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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창 16:7~8 2012-09-16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이 있게 된 배경은 어쩌면 오늘 우리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애굽에서 바로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몸종으로 주어진 종의 운명으로 가나안에 따라왔고 그 안주인의 부탁으로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자식을 잉태하게 되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안주인을 무시하다가 사막으로 쫓겨난 운명에 있는 하갈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묻는 질문은 오늘 비슷한 입장의 인생들에게 한번쯤은 있을 수 있는 같은 질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사자를 보낸 시기도 의미가 있다. 광야 길을 헤매다가 겨우 물을 마실만한 샘 곁에서 영락없이 그녀를 부르는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의 어려움의 한 고비를 넘기려 할 때 우리의 인생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물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때로는 “그래 견딜만하냐, 너의 사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 봤느냐?” 라고 물으시는 듯 하다. 힘겨운 인생의 고비, 그것은 우리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시는 계시로 이해될 수도 있다.

겨우 죽음을 넘길만한 고비이든 사막과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막 넘기고 숨을 고를 때도 주님은 영락없이 우리의 존재이유를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것이다. 각 사람에게 종류는 다르지만 이런 시기는 인생의 구비 구비마다 있고 그 때가 바로 주님께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게 하는 시기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앞에 하갈과 같은 음성을 듣고 다시 삶을 본 자리로 회복하는…



Ⅰ. 인생의 출처가 어디냐?

사람의 출처는 각 사람의 현재의 그 사람을 결정하는 데서 중요하기 때문에 출처를 묻는 것이고 세상 표현으로도 “근본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지금 이 모습인가는 출처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남도 우리의 또 다른 출처임이 분명하다.

하갈의 출처는 애굽이었고 거기서도 종이었다. 아담 이후에 세상에 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의 종이었고 절망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런 우리의 출발점은 오늘에 서서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사래의 여종 하갈아!” 라고 부른다. 지긋지긋한 안주인 밑에서 도망 나왔는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그냥 ‘하갈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래의 여종 하갈아!” 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하갈이 자신의 고향 애굽으로 도망치는 원인이 비록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할지라도 여전히 그녀는 ‘사래의 여종’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주인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이지 도망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래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종에서 자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는 사실은 엄청난 복음이요 감사의 이유가 된다.

또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십자가 이전의 상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지금의 사랑에 더욱 감사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과 함께 일하며 고난을 받고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그런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과거의 다메섹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본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2~16)

이 말은 “그래, 나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 내가 과거에 한 짓을 생각하면 [14절] 넘치고도 넘치니 할 말이 없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주님의 백성이라면 늘 이런 신앙적 자세를 회복해야 겸손하고 은혜 넘치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초라한 과거나 부끄러운 과거는 우리 각자를 겸손으로 주님께 복종케 하는 이유에서 주님은 과거 우리의 출처를 묻고 계신다. 때문에 이 질문에 겸손히 오늘을 드릴 수 있는 …



Ⅱ. 우리 각자의 현 주소를 묻고 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점검하시는 주님의 질문이시다.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과거의 자리에 연연하는 “내가 이래봬도 …” 로 큰소리치며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물론 이런 류의 사람들은 과거가 현재보다 낳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애굽)의 영화 속에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는 영화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영광은 절대로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물으시는 천사의 질문은 지금 본연의 자리를 떠나와 있는 상태에서 묻고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9)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자리를 묻고 있다. 시편 1편의 내용처럼 내가 함께 있는 자리가 복된 자리인가 망할 악의 자리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과거의 섬김이 아니라 오늘 지금의 섬김을 묻고 계시는 것이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하셨고 다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히4: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 ‘같은 은혜를 받은 9은 지금 왜 은혜에 응답하지 못하느냐!’는 의미이다.

간음 중에 바리새인들에게 죽기로 끌려왔던 여인에게도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과거의 죄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면 그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빚을 갚았는데 채주(債主)에게 시달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고 상태를 확인하시는 것처럼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우리 각자에게 지금의 상태를 묻고 계시는 것이다. 신앙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태에 있다면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이를 위하여 하갈에게처럼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시는 주님의 은성을 들을 수 있는 …



Ⅲ. 우리의 가고 있는 방향을 묻는 것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의 세 번째 의미의 마지막은 “…어디로 가느냐?”는 인생의 목표를 묻고 계시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고향인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하갈을 불러 세워 “…어디로 가느냐?” 묻고 계시는 것으로, 출처와 현재가 다 중요하지만 현재까지의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느냐?’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다른 말로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느냐?”는 말과 다르지 않다.

①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하갈은 주인인 사래의 핍박을 피해서 나오긴 하였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답변은 다만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사래의 밑에 있을 때보다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치 못한 사람들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부르짖지만 무엇을 위한 자유를 바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하갈과 같은 막연한 자유를 시도해보지만 오히려 더 혼란할 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표 없는 인생, 목표 없는 자유는 사실 있으나 마나이다. [불평불만과 환멸 가득한 이 세상에 너는 무엇 위해 사는가. 참된 자유와 평화 너는 맛 보았는가. 너는 무엇 위해 사는가?]

②흑암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이 있다. 만인의 저주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지만 그 은혜를 거절하고 자기 지혜로 살아보겠다고 독립선언 한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세상에서 아무리 그럴싸한 삶을 살아도 영원 속에 버려질 가련한 인생들이다.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1:13) “…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계17:8m)이 여기에 속한다.

③영생으로 돌라갈 인생들이 있다. 과거의 수치를 주님의 피로 씻음 받고 오늘의 삶을 구속 받아 괴로우니 즐거우나 미래의 영원의 약속을 가장 귀한 것으로 믿고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오로지 순종하는 자들로 미래가 분명한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2~16)

요한 사도는 “이 사람들은 …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14:4)

과거가 부끄러울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지금을 은혜에 살면서 돌아갈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여 이 땅에서의 불편과 어려움을 영원을 위하여 기쁘게 감당하는 그야말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영생에 속한 사람들이다.(히11:38)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들을 위해 피를 흘려 주셨고 부활하셨으면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고 마지막 날에 이들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오늘 말씀 듣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