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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창 13:3~13 2011-11-06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 갔던 아브라함 일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덕택에 손해 본 것 없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오히려 거부가 되어 돌아오면서 아브라함은 더욱 주님 앞에 신실해야 할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 본문 시작부분은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3~4)고 기록하고 있다.

벧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참으로 떠날 수 없는 하나님의 집이었다. 아브라함은 무엇보다도 제사의 사람이었으므로 애굽에 내려가기 전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본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 고백이요 기도이며 찬양이며 제사이기 때문이다.



Ⅰ. 나눠짐도 필요할 때는 있다.(5~7)

사람의 건강도 몸을 너무 불리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이 따르게 된다. 주님의 몸인 교회도 다르지 않다. 서로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른다면 나눠져야 모든 면에서 좋을 것이다.

①롯을 일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②필요이상으로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6~7f)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③일행에는 이방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덕스러워야 한다.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7b)



Ⅱ. 자신의 기득권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믿음.(8~9)

사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려움 없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는 주님의 말씀에 확신을 가진 자들이라야 가능하다.

주님의 사랑의 권면에 순종한다면 그보다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라는 말인데 바로 아브라함은 그런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선택의 기회였다.

①가족은 다투는 관계이어서는 안 된다.(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②누구에게나 가야 할 길은 열려있다.(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③양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다.(9b)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우선권을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가능하지 않다.



Ⅲ. 선택의 기준이 중요하다.(10~13)

요즘 상당히 인기가 있는 커피회사 조차 ‘맛의 선택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사람들의 입을 유혹하고 있다. 선택은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차이가 있고 이런 입장에서 신앙의 사람의 선택의 두 모습을 오늘 이 마지막 부분의 말씀에서 배우게 된다.

①육신에 눈에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10~11) 예수 그리스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병폐와 비극은 이것이었다. 스스로 높이고 자랑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②믿음의 사람은 약속에 머무른다.(12f)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③멸망의 사람은 점점 죄악을 향해 다가간다.(12b~13) 처음부터 죄에 풍덩 자신을 던지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시우 비에 옷 젖는다.’라는 표현은 진리이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 이 말씀이 롯의 선택의 비극을 증거해 주고 있다. 지금도 선택은 계속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최고의 선택이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체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선택해야 할 것이다. 처신, 직업, 말에나 일에나 십자가를 중심 하는 선택이 될 때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처럼 늘 임마누엘이 되셔서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