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고전 15:39~49 2010-12-26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지난 시간에는 부활이 믿음의 상급이라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부활할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과 우리의 부활할 모습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신앙의 논리들을 생각 했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부활할 형체가 다를 수 있으며 영광이 다르다는 가르침을 천체들의 영광에 비유하는가 하면 썩어 마땅한 우리의 육체가 장차 썩지 않을 영원의 영광을 입을 신비의 사실에 대해서 증거한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어 썩고 흙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살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신령한 영광을 입으리라는 신비의 소망에 대하여 증거해 주고 있다.



Ⅰ.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의 영광.(39~41)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사실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존재들의 차이는 千差萬別이다. 외모는 솔로몬의 영광에 버금가는 영광을 입었으면서도 삶은 사람이 아닌 짐승의 삶 그대로 원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짐승들이 얼마든지 있다.

일반적으로 말세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성경은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2)사람들은 ①자기를 사랑하며 ②돈을 사랑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③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2, 4)

이런 삶의 결과는 당연히 미래의 세계에서 그 삶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의 삶이 중요하고 조심스럽다.

1.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39) 우리가 입고 있는 모습을 주님께서 보실 때 어떤 모습일까를 주님의 입장에서 바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바리새인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 짐승과 다름이 없는 죄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혀 주셨다.[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럼에도 영적인 모습인 그리스도의 형상은 벗겨져가고 점점 과거 짐승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미래에 입을 영광은 생각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지 못하면서도 미래의 영광을 욕심 내는 二律背反的인 모습들을 더러 본다.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39) 했지만 물고기는 물 안에서만 움직임이 가능한 더욱 제약 받는 육체다. 이것도 물론 복음 안에서만 살아야 할 신앙의 비유이기도 하다

2.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들(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오늘 이 땅에서부터 하늘에 속한 거룩한 형체를 보였던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들과, 하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땅에 속한 냄새 나는 육체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다.

3.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영광의 차이(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우주의 천체들의 빛이 다른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미래에 주님께서 입혀주실 영광이 다 다를 것이라는 교훈이지만 그것은 육체를 입고 사는 이 땅에서의 삶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 자신들의 경건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2:6)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비록 세상의 발을 디디고 세상의 것을 먹고 살지만 미래의 영광의 광채를 여기서부터 나타내는 하늘에 속한 삶과, 이 땅에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믿음으로 산 거룩한 사람들과 우리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오늘보다도 미래를 영화롭게 입겠다는 신령한 욕심으로 날마다 나 자신을 살피는 …



Ⅱ. 육신의 몸이 있듯이 영의 몸도 반드시 있다.(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실 썩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주고 썩지 않을 것으로 받는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거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은 손해 보는 일을 잘도 하시는 분이시다.

1.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남(42) 이것을 더 가깝게 이해한다면 순간의 것으로 영원한 것과 바꾼다는 말이다. 이런 원리가 세속적인 사람들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라고 의심하게 된다. 어떤 바보가 귀한 것을 쓸데 없는 것과 바꾸겠는가 그것은 어린 아이라도 하지 않을 일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하셨다.

죽어 저주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흠 없고 점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 주신이가 바로 그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한술 더 떠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2. 욕되고 약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럽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삶(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사실 우리 사람들은 사는 것 자체가 욕이 되기도 해서 삶에 대해서 한탄하고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에덴동산을 나온 후의 아담의 후예들은 여기 우리를 포함해서 결국 썩은 무덤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냄새 나고 욕심 부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과 안타까움을 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만 하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게 하시고,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나 미생물에게 조차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함 대신에 어떤 위험 세력으로부터도 상하지 않을 강한 것으로 되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우리의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할렐루야!

3.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살아남(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신령한 몸, 육의 몸-영의 몸] 그러나 여기 [육의 몸]은 고기덩어리의 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져 없어질 몸]일 뿐임을 의미한다.

길어야 120년 살 수 있는 몸을 믿음의 씨앗으로 심기만 하면 시간과 공간에 제한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됨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는가.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영원한 몸이 있음에 대한 분명한 비교가 육의 몸이라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이 말은 또 이 세상에 육으로만 사는 몸이 있다면 영원을 위해 사는 신령한 몸이 있음도 말씀하고 있다, 오늘 나는 과연 어떤 몸으로 있는가!



Ⅲ. 흙에 속한 자들과 하늘에 속한 자들.(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사람의 출처를 비교하면서 그 두 조상격인 사람을 통해서 그에게 붙은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됨을 설명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45) 여기에 대한 대조는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 5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7~19)

1. 땅에서 난 육에 속한 사람이지만 하늘로부터 신령한 사람으로 다시 남(46~47)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요3:31)

2.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의 차이(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세상과 영적인 차이는 그 사람의 움직임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흙에 속한 자는 신령한 것 보다는 세상 것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쓰고, 하늘에 속한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나 신령한 것을 구하게 되어 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6)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란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사람들이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10)

3.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신령한 형상을 입게 됨(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흙에 속한 자의 형상 즉, 아담의 죽을 형상을 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순종하고 진정으로 주님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에게서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이 풍겨 나오게 되어 있다.

[452:1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예수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쟎네,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우리가 꼭 같은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짐승의 삶을 살 수도 있고 하늘의 영광을 현실에 당겨서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이 세상의 삶의 모습으로 인하여 미래에 입을 영광이 다를 것이다.

비록 썩어질 육체 연약한 육체로 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비록 육의 몸이지만 믿음으로 온전히 주님께 드린 삶을 산다면 장차는 영광스럽고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위해를 당하지 않는 강하고 신령한 영광을 입혀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 아담의 후예로 땅에서 죽고 썩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이 역사 속에 유일하게 하늘에서 내려오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와 죽고 다시 살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