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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5:1~11 2010-11-28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당시에 고린도 교회의 신앙적 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이 15장이 그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변들임을 볼 때 21세기의 과학의 시대보다도 더 부활에 대한 이해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당시 그 수많은 우상숭배의 다른 종교들이 있었음에도 역시 부활에 대한 신비를 이야기하는 종교는 없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기도 한다.

바울 사도는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긴 글을 시작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부터 벌써 호소력 있는 원칙을 가지고 주님의 부활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의 예언된 근거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성경대로, 성경대로” 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어서 이것은 사람들의 이론이나 환상이 아닌 이미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예언된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두 번째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한 두 사람이 십자가에 죽은 주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환상 중에 본 한 구석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행26:26아그립바 왕에게), 사도들은 물론이고 한꺼번에 5백 여명이 함께 목격한 객관적인 사실이다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성경과 그것을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객관적인 검증 위에 자신이 직접 만나 뵌 주관적인 경험을 고백 함으로서 완벽한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사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이래야 완벽한 것이 된다. 성경의 예언과 성취 그리고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경험된 객관성 위에 자신이 확인한 주관적인 경험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바른 신앙이 될 수 없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인 십자가가 각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치도 이와 같아야 한다. 성경이 약속하지 않는 것은 믿음에 있어서 호소력을 가질 수 없고 그것이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 속에서 확인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신앙이 되어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세가지 중 한가지만 없어도 바른 신앙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오늘, 같은 원리에서 신앙하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 사도와 같은 고백 속에 하나님의 자녀 됨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약속이 각자에게 검증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고, 이 부활의 장을 마무리 할 즈음에는 적어도 부활에 대해서는 확신을 확인하는 …



Ⅰ. 성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1~4)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증거된 복음이 단순히 들음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1f) 물론 먼저 완벽하게 알고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으므로 알아지는 것이 복음의 이치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들음에도 알게 되지 못한다면 그것도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고린도 교우들을 향하여 바울은 다시 말하기를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린도 교우들도 이미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런 덕택에 그 복음가운데 서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 사도는 다시 확인하기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2)고 오늘 우리의 신앙의 경계를 주고 있다.

이 앞부분에서는 복음가운데 우리가 서 있다면 바울로부터 전해들은 교훈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당부를 주고 있다. [굳게 지키다, 헬, 카테코(katecho), 꽉 잡다, 붙들다; 히3: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2b) 우리는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확신하고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원리도 바울이 증거한 것인데[엡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서는 역시 그 바울 사도께서 믿음에 대한 경계를 주고 있다.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라는 경계는 ‘헛된 믿음’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헛된 믿음이 아니라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따라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첫 부분에서 두 번째 중요한 확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의 예언 즉, 약속을 따른 것임을 증거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3) 무엇보다도 남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 자신이 받은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고 고백한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3b~4f)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53:7~9)

부활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6~27)고 기록함으로서 구약의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확인해 주고 있음을 친히 증거해 주셨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4b)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은 OT 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사심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 없는 증거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또 이 원리는 죽음(희생, 겸손, 헌신 자신을 부인하는 것들)이 있어야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우리 많은 사람들의 이기심은 죽지 않고 부활에만 욕심을 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성경의 교훈이 아니다. “성경대로 죽고, 성경대로 사는, 죽고 사는 이 약속에 모두 참여하는 …



Ⅱ. 부활의 객관성.(5~8)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하신 후 주님을 뵌 사람들은 장사지낸 무덤을 지키고 앉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로부터 수없이 많은 그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그 때까지만도 전혀 주님을 믿지 못하고 반대편에 서 있었던 바울 자신에게까지 나타나셔서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주신 사실까지도 증거하고 있다.

①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②열두 제자에게와 ③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④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⑤모든 사도에게와(행14:14바나바) ⑥내게도 보이셨느니라(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10:41)

①부활하신 주님은 나타나실 때마다 대상의 수가 같지 않았다. ②주로 주님과 살아 생전에 잘 아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③반대편의 불신자(바울)에게도 나타나셔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으셨다. ④부활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헬, 플레이온(pleion), 더 많은, 대부분, 매우 많은]는 살아 있고” 바울 사도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까지도 주님을 함께 뵈었던 사람들 중에 다수는 살아있었고 그들도 바울의 말을 입증해 줄 것이라는 의미를 이 말씀에서 이해하게 된다.

누구든지 부활을 확신한다면 인생을 좀더 능력 있게 살고 어떤 고통이나 위기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바로 여러분 모두가 …



Ⅲ. 바울 사도의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9~11)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이 부활의 주님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바울 사도의 겸손을 본다. 그는 사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께 “주여 누구시니이까”?(행9:5) 라는 두려운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교회의 핍박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반대자였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은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9)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8:3)

그럼에도 어떤 사도보다 더 수고한 바울의 고백을 듣는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

이것은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모든 자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①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②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③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공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세야 말로 참된 주님의 일꾼이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다시 객관성과 주관적으로 된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바울의 당부는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11) 증거해 준 대로 믿는 가르쳐 준 대로 믿는 같은 믿음을 고백한다.

주님의 부활은 성경과 부활 후 그를 만난 자들에 의해 증거된 객관적인 사실이다. 부활을 믿고 믿지 않고가 삶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들은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바울은 경계한다.

성경이 미리 예언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고 바울같이 그의 부활을 만난 후 삶이 뒤바뀐 증인들에 의해 확인되고 오늘 우리 각자의 고백과 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우리는 이 약속된 부활의 영광과 함께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