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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5:20~28 2010-12-1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인류의 바램이며 소망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하고 탄식하며 살다가 절망의 세계인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서고 만다.

이 세상에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의 온 갓 최첨단을 누리면서도 영원한 숙제로 남겨있는 죽음은 결국 사람의 힘으로는 치료될 수 없는 영원한 불치의 병이다.

그렇게 모든 인류 위에 군림하던 죽음의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최초로 그야말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야 마땅한 최초의 죽음의 정복자가 되심으로 그를 따르는 모두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제 죽음의 무덤은 수치를 들어내고 말았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므로 계속해서 부활이 있게 되었다.

바울 사도는 이 부분에서 최초의 죽음의 통로가 되었던 아담으로부터 최초의 죽음에서 탈출하는 출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대비시키면서 절망에서 소망으로 슬픔에서 승리의 기쁨을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세상의 역사를 바꾼 첫 사건으로 승리를 노래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로마서5장 12~21의 [죄]와 [생명]의 내용과 함께 이해한다면 더욱 확실한 감사와 기쁨을 갖게 한다. 특히 그 중에 17~19절은 오늘 21~22절의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우리가 아담 이후로 누구든지 원하든 원치 않든 죽음에 던져지는 비극적인 운명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로운 행동으로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사망을 향하여 큰소리 칠 수 있는 생명의 사람들이 되었다. 할렐루야! 생명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Ⅰ. 아담 한 사람으로 온 사망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치료 되었다.(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최초의 사건은 누구에게나 놀랍다. 그것도 사람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의 확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놀랄만한 뉴스거리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소식을 듣고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더욱 불쌍한 인간군상들이다.

1.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 첫 것은 언제 어디서나 귀한 것이고 성경에서 첫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첫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둘째 셋째, 계속적으로 열매가 맺힐 수 있다는 귀한 상징을 가진다. 23m절에도 “…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2. 한 사람에서 모든 사람으로 퍼진다. 좋은 소식도 질병도 나쁜 소식도 처음 한 사람으로 시작한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 그래서 시작이 되는 하나가 중요하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은 비극과 절망과 저주의 시작이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라면 최초로 죽음의 제물이 된 사람이었고 첫 사람 아담의 죽음은 그 후 이 역사 속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저주의 병을 전염 시켰다. 그래서 오늘도 무엇(선한 것, 착한 것)을 시작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는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 하였다.

그럼에도 대표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죽음에 바쳐진 모든 사람을 생명으로 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혈통을 따른 후예로는 생명으로 이끌어 나올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하셨던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살게 되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 범죄한 조상으로 수천 대에 내려온 죽음이 역사의 줄기에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시작이 되었고 오늘 내(우리)가 그 은혜로 새로운 생명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할렐루야!



Ⅱ.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로 죽음은 정복되었다.(23~26)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인류의 가장 무섭고 몸서리 쳐지는 적은 과연 누구일까? 김정일? 알 카에다? 아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죽음의 저주로 끌고 들어가는 죄요, 그 결과인 사망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음의 원흉인 죄를 찾아 처결 하려는 것보다 [빈 라덴]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빈 라덴]도 죄의 하수인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죽음을 정복하셨지만 그 놀라운 역사가 안타깝게도 모든 인류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 바로 첫 부활의 열매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들을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14:1, 4) 라고 증거한다.

2. 모든 인류의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실 것이다.(25~26)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주님께서 사망을 정복시키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마지막 다시 이 역사에 오실 때까지 왕 노릇 하실 것이다.

시편110:1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신 것처럼 이것은 이미 창세전부터 계획된 것이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시다.

3. 최종적으로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릴 것이다.(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모든 이 역사 속의 인류구원이 마쳐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 드릴 것이다.

주님은 절대로 아버지의 뜻을 어기신 적이 없으셨고 언제나 자신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으시고[요5:30…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심으로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고 홀로 두지 않으신다고 사도 요한이 증거해 주고 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오늘 우리가 역시 주님만큼 순종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사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신 것은 이런 이유였고 우리도 기뻐하시는 바를 찾아 행하려 한다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사망을 향하여 주님처럼 호령할 수 있을 것이다.

무서운 적을 향하여 큰 소리치는 것은 그만큼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큰 소리 친 것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자신이 문제이다. 우리모두 온전한 순종과 섬김으로 사망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사시기를 …



Ⅲ. 절대적인 순종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27~28)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다시 이 오늘 말씀의 마지막 부분은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조화를 기록하므로 마무리 되고 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27)

이 내용은 시편8:4~6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라는 예언의 성취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내용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겸손과 순종의 모범이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8)

앞에 24절에서 이미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통치는 최종적으로 아버지께 바치게 되어 구속의 역사는 완성될 것이다.

이런 의미를 그리스도의 통치는 완전한 아버지께 바칠 것이기 때문에 과도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의 심오한 관계는 사람이 감히 완전히 이하거나 설명할 수도 없고 완전하게 표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때가 되어야 한 점의 혼란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주님께 붙은 모든 사람이 부활의 열매들이 되게 되었고,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이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은 자신의 권세를 잃게 되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향하여 큰소리 치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역사 속에서 주님의 사람들은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고 그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순종이 잠긴 죽음의 문을 열어 부활의 출구를 만든 것처럼 오늘 우리의 절대적인 순종도 자신을 죽음에서 끌어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을 죽음의 저주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