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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1:27~34 2010-09-19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주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 계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며 구원의 역사 속에 피로서 세운 새언약이라는 귀중성과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구속의 역사를 마칠 때까지 이 약속은 확인되어야 할 언약이라는 사실의 중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을 가지고 새로운 제사의 예배 속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확인해야 함에도, 주님께서 직접 주신 이 귀중한 제사적인 행위를 생각 없이 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의 귀중함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부정적인 모습이 초대교회에나 오늘에도 있을 것이라는 경계가 오늘 주의 만찬의 가르침을 닫는 부분에서 강조되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이나 명령을 잘 순종하면 복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주님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우리를 살펴야 하는데 그것이 자기 훈련이면서 신앙의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면서까지 죄를 짖는다면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처럼, 자신들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는 불경건이 되고 책망의 이유가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구약의 형벌처럼 당장에 죽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죄를 먹고 마시는 일이 쌓여간다면 믿음 생활한 나머지는 영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두려운 경계 때문에 명령하신 것과 같이 자주 이 거룩한 예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당부의 말씀은 역시 거절되어서는 안되고 교회나 성도가 언제나 자신을 살펴서 진정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깊이 감격하고 늘 더 높은 영적인 세계로 낳아가는 …



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27~29)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우리 죄를 위해 내어 주신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의 사건이요 사랑이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이 은혜와 사랑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죄사함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오히려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① 합당하게 은혜에 참여해야 한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합당하지 않게, 헬, 아낙시오스(anaxios), 불손하게, 가치 없이] 우리의 자세에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치를 잃는다면 … 두려워해야 한다. 세상에서도 그럴진대 믿음 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한 자세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은혜 받은 자답게 행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은 하나님의 백성 된 모습일 것이다.[왕자에 합당한 자세]

②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27b),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29)”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 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2: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3:28~29)

③ 언제나 자기를 살펴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28)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세이고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신앙의 문제는 자신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피려고 하는데 있다. 겁 없이 함부로 하나님께 나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31)

이왕에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하셨듯이 나도 은혜 받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나아가고 받으므로 생명을 먹고 마심이 되어야 한다.



Ⅱ. 주님의 만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 결과들.(30~32)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오늘 말씀의 두 번째는 주님의 은혜에 어울리지 않게 주님의 몸과 피를 가치 없게 여긴 것에 대한 결과를 경고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 부정적인 것들이 ‘많고, 적지 아니’ 한 것이다. 생명과 기쁨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많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속에 많다고 하는 것은 생명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이다.

①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30) [ⓐ약한 자 = ⓑ병든 자, ⓓ잠자는 자] 靈肉의 不利益을 생각할 수 있다.

② 이런 결과 자체가 주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32f) 사람의 징계도 좋은 것이 아닐진대 주님께 징계를 받는 것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한 자식을 회개케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수단이다(딤후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히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③ 그러나 이 상황에서의 징계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결국 우리가 세상과 함께 멸망을 받지 않도록 주님께서 징계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있다면 즉시 회계하고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 판단에 관한 경계이다. (31)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헬, 디아크리노(diakrino)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스스로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 (32)우리가 판단(헬, 크리노(krino)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자녀로 하여금 회개케 하려는 판단이다; 세상과 함께 정죄함(헬, 카타크리노(katakrino)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 세상과 함께 마지막에 멸망 받는 것을 의미한다.



Ⅲ.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라!(33~34)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하나님 앞에서의 모임은 복되고 은혜롭고 감사되고 영광 돌리는 모임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잘못된 자세로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하고 두려워해야만 한다.

① 여기서도 기다림을 당부하신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헬, 엑데코마이(ekdechomai)-기대하다, 바라다, )” 이 말씀은 앞의 21절에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는 말씀에 나타난 안타까움의 장치이다.

②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34f)

허기를 메우거나 함부로 주의만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 이유는 잘못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29~32) 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주의만찬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참여할 것을 권면한다.

가장 거룩한 의식에서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기념하라는 것이 주님의 분명한 명령이고 자신을 살피고 기념하라 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결과들은 결국 자신을 신앙적으로 바로 판단치 못하고 징계를 받고 그럼에도 바로 회복하지 못한다면 세상과 더불어 정죄함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경계이다.

주의 만찬은 기대와 기다림의 거룩한 행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책망 받는 모임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오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와 계신 성령과의 은혜롭고 신령한 교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