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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시 1:1~3 2009-11-29
복있는 사람은…?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아무리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마냥 행복할 수 있는 교훈의 시가 바로 이 시편 1편이고, 실지로 많은 사람이 복 받은 삶의 모범으로 삼고 사는 말씀도 이 말씀이다. 사실 이 짧은 시편 1편에 인간에게 나타나는 복과 저주, 전국과 지옥이 다 들어 있어서 구원과 멸망, 신앙과 불신앙의 원리를 다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 이 시편 1편 역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진 약속만 지킨다면 나머지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당되는 부분,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만 순종한다면 약속은 주님께서 지키실 것이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신앙하면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한 편만 매일 아니 매 순간 암송하고 묵상한다고 해도 영혼의 양식으로 생명이 되고 묵상할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낱말은 오늘 본문에 쓰여진 [아솨르, ashar]와 또 다른 한 단어는 [빠라ㅋ, barak] 라는 두 단어다. 먼저 이 두 낱말의 사용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빠라ㅋ, barak, 축복, 번성, 관대한, 연못, 선물-415회(파생어포함)];

하나님이 누군가를 복 주실 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고 = 대상13: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 받은 사람에 의해 축복할 때 사용되었다. = 삼하19: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복을 간구하거나 축원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 시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이처럼 ‘barak’는 하나님의 복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큰 긍휼과 자비를 인하여 인간의 산업과 후손과 육신에 내려주시는 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단어의 또 다른 특성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낱말이 LXX 역에 번역되면서 , ‘eulogia로 번역되어 구약과 신약의 조금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솨ㄹ, ashar, 주로 복수형인에쉐ㄹ, esher,(‘얼마나 행복한지! How blessed is ~’ 행복, 복된, 행복한)로 쓰여서 -44회(시편 26회, 잠언 8회)] 곧다, 복되다, 복되다고 하다, 행복하다, 앞으로 가다, 정직하다, 번성하다, 인도하다, 안내하다, 구조하다.

대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에 대하여 인간이 고백 혹은 기원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Weiser).

신약에서 같은 낱말은 ‘마카리오스, makarios’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 나라에의 참여를 통해 오는 특이한 즐거움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Kittle). 따라서 구약 지혜 문학의 첫 권인 시편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 즉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자의 복에 대한 선언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을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상보훈의 ‘~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으로 팔복으로 쓰여지고 있는데 그런 입장에서 팔복과 이 시편 일편은 바로 연결되어지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신 말씀은 이 시편 일편을 더욱 분명히 하는 내용이다.

[아쉬례하이쉬ashire~ haish ]사람이란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은 단수인 반면에 복이란 말은 복수로 기록이 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그 사람은 여러 모양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결국 시편 기자는 복을 기원하는 큰 감격으로 시편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복을 누릴 사람의 삶을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시편에서 독특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무한한 복을 누구에게나 제한 하지 않고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신 복은 이미 완료되어 있다. “~ 사는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다.” 가 아니라 “복을 받은 사람은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 게 살 것이다.” 라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오늘도 이 복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자의 삶이 과연 복 받은 삶인가 그렇지 못한가를 점검하여 이제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신 복을 넘치도록 누리는 …



Ⅰ. 복 받은 사람의 싫어 하는 것.(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늘 먼저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사죄의 은총도 그렇고,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다. 모든 것을 이미 다 주시고 “이것을 누리도록 살아라!” 당부하시는 주님이시다. 이미 좋은 것들은 다 주어졌다.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복과 은혜도 먼저 주어졌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모든 것들은 다 완벽하고 자신만만하기 때문이다. 구원도 사랑도 천국도 모두 먼저 주어졌는데 그것은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한 어떤 대가도 지불한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인류 모두를 위해서 먼저 주어진 구원과 은혜는 그것을 유효하게 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그리스도의 피로 치뤄진 값이 결재가 될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상품은 선불제로 돈을 줘야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처럼 상품을 먼저 주고 사용한 후에 값을 지불하는 후불제 라는 상술이 더러 있다. 물론 이러한 후불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것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분명 하늘의 것을 모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불완전한 상품은 절대로 후불로 팔 수 없다. 이런 원리로 마케팅 전략을 하는 업체들이 요즘은 상당히 많다.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어서 어떤 이유로도 흠잡을 데 없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써보고 돈 내라!”는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만 쓰실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이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만든 제품들도 나중에 하자가 발견되고 고정적으로 몇 %의 불량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리콜을 시키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절대로 리콜을 시킬 필요가 없는 완벽한 것들뿐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분이시고 주님께서는 절대로 불완전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에게 약속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완전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신18:13)

누가 감히 완전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실 수 있는 완전한 분이다.

“복 있는 사람(How blessed is the man)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먼저는 부정적으로 복 받은 사람이 삶에서 금하는 세 가지를 거론하고 있고 이것은 당연히 오늘 우리도 복 받은 사람이라면 자연히 경계되는 것들이어야만 할 것이다.

①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who does not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악인[라솨, rasha, (활동적인) 악한 사람 + 정죄된, 죄 있는, 불 경건한, 사악한, 악을 행한, 하나님의 율법으로 죄인으로 정죄된 자를 의미한다.]; 꾀[에짜ㅎ, echah, 의도, 도모, 모사, 방책과 같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 대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삶의 원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두 곳만 인용을 해 보면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욥15:35);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9; 막7:21)

②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Nor stand in the path of sinners)~

죄인[하타ㅎ, hatah, 죄인 또는 유죄로 간주된 사람, 범죄자, 죄 많은, 죄인]; 길[떼레ㅋ, tterek, 생의 여정, 행동의 양식, 경로] 신약의 죄“하마ㄹ티아, amartia” 표적을 빗나가거나 또는 길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의미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가르치는 말씀으로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③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Nor sit in the seat of scoffers)~

오만한[루쯔, louts, 본래 의미는 입을 삐쭉거리다, 비웃다, 조롱하다, 희롱하다, 비웃다]

자리[모솨ㅂ, moshab, 터, 회기, 주거(장소나 시간), 모인 사람들, 거하는 곳, 앉기, 상황]

이러한 자세는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말3:14~15) 하는 것처럼 악한 말로 하나님을 향하여 조롱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복 받은 자가 따를 수 없는 이 부정적이고 반 신앙적인 세 가지의 자세는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좇다, 서다, 앉다’로 점점 악으로 나아가는 죄인의 과정을 말하고 있어 갈수록 악화되는 모습을 진행되는 낱말의 사용을 통해서 깨닫게 한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딤전6:4) 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참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나고 복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세 가지의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Ⅱ. 복 받은 사람의 즐기는 것.(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첫 절에서 복 받은 사람들의 부정적이기 때문에 소극적인 부분을 돌아 봤다면 이 구절에서는 복 받은 사람이면 당연히 좋아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표현 자체는 물론 십계명을 포함하는 모세오경인 율법[토라ㅎ, torah, 법칙, 법령, 십계명, 오경] 그대로를 말씀하기도 하지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교훈인 성경전체의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즐거워하다[헤페쯔, hepets, 기쁨, 가치 있는 것, 반김, 소원하는 것, 기꺼워하는]” 사람은 그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정해진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좋아 하는가?

우리가 마치 돈을 좋아하는 것처럼,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갈망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교훈을 기뻐하고 기다리고 소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복 받은 사람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①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기쁨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항상 주님의 말씀에 굶주린 자세를 의미한다.

③깨달음에 감격을 실천해보고자 하는 자세이다.

④계속적으로 말씀이 지시 하시는 대로 삶을 사는 것에 즐거움을 삼는 것의 의미한다.

⑤당연히 말씀의 지시와 실천의 삶을 묵상하여 되새김질을 하는 자세이다.

“묵상하다[하가ㅎ, hagah, 중얼거리다, 신중히 생각하다, 상상하다, 묵상하다, 속삭이다, 연구하다, 이야기하다, 감명하다]”

시편에서 가장 주님의 말씀의 교훈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119편에서 이러한 사람을 묘사하는 내용을 보면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131) 라고 묘사하고 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



Ⅲ. 복 받은 사람의 삶의 모습과 미래.(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①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내[뻴레ㄱ, peleg, (물을 대는) 작은 운하, 강, 개울] 사람이 임으로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수로를 의미한다.

②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시절[엩, et, 지금, 때, 후에, 늘, 끊임없이, 저녁, 오래]

③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마르다[나벨, nabel, 시들다, 떨어지다, 실패하다, 실신하다, 어리석다, 어리석게 행동하다, 가치 없게 만들다]

위의 세 가지의 모습은 새 예루살렘의 모습에 나타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④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짜라ㅎ, tsarah, 돌진하다, 좋다, 적당하다, 유익하다, 번영하다]

복 받은 사람의 삶은 인간의 잔꾀로 얻는 그런 종류의 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 얻는 완전한 행복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비젼을 보고 사는 요셉에게서 보게 된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종으로 있을 때도 감옥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은 세상적인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종살이 하면서, 감옥에 갇혀서 형통했다면 그보다 불리한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형통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방법과 수완이나 사람의 머리로 여는 장벽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도록 하야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열린 문을 두시는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복 받은 사람은 죄악 된 인간의 머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방법으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편에 가담하지 않는 대신 어느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 돈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함 같이 주의 말씀을 사모하여 묵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조건에 관계없이 앞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서 새 예루살렘에 이를 때까지 막힘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