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롬 16:17~27 2007-12-30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올해의 첫 주에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책은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되는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라는 귀중한 구원의 역사를 논증하는 책으로,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의 연애 편지이자 죄와 죽음에 당면한 인류를 그 절망에서 불러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사망을 치료하시는 은혜의 묘약이라고 소개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증거 했었다.

죄인이 구원 얻는 놀라운 방법을 마무리하면서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키는 자들에 대한 경계와 바울과 함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전한 후에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인 이 계시의 오묘함을 감탄하는 고백으로 이 로마서를 마무리 한다.



Ⅰ.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라.(17~20)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하신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 라고 경계하셨다.

그만큼 하나님나라를 향해가는 천국 백성들의 앞길에 장애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형벌에 대해 무섭게 책망하셨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1세기 당시에도 그리고 이 21세기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세상 것과 뒤섞어 구원 얻을 진리를 못쓰게 만드는 사악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17) 이 명령은 대단히 적극적인 표현이다. 그냥 두고 보는 정도가 아니라 찾아내고 처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로마서를 비롯한 성경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이 사랑의 울타리인 주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대해서 대단히 단호함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교우들에게도 이러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 교우들을 가르친 적이 없었지만 ‘너희 (배운) 교훈’을 거스리는 것을 경계한다. 결국 바울이건, 로마교회를 세우고 가르친 사람이건 구원의 논리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역시 그들에게도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어두움의 세력의 도구들이 있음을 성령의 사람, 바울은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은 당연히 분쟁을 일으키고 불화를 조성하여 교회의 덫이 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자들을 보초병처럼 경계하고 멀리하고 피할 것[떠나라, 헬, 엑클리노(ekklino), 피하다, 멀리하다]을 당부하는 것이다. 공동번역에서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배운 교훈과는 달리 남들을 분열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다음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18)

이런 사람들은 비록 명목상으로는 그리스도인들 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자신의 배를 섬기는 자들이라는 두려운 표현을 하고 있다. 만약에 제 자신이 좋은 것을 먹기 위해서 생활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가르침을 변계 시킨다면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종들이 자신의 권위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가르침은 신뢰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같은 경계를 바울은 나중에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하면서 자기 배만 섬기는 자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그런 방법을 위해서 저들은 진리를 전하기보다는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된다.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이란 “듣기에 좋은 유창한 연설”이다. 말을 못하면 사람들은 미혹되지 않을 것인데 듣기에 아름다운 말재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말씀만을 그대로~ 진리를 증거 한다고 하는 것이 이 시대의 또 하나의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한 것처럼 사람들은 바른 교훈이나 진리에 관심이 없고 비록 허탄한 이야기일지라도 자기 귀에 즐거운 것들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것이 주님의 예언이다 보면 그렇다.(딤후4:3~4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럼에도 이어지는 당부는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는 것이다. 예레미야나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귀에 거스르는 것 만을 증거해서 그에게는 감사와 칭찬 대신 돌이 날아왔다. 한 사람이라도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이 말씀을 듣고 인생을 진리로 돌이킬 수 있다면 사실에 있어서 증거의 가치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수억 수천 여 만원의 돈을 들여서 말씀을 증거하고 한 사람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수지 맞는 장사이다. 왜냐하면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세상에서 듣는 동일한 웃음거리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지 말라! 예배에서 말씀을 듣는 것은 단순히 육신이 어떤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영혼의 양식을 나누어 먹는 영혼의 만찬 시간이다. 때문에 이 시간에 우리의 영혼이 말씀을 취하지 못한다면 한 주간을 굶는 것이 된다. 그런 절박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배의 중심은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한번으로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 만으로도 물론 하나님의 가득한 사랑을 감격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주님의 참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예배에 있어서 덤이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저는 여러분들의 영혼의 식탁을 다른 어떤 세상의 별미가 아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만찬을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거짓에 대한 엄중한 경계를 하면서도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하지 않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9)

로마로부터 들리는 좋은 소식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마케도나아와 아가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들림을 기뻐하고 있고 이렇게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는 격려를 덧붙이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도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오히려 그렇지 못한 백성들을 향하여 탄식하심을 듣는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렘4:22)

이렇게 되었을 때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고 견고히 설 수 있을 것이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0) 이것은 이미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장된 것이지만 우리의 믿음의 삶이 그 은혜에 합당치 못하여 사단이 득세하고 평강을 잃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게 된다.

로마교회에 어떤 사단의 역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선을 행하는데 용맹하고 악을 행하는 데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한 성령의 사람들이 될 때 당연히 사탄은 그러한 사람들의 발아래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고 십자가를 인한 구원의 은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Ⅱ.바울과 함께 있는 자들의 문안.(21~24)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없음)

이제까지는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은 바울은 이제 자신과 함께 같은 믿음으로 헌신하며 믿음 안에서 함께 그리워 하는 사람들의 평안을 전하고 있다.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나의 동역자’ 라고 소개하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 자신과 함께 있는 이들의 신앙 속에 귀중한 역할을 소개하는 것 역시 바울의 겸손과 격려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친척이라고 하는 세 사람의 유대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이유에서든(시력?)지 이 로마서를 받아 기록하고 있는 더디오도 이 편지를 자신이 받아쓰고 있다는 감격을 고백하고 있다.

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한 확신과 감사를 늘 고백하고 나누는 사람들은 단순한 도구라는 범위를 넘어서 진리에 기여한다는 확신과 감사로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높여주는 겸손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감격을 고백하게 되는 것을 본다.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23) 여기 거론되는 이름들이 다른 서신들에 역시 언급되는 같은 인물들인 줄은 확인할 수 없지만 ‘가이오’ 라는 사람은 고린도전서1:14 에 따르면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푼 몇 안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고, 이 사람이 자신의 집을 교회의 모이는 처소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온 교회와 바울의 먹고 사는 문제를 감당하고 있는 귀중한 인물로 나타난다.

사도행전8:26의 빌립을 통해서 거듭난 사람이 에디오피아의 지금 우리나라 행정기관이라면 ‘재정경제부’ 장관이었고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의 일원인 에라스도도 고린도인지 아니면 아가야의 재무를 책임지는 관직의 인물인 것으로 바울이 소개를 한다.

지난 시간에 로마의 교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던 노예 출신들이 믿음 안에서 그 지위가 회복되는 일이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높은 지위의 관료들도 복음을 듣고 믿어서 자신들의 세상적 지위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더 귀중히 생각하여 기꺼이 낮은 자리에 함께 처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을 이 문안 가운데서 확인하게 된다.

앞에서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9b)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의 자세를 표현하기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10:33~34)

사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땅에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 아니라면 왜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낮고 천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빈부귀천이 하나가 되고 그러면서도 삐걱거림이 없이 화평과 기쁨이 충만한 그곳이 바로 예수께서 피를 값 주고 사신 교회이다.

우리모두 이렇게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자신과 우리교회의 가족들을 사람들에게 바울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고 소개하는 …



Ⅲ.모든 민족을 구원키 위해 영세 전부터 감취었던 계시의 비밀.(25~27)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 사도는 이 로마서를 마무리 하면서 역시 복음의 신비와 은혜를 고백하는 것으로 이 거룩한 편지를 닫고 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25) 바울은 복음을 늘 자신과 함께 취급하고 있다. “나의 복음”

이 고백은 자신이 곧 복음을 위하여 있는 자요, 복음은 자신의 것이라는 신앙의 표현이다. 다른 사람들의 복음이 아닌 ‘내 복음’ 또는 ‘나의 복음’ 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앞의 2:16에서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복음과 같이 …”(딤후2:8f) “…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몬1:13m) 라는 표현들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 모두도 복음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 하는 그것은 즉, 십자가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 하는 것과 일반이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나는 없었다.” 이런 고백이다. 오늘 나의 고백은 어떤가!

그런데 이 귀한 복음이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는데…”(25b~26) 이것은 바울이 하는 고백이지만 오늘 우리도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시대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중에 오늘 나에게 복음을 알게 하신 감격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1:20) 역시 같은 고백이다. 그러나 복음이 단순히 나를 위하여 나타난 데서 머무를 수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25)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영세 전부터 감춰 두셨던 것을 이제 나타내셨고, 그 가운데 중요한 또 하나의 확인은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25b~27)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를 향해 세상에서 나그네 같은 삶을 살지만 복음에는 확실히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나중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은 에베소와 골로새 교회를 위해 같은 소망으로 기도하고 권면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3:1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바울은 마지막으로 로마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그의 복음의 편지를 끝맺고 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27)

주님의 교회는 진리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먹으며 진리 안에서 성장해 가지만 자신의 배에 더 좋은 것들을 채우려는 어둠의 종들에 의하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일들이 이 세상 속의 교회에서는 같은 도전을 지속하고 있고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뽑지 않고 그냥 그렇게 자라도록 두신 데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경계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는 바울의 때나 지금이나 지위에 높고 낮음이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격하여 자신들을 희생하는 자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확장되고 증거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계시의 비밀을 창세전부터 감추어 두셨다가 예정하신 때에 성취하셨고 오늘 우리(나)에게 이 구원의 비밀인 복음을 나타내시고 전하심으로 부르셨다.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헤아리고 감격하는 이 말씀 모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