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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21:20~23 2011-09-25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 있게 될 불운이나 어려움을 알게 될 때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 결정된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보다는, 형편이 나아 보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래를 자신과 견주어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

베드로는 왜 주님께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가? 앞의 18~19절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신 주님의 예언 때문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완벽한 예언을 듣고 만다. 그러면서도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시는 자”의 미래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주님의 답변 또한 단호하심을 본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사실 신앙의 사람들에게 이 대화는 천로역정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나누며 우리의 삶을 점검해 봤으면 한다.



Ⅰ.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따르는 자는 누구인가?(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요13:23~25)

①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20f) 베드로에게는 사랑을 확인하신바 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x2” 그런데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여전히 가까이 있을 것을 보고 조금은 시샘을 가졌던 것 같다. 누구든 예수께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을 옆에서 보는 우리는 사실 그 자체로 감사할 필요가 있다.

②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20m) 적어도 그 사람은 주님을 잘 따르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모범일 것이다.

③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묻는 자,(20b) 우리가 주님의 심장가까이 다가가서 주님께 물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Ⅱ. 자신보다 남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은 사람.(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①우리는 누구나 늘 다른 사람을 보면서 주님께 묻는다.

[공평의 주님] –최용덕-

주님 왜 저를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주님 저를 버리신겁니까? 주님 왜 저 사람을 더 사랑하십니까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까? 그날 밤 주님께 나는 울며 따졌었네 그러나 주님 내게 고요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셨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공평하단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다 사랑한다 공평하게 사랑한단다. 내겐 누구나 소중한 보석 나의 피로 값 주고 구원했으니 어느 누구라도 내가 버릴 수 있으며 외면할 수가 있으랴 영원히…

②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자신의 고난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의 앞길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이것은 사실 인간의 근본적인 궁금증이긴 해도 신앙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Ⅲ.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22~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①그를 ~게 하고자 할지라도… 주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든지 그것은 주님과 그 사람과의 문제지 나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줍잖은 우리의 믿음은 ‘왜 저 사람에게는 건강을(직장을, 재산을, 지위를) 주시면서 나는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따져 물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에게든 그렇게 하시는 것은 주님의 뜻이며 권한인데 ‘왜 그렇게 하십니까?’ ‘왜 나는 이렇게 대우 하십니까?’ 라는 월권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이시며, 나는 사랑을 입었을 뿐이고 구원을 입었을 뿐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②네게 무슨 상관이냐? 그 사람에게 그렇게 대우하는 것은 너에게 상관이 없다. 그것을 그럴 수 있는 권한은 나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듯 하다. 하나님은 사람간의 차이를 비교하며 저울질 하는 나에게 오늘도 “그것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반문하실 것이다.

때로는 나의 고난의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한다.(…잘 못되면 조상 탓) 어느 교우, 친구도 끌고 넘어질 이유는 없다.

③너는 나를 따르라! 나는 주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을 올곧게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투정하고 비교하는 나에게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들의 은혜 받는 것과 복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경건이 중요하고 나의 천국이 중요하다.

신앙에 있어 비교의식은 나 자신의 편견이다. 주변에 누구든지 나보다 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도 나에게는 다만 감사해야 할 이유 밖에는 없다.

다른 사람이 힘겹고 연약할 때 함께 붙들고 잡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될 때, 나 혼자 불행하고 시험 당한다고 생각되어도, 내가 주님을 바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교우 간이건 가족간이건 심지어는 부부 간일지라도 그렇다.

행복하게 복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그럴만한 사람이다.’ 라고 인정하고 비교보다는 다를 바로 추스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