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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28:1~10 2009-10-04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처음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아시아로 가려는 배를 탈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한 사람의 죄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이 끝나가면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범상치 않은 하늘과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살 소망까지 잃은 풍랑을 거치면서였다.

어쩌면 이것은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여정의 모범이기도 하다는 데서 이 멜리데 섬의 역사는 신앙적 모델이 된다. 인생의 항해를 시작할 때보다 마지막이 더욱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이 천국백성들의 삶의 모습이다. 인생이라는 배를 타기 시작하면서 그 항해를 끝날 때의 모습이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처음에는 세상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또 죄인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에 이를수록 그것도 수많은 인생의 풍파를 하나님의 은혜로 거치면서 점점 가치를 들어내게 된다. 이래서 세상이 다 절망해 있어도 신앙의 사람들은 절망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이지만 마지막 주님께서 이 땅에 임하실 때에 비로소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삶의 역전도 역시 이 멜리데 섬의 바울이 겪는 삶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보게 되는 또 다른 면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 인생을 지속적인 믿음으로 살았을 때 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마지막 여정인 이 멜리데 섬에서 있었던 일은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보름간의 엄청난 풍랑과 고통을 견디면서도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사람들에게 알게 한 믿음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나중이 처음보다 아름다운 인생이 바로 신앙의 삶이다. 이 풍랑 이는 바다와 같은 인생항로에서 시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또 세상사람들과 꼭 같은 고난을 겪을 수도 있지만은 믿음으로 모든 과정을 소화하고 어려움 중에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빛을 나타내게 되어서 하나님을 바라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나중은 심히 영광스럽게 됨을 배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5~6) 그럴 때 연이어 오는 약속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7)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세상과 꼭 같이 살면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는 잘못된 꿈은 버려야만 한다.



Ⅰ. 예언의 성취를 본다.(1~2)

앞의 27:25~26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는 예언을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풍랑이 자지 않은 가운데서 했던 선언이고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적으로는 그 일대를 늘 항해하던 선언들은 물론이고 배 안의 모든 사람에게 별로 실현 가능한 예언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바울의 이 말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바울의 예언대로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상함이 없이 구원을 얻은 후(27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에 그 섬이 다름 아닌 이탈이아의 남쪽 큼 섬인 시실리의 아래쪽에 위치한 멜리데(Malta)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풍랑 중에도 배는 지중해의 중앙을 거쳐서 계속 서쪽으로 떠밀려 갔고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풍랑 만난 배를 그렇게 끌어가신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바울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곳의 사람들까지 준비시키셨다.

“토인들이 ①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②불을 피워 ③우리를 다 영접하더라”(2) [토인, 헬,바르바로스( barbaros), 롬1:14 야만인-즉 헬라 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 고전14:11, 골3:11야인]

풍랑에 떠밀려온 276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원주민들이 환대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을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동정을 하여” 라는 표현으로 볼 때 역시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영접하더라, 헬, 프로슬람바노(proslambano), 자신의 것으로 가지다, 친절하게 지내다, 붙들다 등등]는 말도 이를 분명히 해준다.

긴 풍랑 속에서 고난을 겪고 겨우 육지에 올라온 바울 일행을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베드로 사도가 격려하는 것과 같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5:10)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산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께서 마지막 때 이렇게 큰 위로로 격려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종의 입을 통해서 낸 말씀을 하나도 헛되지 않게 하심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하신다.



Ⅱ.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바울을 통해서도 그대로 이루신다.(3~6)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아직도 주님의 약속을 확신하지 못하고 얼떨떨해 있는 11사도를 모아 놓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는 기록을 본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아직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한 사도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대로 오순절날 마침내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오시고 그들을 사용하시자 이 주님의 약속들이 사도들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미 봤던 대로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5:15~16)는 사실들이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고 후에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졌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는 약속은 검증된바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래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늘 함께 하였던 11사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헌신한 바울을 통해서 이를 확신해 보이셨다.

물에서 나온 대부분 사람들의 체온이 떨어져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불을 피워 준 것은 원주민들의 배려덕택이었다.(2) 그러나 [한 뭇 나무] 라는 표현으로 봐서 장작처럼 오래 타는 땔감이 아니라서 불은 쉬이 꺼지므로 계속 나무를 불에 던져 넣어야만 했고 여기서도 헌신적인 바울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뭇단에서 독사가 바울의 손에 물어 달렸고 이 뱀을 잘 아는 원주민들은 이 일로 바울의 인간됨을 의심하게 된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헬, 디케(dike)] 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4) 보름 여 동안 거친 바다에서 살아나온 것이 기적이었는데 뭍에 나와서 독사에 물리는 것을 보면 그들의 因果應報에 의한 판단으로 바울은 분명히 살인 같은 무서운 죄를 저지른 자임에 틀림 없다고 자신들 대로 추측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바울은 자신의 손을 물고 늘어져 있는 이 위험한 짐승[헬, 데리온(therion), 위험한 동물, 독이 있는 사나운 짐승]을 불 속에 떨어 버리지만 원주민들이 경험해 온 바로는 몸이 붓고 마침내는 곧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바와는 반대로 조금도 상함이 없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면서 뱀에게 까지 물려 죽게 되므로 신에게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6f) 아무 이상이 없고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6b) 즉 신에게 사랑을 받는 자라고 생각을 돌려 갖게 된다.

이 사도행전14:11~18에 루스드라에서도 나면서부터 지체장애자 된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을 보고 바나바와 바울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이 멜리데 섬의 사람들은 다음 문맥을 보면 바울의 신기한 능력의 이야기는 빨리 퍼져나갔던 것 같다.

주님은 자신을 죽기까지 신뢰하고, 위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들은 어느 때 어디에서나 저들의 생명을 철저하게 보호하심을 확인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짐을 보게 된다.



Ⅲ. 바울 사도를 통하여 영육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7~10)

이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바울 자신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섬의 원주민 추장으로 여겨지는 보블리오 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토지가 많다고 하는 이야기는 없지만 다만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고만 기록되고 있지만 그가 복 받을 근거는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 우리 라는 표현이 276명의 배에 탔던 전부였는지 아니면 바울을 비롯한 일행뿐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영접하여[헬, 아나데코마이(anadecomai), 맡아서 돌보다, 환영하다, 접대하다] 라는 뜻으로 봐서 기꺼이 바울 일행을 지극한 환대로 대우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뱀에게 물렸지만 상하지 않은 바울의 능력으로 인해서일 가능성은 있지만 3일간이나 극진히 접대한 것에 대한 감격을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자신의 분에 지나도록 접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지극정성은 바울로 하여금 열병에 걸린 그의 아버지에게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낫게 하는 또 다른 역사를 일으켰고, 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섬에 사는 모든 병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는 복음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 섬 사람들과 배에 탔던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로 비록 모든 것이 모자랄 수 있는 섬이지만 후한 예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그 섬을 떠날 때에도 여행에 쓸 물건들을 배에 실어주는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서두에서 로마로 가는 바울의 마지막 여정인 이 멜리데 섬에서 있었던 일은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증거한바 있다. 하나님은 복음을 주신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 복음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력을 미치게 하려는 헌신에 성령의 역사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 멜리데 섬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감격하게 한다.

복음은 과연 역사와 지역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는 당시 문명의 사람들인 헬라인들과 다른 이 멜리데 사람들을 우리 말로 하면 “쏼라 쏼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우리 성경에는 [토인, 헬, 바르바로스(barbaros)]들이라고 번역했지만 바울의 뱀에 물리는 것을 보고 표현하는 모습에서도 대단히 미개한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멜리데 섬에 바울이 올라 옴으로서 이들의 삶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들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복음은 분명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진정 놀라운 능력이다. 바울 사도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라고 고백했다.

또 당시에 최고의 지식과 과학과 의학을 자랑하는 고린도인들에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선언한 것처럼 그 동일한 복음은 오늘 동일한 믿음으로 그 복음에 반응하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꼭 같은 능력의 도구이다.

하나님께서 죄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뿐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남겨두고 가시는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복음의 능력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는 바울을 통해서 확증하신다. 죽음과 고통의 바다를 믿음으로 이기고 나온 바울에게 주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위엄과 권능을 입혀주시므로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의 복음을 위한 철저한 순종과 헌신과 고백의 열매로 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같은 농도로 누리지 못하는 것은 같은 순종과 헌신과 고백이 없기 때문에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미약한 모습으로 약화되고 마는 것이다.

복음은 분명 인류를 치료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이다. 이 시대도 바울의 때에 못지 않는 시대의 긴박성이 세계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눅21:28)는 같은 누가의 기록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도 바울처럼 철저히 헌신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선물은 나타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르는 도구들이 되자. 이 세상은 거처가야 할 과정이지만 복음과 함께 충성하면 거기에는 지중해의 풍랑 속에서 고난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바울에게 멜리데 섬의 기적과 영광을 주신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믿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