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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2:12~21 2010-10-03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지난 시간에 직분은 여러 가지 이지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은 같은 분이라는 부분을 나누었는데 그 가르침을 좀더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를 주고 있는 말씀이다.

교회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가진 몸에 비유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됨을 확인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해서 분파를 만들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비롯해서 오늘도 갈기갈기 찢어진 교회의 모습을 책망하고 하나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이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분명하다면 한 피가 흐르는 유기체적인 관계에서 한 머리에 의해 명령되고 이끌려 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바울 사도는 [교회론]이라고 하는 에베소서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엡4:4~6) 라고 선언하면서 하나는 절대로 흩어지거나 나눠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바 있다.

한 몸이 찢어지거나 나눠지면 죽는다는 논리는 이러한 이치를 잘 이해하게 한다. 우리가 아무리 두 개의 몸이 필요할 정도로 바쁘다고 해도 절반으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인류에 오로지 한 분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오늘 날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각각 주님의 몬 된 모습과 같은 명령을 감당하는 모습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귀한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각 사람마다 독특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요8:39) 하신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면 아브라함의 행했던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같은 아버지의 자식이라면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을 수 밖에 없고 한 몸이라면 같은 머리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임에도 너무나 다른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서로 지체됨의 확신을 회복하고 어느 지체도 필요(쓸 데) 없거나 부정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



Ⅰ.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각자가 생김새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정도로 꼭 같은 지체들을 가졌다. 또 지체가 모자라거나 기능을 제대로 못하거나 더 있는 것을 [장애자] 라고 한다. 그리고 장애자라는 몸을 가진 사람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행동에서도 불편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왜 눈은 하나나 세 개가 아니라 모두 둘이며 코는 뒤 꼭지에 붙어있지 않고 앞 얼굴 중앙에 붙어있다. 또 이런 일반적인 모습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은 만약에 코가 귀 있는 곳으로 붙어있는 모습을 보면 놀라서 섬뜩해 한다.

한 몸에는 같은 피가 흐르고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흘러야 한다. 그리고 그 피는 몸에서 골고루 심장이 펌프질을 아는데 이 심장을 heart 즉 사랑으로 표시하고 그리스도의 몸에 고루고루 피가 가기 위한 역할은 역시 [사랑] 이라는 도구로 가능하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12) 했는데 여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확증하는 표현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한 것이다. 몸에 붙어 있지 않고 사고로 지체가 따로 떨어지면 그 지체는 피가 흐르지 않고 죽게 되고 몸도 불편하게 되는 이치는 우리가 너무나 쉽게 경험하는 사실이다.

모든 지체는 사실 몸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다른 점은 계속해서 지체가 다른 종류는 아니지만 더해진다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상한 지체인 여섯 손가락 같은 기형의 모습으로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있는 지체가 튼튼해지고 강화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

인종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한 몸에 지체가 되는 원리는 다른 방법이 없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결과적으로도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것이다.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 그렇지만 하나의 방법 한 세례로 죽고 다시 살고 이 주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영적인 활력인 같은 성령을 마시므로 같은 소망과 목표를 위하여 살고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한 성령으로 거듭나고 한 성령을 마심으로 같은 영적인 모습과 약속을 나누고 소유하는 …



Ⅱ. 서로의 지체를 인정해야 한다.(14~17)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 몸은 지체가 여럿이다.(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2.다른 지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15~16)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21)

3.지체는 역할이 다르다.(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모두가 같은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지체를 대신할 수도 없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의 차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로 뒤에서 보는 대로 “…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24b) 라는 고백에서 읽게 된다..



Ⅲ. 각 지체는 하나님께서 두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어찌 보면 내용이 계속 반복 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모든 지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 몸의 모양이 이렇게 생긴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사람도 보기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욕심을 낸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소유하는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데 가치가 있다.[아름다움-시각적 효과]

1. 지체는 사람이 원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두셨다.(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각 지체는 하나님의 의향과 뜻에 의해서 있게 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서로의 귀중성을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2. 한 몸과 많은 지체가 있다.(19~20)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12)

만약에 ‘여러 몸에 한 지체’가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3. 쓸데 없는 지체는 없다.(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이제 이 부분의 좀더 구체적인 부분은 다음주에 더 자세히 다루게 된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23~24)

그러므로 지체를 향하여 ‘너를 쓸 데가 없다’라는 것은 그 지체를 있게 하고 두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다른 종교의 교리와 방법을 따라 한 교회에 더해지고 지체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신 한 세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에 있게 되었다.

비록 같을 수는 없고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방법과 약속에 의해서 지체된 다른 지체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서로를 부정해 버리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합당하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각 지체를 하나님께서 두셨다고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속에 쓸데 없는 지체는 없다. 다만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필요를 찾지 않기 때문이고 서로를 소외시켜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