘믿음의 분량대로’를 지나쳐서 남의 영역에까지 간섭하려다가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이나 사람들 속에서 주어지는 분량은 언제나 성령을 거스를 수 있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래서 바울이 주는 당부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이다.

신앙에 있어서의 판단은 인간의 기준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십자가의 희생의 피로 판단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이 부분은 가르치고 있다.

여기 [나눠주신, 헬, 메리조(merizo), 나누다, 할당하다, 부여하다]과 [분량대로, 헬, 메트론(metron),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척도, 미터, 분량]는 하나님의 은사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자세에서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이다.

주님께서 마태복음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주시는데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다르게 나눠주신 것은 그것을 받는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한 것이라고 이해할 때,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자신의 분수보다 주인의 맡긴 달란트를 무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까짓 거 잃을 수도 있으니 올 때까지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자신들보다 더 잘 아신다. 믿습니까? 특히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헬, 쏘프로네오(sophroneo), 정신이 온전하다, 술취하지 않았다(막5:15-정신이 온전하여)]”는 의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사람이 영육으로 온전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을 다 바르게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당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같은 표현들을 참고하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고전7:17)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고후10:13)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7)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모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을 지키며 겸손으로 자신의 역할들을 감당할 때 주님의 영광을 찬양케 되고 다른 이들에게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도록 서로의 은혜를 감사하며 일하게 될 것이다.

연이어 이어지는 각자의 섬김에 가장 중요한 자세인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권면대로 섬겨서 감격과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



Ⅱ.우리는 섬김에 있어서도 지체일 수 밖에 없다.(4~6f)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이 말씀은 그대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고전12:12~14)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엘리야와 같이 나만 하나님을 위해 죽도록 애쓰고 있다는 독선은 금물이다. 비록 마지막의 역사 속에서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다는 이 말씀은 우리 각자로는 어떤 가치도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서로 의존 적일 수 밖에 없는 지체들이다. 우리의 몸을 각각의 지체대로 분리해 놓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우리 각자가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해 간다는 귀중한 원리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가 없이는 나도 가치가 없다는 의미이고, 너가 없다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서로의 귀중성을 인식 시킨다. 이 교회는 형제가 없이는 자매가 없이는 나도 의미가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오직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4:4)

바울 사도의 이 교훈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각자의 독특성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나는 남이 가진 은사를 흉내 낼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은혜를 욕심 낼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감사하고 섬기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사에 등급을 매기는 데 그것은 옳지 못하다. ‘가장 귀한 은사니, 말단 은사’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판단하는 잘못된 행위들이다. 은사의 가치는 모두가 다 귀하며 그 은사는 그리스도를 섬길 때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은사를 흉내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부러워 하는 대신 나에게 주신 은사를 그것이 비록 육신의 눈으로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게 보이는 은사일지라도 썩이면 한 달란트 받았던 자와 같이 되고, 남을 따라 갈려고 하면 아무리 잘해도 이등밖에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독특한 것(그것이 비록 육신의 눈으로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감사하고 충성하고 헌신하면 그야말로 일등 지체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전7:7)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5) 비록 육신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우주 속에 많은 지체들 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귀중한 피가 더불어 흐르고 있다.

비록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는 미국이나 아르헨티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도 사랑의 매는 줄인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 매 순간 같이 하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되는 미래적인 은혜도 기대할 수 있다.

사람은 아무리 크거나 위대해도 주님의 몸의 한 지체역할 밖에는 할 수 없다. 그 역할이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것만이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리 초라해 보일지라도 결코 가장 귀한 은사와 비교해서 절대로 비천하지 않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비로소 이렇게 평균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약1:9~10) 라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된다.

이 역사 속에 어떤 사상도 인간을 평균케 할 완전한 것은 없었고 또 없을 것이다. 유물론 주의에 입각해서 공동체적인 평준화의 삶을 주창했던 공산 주의도, 모든 사람이 주인 의식을 갖자고 떠드는 민주주의도, 인간 가치의 평준화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은 다 범죄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고 거듭난 하늘의 공동체인 교회 밖에 없다. 그럼에도 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앞질러서 또 다른 독특한 계급 사회와 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사실을 거듭남의 원리에서 증거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7~28) [종교, 철학, 계급, 남, 여]

이런 일치와 다양성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6) 한 서로의 독특성이 역할로 인정된다.



Ⅲ.우리의 역할은 그 주신 은혜에 의해 다를 수 밖에 없다.(6b~8)

“…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는 본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통일성의 원리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한 몸을 구성하는 교회의 일곱 가지의 역할을 지체들의 독특성을 증거하면서 각 지체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져야 할 경계의 부분들을 당부하고 있다.

①“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6b)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표준 새) 그리스도의 교훈 자체를 기록한 말씀으로 가지고 있지 못했던 당시는 예언을 통해서 교훈을 주셨지만 예언하는 사람의 주의해야 할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을 믿음의 분수가 아닌 더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는 것은 교만이라고 지적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그의 만년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1:9)고 하여 주님의 교훈안에 머물지 않는 것은 주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필요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나 약화시키는 것은 다 믿음의 분수를 넘어서는 것으로 경계 되어야만 할 예언의 자세이다.

다음으로 세 가지의 일에 대해서는 그 일 자체로서 충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②“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7f) ③“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7b) ④“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8f) 또 이 세가지 일은 마치 성령의 사역과 비슷한 역할을 본다.

마지막 세 가지의 섬김의 사역은 신앙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⑤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8mf) 신앙은 순수함 속에 꽃이 핀다. 진리에 어떤 것 즉, 인간적인 것을 섞어도 안되며 단순한 것이 생명이다.

이런 바탕에서 교회의 구제가 어떤 조건이 있어서는 안된다. 인간적인 조건인 혈연, 지연, 학연 등등의 조건이 교회의 베푸는데 차별이 되어서는 안되고 또 구제하는 것이 다시 그 이상을 요구하는 압력으로 더럽혀져서도 안된다.

구제를 받는 사람이 치욕을 느끼게 해서도 안된다. 구제는 구제이고 전도는 전도이어야만 한다. 구제는 전도의 미끼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이런 이유에서 초대 교회의 구제의 사역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행6:3)들로 뽑혔던 것을 볼 수 있다.

⑥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8mb) 신앙은 게으른 자들이 절대로 잘 할 수 없다. 앞에 서는 지도자들은 지도를 받는 사람들에게 열심과 충성이 먼저 보이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열심과 진심이 어린 모습이어야 성령이 역사하며 배우는 자들에게 확신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⑦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8b) 신앙의 가장 보편적인 선물은 기쁨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영육의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기쁨과 확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상에게 괴로움을 줄 수도 있다. 많은 불행에 있던 사람들이 건전치 못한 종교에 인도되면 또 다른 올무로 작용하는 것을 본다.

때문에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주는 교훈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교회 속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겸손의 자세를 듣는다. 사람의 상대적인 기준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정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 각자는 아무리 훌륭한 은사를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각자로는 가치가 없고, 주님과 그의 백성들을 섬기지 않을 때는 의미가 없으므로 서로 협력할 때 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은사를 맡은 자로 그 맡은 것에 최선을 다할 때만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세상에서 죄와 대항하여 싸울 때에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사는 성령과 함께 하늘의 기준에서 다루어지고 각자의 지체의식과 협력해서 온전한 몸을 이루어 주님께 영광이 되고 나도 너도 영광과 감격으로 섬기게 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