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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3:1~7 2007-10-28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시민 일뿐만 아니라 이 육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세상 국가의 국적을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하늘의 백성으로 충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세상의 정부에도 충실할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고 가르친바 있다.

이런 가르침은 신약성경 속에 자주 거론되어지고 있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딛3:1)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잡으러 왔던 대제사장의 종 ‘말고’ 라는 사람의 귀를 칼로 베었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바 있는 베드로(요18:10~11) 사도 역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2:13~17)

우리가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서 혼란하지 않도록 분명한 삶의 기준을 이런 부분에까지 교훈 해 주시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다름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서론 의논하고 와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마22:17) 묻는 질문이었지만 주님의 답변은 분명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2)

주님은 어떤 대상에게도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증거하신 것이다. 그것이 앞에서 봤던 대로 동료 그리스도인 이었던지 심지어 원수이던지 부모이든지 어느 대상에게도 치우치거나 소홀하지 말 것을 명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4~6)

주님께서는 절대로 형제에게 할 것을 하나님께 하라든지 부모님께 드릴 것을 주님께 드리라든지, 국가에 바쳐야 될 의무나 세금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강요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하나님께 드리고 국가에나 부모에게 형제에게 해야 할 것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잘하면 다른 모든 것에는 등한히 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균형 잡힌 신앙은 절대로 치우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건전치 못한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만 잘하면 된다]고 치우치는 것을 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교훈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신앙의 주안점을 제시한다.



Ⅰ.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다.(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왕의 왕’ 또는 ‘만주의 주’ 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권세의 상위권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최종적인 권세는 하나님께 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1: 20~21)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10)는 기록들을 봐서도 확실하다.

1.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다.(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다니엘은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단2:21)

예수께서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게 되어 빌라도에게 가셨을 때 “…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라고 큰 소리를 칠 때 의연하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요19:1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1f)는 말씀은 권세 앞에 누구나 평등함을 선언하는 것이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1b)는 당부는 당시의 간교한 헤롯의 자리나, 정직하지 못한 권세자인 빌라도의 권세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말씀이다.

이러한 논리는 아직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김정일의 권세도 중동의 사악한다고 느껴지는 권세자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허락하셨기에 가능함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하나님은 절대로 테러나 악의 조성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이성적으로는 받아드리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선언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2.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까지 말씀한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2)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거스른다는 의미로 권세가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가르침의 결론이다.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우리 나라의 통치자를 선출하려는 가운데 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미 다음의 대통령이 누구인 것을 정해 두셨을 터인데 많은 사람들이 다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떠들고 있지만, 누구인지 지금은 모르지만 주님께서 정해 두신 한 사람 외에는 모두가 헛물을 키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하나님을 떠나서 불순종할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정하신 권세자인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그 말씀을 거역함으로 더 많은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대통령에 대하여 국민들은 많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백성들은 평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권세에 복종하고 그 권세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

비록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음에도 거드름을 피우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신앙의 삶을 위해서 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한계는 있는 것이 악을 행하도록 명령하고 절대적인 권세인 하나님을 거스르도록 명령하는 것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주님에 대한 거역이나 범죄를 조장하도록 하지 않는 이상 권세자들을 거스르는 것은 성경이 금지하고 있으므로 세상 법에도 거스름이 없는 애국자로 사는 …



Ⅱ.하나님은 권세를 통하여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 하신다.(3~5)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흔히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 하거나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고 하는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서만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현 세상 속에서 법 즉, 권세라는 것을 통해서 선을 격려하고 악을 단죄하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1:9~10) 라고 증거 한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3)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교통경찰이나 감시용 카메라가 나타나도 결코 두려움이 없지만 과속을 했거나 신호 위반을 하고 나서 이런 것들을 보게 된다면 가슴이 방망이 질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범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유익한 역할을 하고 모범이 된 일을 한 사람은 오히려 징계보다는 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더욱 자신 만만하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4)

법의 역할은 악을 징벌하고 선을 칭송하는 선악의 기준을 분명히 하고 이런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법 앞에서도 악을 행하면 두려워 하고 선을 행하면 자신만만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그들을 “하나님의 사자” 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구약의 기록들에서도 더러 나타난다.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솟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렘25:9, 27:6, 43:10)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44:28)

선한 행동의 보응을 기대한다면 용감할 것이고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이는 모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는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 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5)

믿음의 사람들이 준법정신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은 세상의 칭찬과 상급 때문이 아니라 좀더 영적인 하나님을 의식하여 양심을 위하여 즉,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사는 삶이 될 때 더욱 적극적인 의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권면이다.

우리 모두가 죄에 대한 형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하고 의롭게 살기보다는, 보다 완전한 상급을 바라고 세상이나 사람이 몰라주면 하나님께서 더 완전히 갚아 주시리라는 주님의 상주심을 바라고 의를 행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더욱 자신감 있는 삶을 사는 …



Ⅲ.납세의무에 충실하라!(6~7)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마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제단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처럼 공직에 있는 자들은 백성들의 세금으로 바친 것을 통해서 먹고 사는 것을 가르친다. 권세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핍절하여 다른데 눈을 돌림이 없이 선을 격려하고 악을 징벌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공세를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세를 받는 사람들이 공정한 세제를 베풀어 세금을 거둬드리고 바치는 자들도 국가에서 요구하는 세금을 바침으로서 정부가 국민을 위한 역할을 잘 감당하고 그 일을 위해서 백성들은 세금의 의무를 다한다면 참 편한 국가가 될 것이다.

세례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세례를 줄 때 당시의 세리와 군인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것을 본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가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3:12~14-개정)

하나님께 성실한 사람들은 국가의 의무에도 충실하여야 함을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22:21)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비극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세금을 다 주고는 사업할 수 없다.’ 라는 이야기다. 세무행정을 집행하는 국세청도 문제이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탈세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7)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관공서에 대한 의무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야 할 자세를 이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하는 권세자들에게 순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불복종(不服從)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본다.

권세는 그것이 정의롭고 바른 것이든, 아니면 악한 폭정이든지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세우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름이라는 바울의 권면을 순종해야만 한다.

오히려 세워진 권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이 바른 정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한다면 법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법을 통해 칭찬을 받을 것이다. 법은 그것이 영육(靈肉)의 법을 막론하고 불법한 자들의 악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법은 오히려 칭찬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자연스러운 평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게도 빛이 되는 삶이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이유이다.

세상의 마지막을 예언하는 데살로니가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5:9~10)고 고백했다.

바울은 인생에 진정한 기쁨의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하는 고백을 하면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의무에 있어서도 세상의 법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를 통한 거듭난 양심을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속이거나 불성실하지 않고 국민을 위하여 봉사 하려고 수고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기도하여 우리의 신앙 생활이 평안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땅에 상대적인 법에 얽매이는 유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절대적인 사랑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답게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겸손과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감당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는 신령한 삶의 세상 속에서, 특히 정부에 대한 삶의 자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거리낌이 없이 늘 넉넉한 여유와 감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