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빌 4:4~7 2009-12-20
기뻐하라 기뻐하라!  
빌4:4~7 “기뻐하라 기뻐하라!”

바울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거나 ‘항상 기뻐하라’는 당부는 이 4장의 빌립보서 속에 무려 11번이나 증거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만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께서 자연스럽게 기뻐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기뻐하라!”를 강조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실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이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 세상에서의 기쁨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마치 가나혼인잔치의 포도주 같은 것이 사실이다. 기쁨이 바닥날 때 그것을 대치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근심과 걱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기뻐하는 사람이거나 걱정 근심하는 모습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별명은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늘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신앙으로 인해서 있게 되는 삶의 자세는 순간의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즉 ‘항상’이라는데 부정할 수 없고 이것은 적어도 영원에까지 연결 되어 진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육체로만 산다면 아침저녁이 다르고 밤과 낮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불변하는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미 기쁨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쁨에 빌립보 교회를 비롯한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 함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8)고 자신의 기쁨을 소개했고 다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바울 사도는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를 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당부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면서 있었던 바울이 당한 어려움과 그것을 찬양으로 해결하는 모습(행16:19~25) 속에서도 빌립보 교우들은 이미 확인된 바울 사도의 말씀이다.

“기뻐하라[헬, 카이로(chairo) 유쾌하게 되다(은은히 행복하다), 유복하다, 일반적으로 안녕,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이런 이유에서 히브리인들의 만날 때나 헤어질 때의 인사인 샬롬도 기쁨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70인을 내어 보냈다가 돌아왔을 때 그들이 신이 난 것은 귀신들이 자신들의 말에 복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쁨의 이유를 달리 제시하셨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10:20)

결국 주님께서 주신 이 교훈에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답변이 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이 사실을 항상 확신할 수 있다면 하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호적이 나의 상급이 하늘에 있다. 세상이 내게 어떻게 변하든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하는 사람은 이미 이 기쁨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은혜의 증거를 나누면서 바울과 같은 기쁨을 회복 우리 모두가 …

오늘 주시는 이 교훈은 기쁨을 증거하면서 어쩌면 우리도 바울과 같은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근거와 방법과 이유를 순서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Ⅰ. 관용 할 때 기뻐할 수 있다.(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세상에서 구별된 믿음의 사람들의 가치는 세상의 사람들의 가치와 달라야만 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을 너무나 극단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를 갖지 못한고 허둥댄다.

그런 이유에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용하지(여유롭지) 못하고 늘 사람들에게도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쁜 모습으로 비쳐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우리의 각박한 모습부터가 기쁨을 잃게 되는 이유가 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권면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관용, 헬, 에피에이케스(epieike~s), 적당함, 온화한, 너그러운, 절제하는, 인내하는]을 손해나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안하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의미한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뜻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있어만 줘도 행복한 사람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앉아 있으면 불협화음이 나고 불안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심지어 자신에게 핍박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사랑으로 소화하면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13:4~5) 라고 소화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울 때 이러한 자세가 요구 되야 함을 가르친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딤전3:3)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셨고 역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라고 산상보훈에서 가르치고 계신다.

언제나 관용하고 너그러움이 강한 능력임을 증거하고 계신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가까우시고 여유를 가지게 된다는 교훈이 기뻐할 수 있는 조건에서 첫째라 가르친다.



Ⅱ. 염려를 버릴 때 기뻐할 수 있다.(6f)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우리의 기쁨을 잃게 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적이 바로 “염려”이다. 에덴 이후 죄의 사람들은 염려를 벗어버리는 것을 가장 힘겨워 하는데 사실 염려하여 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염려대신 주님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기록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메~덴 메림나테(me~den merimnate] 라는 말은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이다(Robertson). 이것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말씀이다(Kent).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두려움과 염려를 대신 지시고 “이제 너희 모든 염려를 내게로 가져와라!” 초청하고 계시고 그 초청에 응답한 사람들이 바로 신앙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선진들의 권면을 들어보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결국 [염려, 헬, 메림나오(merimnao) 근심하다, 염려하다, 생각에 잠기다]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차지도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는 증거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크지 않은 일에도 머리를 싸매고 날밤을 새우고 골치가 아픔 것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을 본다.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 염려이기 때문에 그 염려를 주님께 가져오라고 당부하심을 듣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렇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가져가 맡기십시오. 그래야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이상 기쁨을 회복할 수 없다.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고 기뻐하라!”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Ⅲ. 기도의 사람이 기뻐할 수 있다.(6b)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고 그런 이유에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하였고 이러한 표현을 또 다르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될 조건은 “모든 일에(영, in everything)” 어떤 상황은 주님께 가지고 나가야 될 필요가 없는 것은 없다. 여기의 또 다른 하나의 조건은 ‘감사함으로’ 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헬,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 감사한 말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한 행위로서) 감사드림]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낸다.”(Meyer).고 이해하고 있다.

주님께서도 기도에 대한 확신의 비유를 말씀하신바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18:1~)

모든 사람들이 염려를 대신하여 기도할 수 있다면 늘 기쁨 안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적어도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가장 구체적인 자세이다. 그런 이유에서 기도의 사람은 주님의 사랑과 응답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걷고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는 데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움은 형벌에서 오는 것이고 기쁨과 안전은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따라서 기쁨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걱정 근심은 형벌을 두려워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주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는 대신 십자가의 희생을 인하여 죄를 해결 받은 환희로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Ⅳ. 마음과 생각을 예수께서 지키시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다.(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실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이 그것을 기뻐하는 자들에게 평강일 것이라 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모든 지각에 뛰어난 -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의 머리에서 짜내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사람의 지혜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이 역사 속의 모든 지혜자(智慧者)들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 - 이것은 염려를 버리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뢸 때 그 기도의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로 세상의 인간끼리 맺는 조약이나 경계로서 만들어지는 평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며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하나님의 평강”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면 가장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지키시리라[헬, 프루레오(phroureo), 보초를 서다, 둘러싸여 있다, 보호하다]는 ‘호위하리라’는 군대 용어로 이것은 로마 군대의 수비대가 보초를 서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평강은 믿는 자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모든 근심과 실망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보호해 준다(Kent).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 도단성에서 게하시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보게 한 엘리사의 모습이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26:53~54) 이렇게 우리의 육적인 보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도 맨 앞에서와 같은 하나의 단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임을 잊지 말자.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은 영혼의 눈이 떠져야 볼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1:18)

우리는 관용할 때 기뻐할 수 있고 염려를 버릴 때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함으로 기도할 때 기쁨을 회복할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서 확실히 지키실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