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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3:1~8 2011-11-20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3:1~8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올해의 신앙적 과제가 가정에서, 교회 속에서, 세상 속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f)이다. 오늘의 주제도 여기에 관계된다.

영적인 거듭남은 연륜이나 지식이나 지위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이 주님의 메시지는 아직 주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귀한 도전인 동시에 일반 사람이 아닌 유대인 종교 지도자와 나눔 속에서 주신 교훈이라는 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도전이다.

평생의 신앙은 자신 속에 주님과 자신의 비율의 싸움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얼마나 자신의 육신을 죽이느냐의 과제이다. 이 20세기의 경건주의 자라고 하는 A. W. 토저는 “우리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거듭남이 필요하다.” 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두 번씩이나 “사람이 거듭[헬, 아노덴(anothen)은 ①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 ②다시, 두 번째; ③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나지 아니하면…(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5)”이란 전제를 하시면서 앞에는 역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헬, 아멘 아멘 레고 소이-Amen amen lego soi)”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Ⅰ. 변화를 의미한다.(6)

이것은 이론적인 것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실제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거듭남의 귀중성은 수없이 강조해오고 권면해 오고 있지만 사실이 되지 못하면 역시 가치 없는 논쟁에 불과하다. “우리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거듭남이 필요하다.”(토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①관계의 변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②삶의 방법의 변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f)   ③가치관의 변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f)   ④목적의 변화. 세상의 출세보다 영원에서의 면류관을 목표로 하는 삶이 되었다.



Ⅱ. 육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땅의 기준으로 하늘을 이해할 수 없고 육신으로 신령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니고데모뿐 아니라 오늘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적인 방법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b)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신앙은 언제나 아는 것 보다는 순종이 먼저이다.

첫 번째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한다고 하면 중심의 변화이다. 예전에 한창 대학가에서 전도지로 사용했던 [四靈理]라는 전도용 소책자가 있었다. 여기에 의자가 놓여있고 처음에는 그 의자에 내가 앉아 있고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주님께서 그 의자에 앉아계시고 나는 의자 밑에 엎드려 있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①자기중심(도구)⇔그리스도중심(영광).   ②자기중심(섬기는 자)⇔타인중심(섬김을 받을 자).   ③자기중심(게으름)⇔관계중심(화합을 위함). 자신은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예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말한다고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땅에 속한 자들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Ⅲ. 바람과 같다.(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①자연발생적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라는데 의미가 있다.   ②시작과 끝이 분명치 않다.(v8)   ③영향력은 분명히 남는다. 바람은 볼 수 없지만 바람이 불고 지나간 곳에 흔적은 분명하고 이 흔적이 없다는 것은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바람이 새면 샐수록 그 영향력은 크다. 이것을 자연 속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속에 성령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사울(큰 자)이라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작은 자)이 되어 버렸다.

육신의 삶 속에서 선택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만약에 나를 어떤 항목으로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 선택해 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미약하고 부족한 나(우리)를 선택해 주셨다.

우리는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육신이 주인이라면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주님의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쓰이는 도구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