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고전 14:14~25 2010-11-07
영으로 기도하고 도 마음으로 기도하며¨  
예배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육신의 것으로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요소를 총동원하여 드리는 최고의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하나님께서 영이시지만 영으로만 드려도 안되고 역시 육신의 요소로만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수 없다. 때문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고 바울은 잘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당연히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는 바울 사도의 당부를 순종해야만 한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특별한 부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가능해졌지만 영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범죄 후 에덴 동산을 쫓겨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까지 참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루는 이 말씀은 이런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의식하여 영과 마음과 육신(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의 삼차원적인 찬양과 기도를 할 뿐 아니라 그 기도와 찬양에 참여하고 접하게 되는 사람도 제외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비한 권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와 기도를 분명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에도 사람이 이해하고 참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배하는 모임 자체가 덕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고 듣게 해야 한다는 이중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서 우리의 마음 모아 들어야 할 말씀이다.

결국 하늘의 신비한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과신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기도하고 찬양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아멘 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알아 듣게 하여 각자의 숨은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경계의 교훈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있어 비단 말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자세에 있어서도 같은 교훈을 하고 있다. 진리를 순종하는 모두가 어색함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자세로 더불어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위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령한 교제는, 옆으로 같은 주님의 백성들과도 아멘으로 교통이 되어야 함을 영광을 돌림의 신비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Ⅰ. 영으로 또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라!(14~17)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자신이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면 당연히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나 기쁨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즉, 영육이 다 유익할 수 있는 기도가 자신에게나 함께 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이 됨을 말한다.

여기에 대한 바울 자신의 고백을 적고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15)

영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히 주님께 합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꼭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것 즉, 신비한 것만이 영적인 것은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에 영적이지 못한 부분을 인위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A. W. Tozer 같은 분은 경고한다. 신령해야 할 부분을 모두 인위적인 것들로 메우고 사람들은 그것을 영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이거나 육신적인 것의 반대 의미로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지난 시간에 [신령한 것들]이란 ‘육체적인 것이 아닌’이라는 말씀을 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이란 당연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들이다.

그것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들을 버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했기 때문에 버림을 당했다. 오늘의 복음 시대에도 이것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16) 사실 영어로 기도를 해도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 아멘 해야 할 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모든 사람이 “아멘” 하여 더불어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영으로 마음으로 먼저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모든 주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교통하는 ¨



Ⅱ.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18~22)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8) 한 것으로 볼 때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방언을 더 말할 수 있었지만 교회에서나 사람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깨달은 마음으로 더욱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했음을 공언하고 있다. 바울은 분명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까지도 가졌겠지만 마음으로 깨달은 말로 가르쳤다는 고백이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20) 영적인 교훈에 있어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비슷한 표현을 보면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16:19b)는 기록이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21)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 헬, 헤테로글로쏘스(heteroglossos), 외국인, 외국어를 쓰는 사람 = 헬, 헤테로스(heteros), 낯선, 다른) + 헬, 글로사(glossa), 혀, 언어)]

이 말씀은 사실 대단히 두려운 말씀으로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여호와의 교훈을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롱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더듬거리는 듯한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들을 조롱하실 것이다.)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28:11)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때에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장차 외국인들(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한 말씀의 의미이다.

이렇게 다른 방언하는 자가 유대인에게 온 것은, 그들을 벌하시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교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말로 회중에게 말하면 그것 역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모두에 대한 벌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22) 결국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교회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예언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유익함을 다음에서 말씀하고 있다.(24~25)

영적인 것에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되는 삶을 삶으로 주님께는 영광을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자신에게는 기쁨과 자긍심을 가지고 신앙하는 ¨



Ⅲ. 신 불신간의 모든 사람이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라!(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교회는 불신자들 앞에서 그들이 거듭나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외에는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23)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이런 평가를 듣고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모습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운 일 때문에 바울은 다시 당부하기를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24) 다 예언으로만 말하면 믿는 사람이건 불신자들이건 영혼과 마음에 책망을 듣고 자신들이 회개해야 할 것임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예언, 헬, 프로페튜오(propheteuo), (되어질 일을) 미리 말하다, 앞서서 말하다= 헬, 프로(pro) 먼저, 앞서, 전에 + 헬, 페미(phemi), 말하다, 선언하다]

그 결과로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25)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이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교회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할 분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결과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과연 하나님이 계시느냐?’고 반문하는 불신자들이 많은 이유는 이러한 주님의 교훈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고 세상과 다름이 없는 성별 되지 못한 교회의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반드시 돌이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제외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께만 존귀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만 좋아하고 끝내는 것도 아니다. 위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함께하는 모두에게도 잘 알아 듣고 깨달음과 회개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신령한 것일지라도 참여한 사람들에게 외국어를 듣듯이 생소한 것은 은혜가 아니라 형벌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어도 경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신, 불신 간에 모두가 깨닫고 경계를 받을 수 있는 덕스러운 의식이 되어야 한다. 물론 불신자들을 의식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과 존귀를 잃어 버려도 안될 것이다.

예배와 거룩한 모임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나셨을 때 천사들이 찬송 드렸던 것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세상과 구별되면서도 세상의 사람들을 위한 이러한 영광된 교회와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