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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13:28~41 2008-11-09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들어가서 모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가져와서 나누고 있다. 비록 안식일의 규례로 모인 사람들이었고 말씀을 읽은 후에 그 말씀을 토대로 구원의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받았지만 그 듣는 대상이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는 평범한 신앙적 진리를 나누었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심으로 인류구원의 토대를 마련하시고 그 약속의 민족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나게 하셨다는 약속과 함께 그 구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택하셔서 구원을 이루어 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역시 다윗이라는 대표적인 인물을 통하여 증거하신 하나님은 마침내 이 땅에 그리스도를 나게 하셨지만 이 귀한 약속을 저들이 믿지 못함으로 먼저 부름을 받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게는 비극적인 결과로 응하고 말았다는 내용으로 이 설교의 절반을 지난 시간에 상고 했었다.

오늘의 이 뒷부분에서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히려 죽임으로 이 희생을 범죄한 인류의 영원한 구원의 제물로 삼으시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주님께서 친히 죄 없으심을 증거하시고 죽음의 저주를 정복하신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이것은 이미 옛 언약 속에서부터 쉼 없이 증거해 오신 약속의 성취임을 선언하고 이 사죄의 은총을 누리는 자들이 되라는 요청을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증거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사심이야말로 인류를 위한 구원의 비결이고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할 구원의 복음일 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의 주제이고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이 귀중한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택하시고 성경을 이스라엘과 인류에게 주셔서 인류로 하여금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시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누구든지 이 십자가와 부활을 뺀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야말로 열매 없는 껍질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이를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예수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놀라울지라도 만약에 주님의 십자가에 죽고 사심이 없었다면 인류구원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반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한가지의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을지라도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만 있으면 죄인들이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각자의 것으로 누리고 그렇지 못하는 것은 오늘 말미의 말씀처럼 이 구원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순종하기를 거절한다면 ‘놀라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의 은혜를 각자의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인종이나 계급이나 다른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됨이 확실하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두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



Ⅰ.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였다.(28~32)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 역사의 절정(絶頂)이며 주님의 생애의 climax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히9:27) 라는 원리는 주님께는 적용이 되지 않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땅에서 난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28)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도 율법사들도 서기관들도 바리새인들도, 그리고 사두개인들도 주님으로부터 전혀 죄를 찾을 수 없었고 당시의 총독이었던 빌라도 조차 요한복음 19:6b에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고백하고 만다.

죄는 물론이고 죽일 죄는 더욱 있을 수가 없었음에도 자신들의 입장과 인기를 지키기 위해 눈이 뒤집힌, 바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요18:31b)라고 하면서 빌라도에게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요19:12m)라고 압박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온 힘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저들의 분풀이가 아니라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29f) 성경은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렇게 비극적인 도구가 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낳고, 이것은 주님께서 가룟 유다를 향해 직접 하신 말씀이다.(마26:24; 막14:21) 이 말씀은 비단 그 때만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주님은 완악함으로 기적을 요구했던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12:39~40)

결국 주님은 죄를 볼모로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무덤에 친히 장사 지낸바 되신 이유는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라고 증거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는 것은 만약에 죄의 값인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결국 예수도 죄인이라는 공식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되고 또 의롭다 하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끼치기 위해서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그런 이유에서 어찌 보면 이 사도행전에 성령과 함께 사도들이 가장 자주 증거한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오늘 바울도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30~31)

나중 바울은 이 사실을 부활의 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15장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3~8)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고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32)고 선언하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이방인이요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 영광의 약속을 가지고 이 죄악의 세상에서 죽음과 절망을 이기며 하늘나라에 가는 천국 백성의 길을 걷고 있음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



Ⅱ. 부활은 구약에서부터 주신 약속이다.(33~37)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이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시편과 주로 메시아의 예언에 관해 많은 부분을 감동받아서 기록한 다윗을 실례로 들어서 증거하지만 앞에서도 말씀했던 것처럼 “성경대로, 성경대로”는 바로 구약의 모든 성경을 마음에 두고 하는 고백이다.

실제로 주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성경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고, 구약에 많은 율법과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이 인류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뿐만 아니라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모든 말씀은 죄진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애절한 음성으로 이 땅에 온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이 최소한의 성경(시2:7; 사55:3)은 그 대표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실지로 창세기의 첫 부분에서부터 그리스도와 교회의 의미들을 상징하는 보여주는 내용들은 더러 나타난다.(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심, 창2:21~23,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두 번째 책인 줄애굽기에서는 죄악 된 세상에서 죄의 종 노릇 하는 사람들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고 장막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그림자이고 무엇보다도 유월절 어린양은 희생의 그리스도의 모형의 절정이다.

이미 앞에서 베드로 사도도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행3:24)고 증거한바 있다.

구약의 이런 내용들을 다 말하면 히브리서의 고백처럼 그야말로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11:32)

그래서 바울도 다윗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다윗의 이 예언은 다윗 자신이 아님을 증거한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36~37)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한번 정하신 죽음으로 묻혀 썩음을 당했지만 자신을 통해서 성령께서 예언하신 썩음을 당하지 않으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승리로 최종적으로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 것을 소망하면서 기쁘게 죽고 또 썩었다.

이렇게 죽음 이후에 소망이 확실하다면 절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모두 다윗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고전15:20)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신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벗어버리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



Ⅲ. 사죄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라!(38~41)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고린도전서15:22~23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는 고백처럼 온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엄청난 은혜의 약속은 구약의 어떤 약속보다도 확실하고 귀한 언약이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죄의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38-표준 새)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같은 은혜의 약속을 전달 받고 있다. 이 약속은 과거의 어떤 약속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하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같은 약속을 받았다고 확신하던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수없이 짐승의 희생제사를 드렸지만 죄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라는 두려운 말씀 때문이다.

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것이 생각날 때마다 수 많은 짐승의 제사를 드려도 기억하지 못하는 죄는 용서됐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b)는 분명한 약속을 증거하고 있다. 이 약속은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셨고[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도들도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분명한 약속들을 증거하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3~5)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그러나 이 귀한 언약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의 부정적인 면이 그들에게 응하고 말았다는 고백도 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40) 앞에서 27b의 말씀처럼 “…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했는데 이왕이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약속을 받아 누려야 하겠는데 반대로 저주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안 된 모습인가?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41) [합1:5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이왕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은혜로 임할 수 있도록 순종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겠는데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는 불신의 비극이 임하는 대상이라면 얼마나 불쌍한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역사는 이 세상에 두 가지 반응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믿고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누리며 감격하든지, 아니면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원하심은 아니지만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부정적이고 가련한 멸망의 역사로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님의 이루신 구원의 역사에 반응하는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억지로 끌지 않으신다. 그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시는 말씀처럼 순종의 마음 문은 각자가 열도록 되어 있다. 열고 영접하는 자의 삶 속에 주님은 들어가셔서 그의 삶에 능력의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수 있는데 문을 닫아 걸어 잠가두면 주님은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찬325:1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 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2문 두드리는 손은 못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렸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3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소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아멘]

우리는 주님께서 마련하신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지만 불순종하여 복이 아닌 비극적인 말씀의 약속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데도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성경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주제이고 모든 성경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려고 기록되었다고 말해도 그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오늘 내 자신이 누리지 못한 다면 하나님의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루신 이 귀한 역사가 적어도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 함께 말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은혜가 은혜 되고 생명 되도록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