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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3:4~10 2012-10-14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는 주님은 십자가에 점점 다가가시면서 자신의 십자가의 사죄를 통해 이루게 될 공동체에 있게 될 희생의 모습을 말뿐만 아니라 몸소 보여 주시면서 이 세상과는 다른 하늘의 공동체의 힘이 성령이심을 연이어 일깨워 주시는 이 최후의 다락방 강화라고 하는 가르침은 17장에서 제사장의 기도로 마무리되어 진다.

여기서부터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내용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규범이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뿐으로 오늘 이 내용도 세상의 일반적인 규범을 위반하시는 모습이다. 주님의 공동체는 그러하다.

섬김이나 겸손만큼이나 사실 말에 그치기 쉬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친히 섬김과 겸손을 몸소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유대인의 일반적인 관습은 종들이 주인집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관례이고 유대 사회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하는 베드로의 거부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먼저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리지 못한 데 대한 죄스러움도 베드로에게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세족식]이라는 이벤트를 위해서 주님은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서로를 겸손으로 섬기고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정해진 이벤트에서는 이런 행동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세상과 다른 주님의 몸 된 공동체인 교회의 바탕이 되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을 본보이신 것으로 주님께서 마태복음20:27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모든 사람의-막10:44)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교훈 하신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가르침이다.

이 사건에서 제자들 각자의 상태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베드로처럼 표현 잘하는 입장에서야 이렇게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라고 말씀 드리지만 그냥 발을 씻도록 맡겨두고 앉아 있는 제자들 각자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도 짐작해 보기가 쉽지 않다.

오늘 우리는 이 주님의 겸손과 헌신의 섬김을 뵈면서 서로를 대하는 우리 각자의 태도를 다시 바로잡고 점검하여 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섬김과 사랑의 교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Ⅰ. 섬김의 본을 친히 보이셨다.(4~6)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 식탁에 앉으면서 누구도 주님의 발을 씻어드릴 생각은 못했던 것 같고 더구나 자신들을 떠나야 된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만 찹찹한 상황에 있었던 것 같다. 빵과 포도주는 이미 나눠졌고 그것을 먹는 상황에서 주님께서 홀연히 일어나셔서 종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시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①식탁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다. 식탁에서의 섬김은 특히 쉽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에서 섬김은 쉽지 않고 주인과 종의 신분이 보다 분명히 구분 되어지는 장소가 식탁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눅17:7~8)

②닦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닦으셨다. 남의 허물과 수치를 닦아 주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주님의 백성들이다. 진리의 허리띠를 띤 사람들은 동시에 남의 허물과 수치를 닦아줄 수 있는 수건을 허리에 두를 필요가 있다.

③차별이 없으셨다. 제자들을 돌아가면서 씻으셨다. 섬김에 차별을 두는 것 자체가 이미 섬김에서 벗어난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중에는 물론 자신을 은 30에 파는 가룟 유다도 함께 했음을 연결되어지는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21b…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주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 우리는 다만 나타나는 행동만을 볼 뿐이고 들리는 소리를 들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이 의미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5)

여기 지나쳐서는 안 되는 말씀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받드는 것은 사회에서도 일반적인 윤리이지만 스승이 제자를 섬기는 것은 세상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수치를 가려주고 씻어 주도록 주님은 이 실제 교육을 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연결되어지는 것은 야고보서5:16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는 우리의 믿음의 기도의 나눔이 어디에 까지 가야 하는 가를 일깨우면서 서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함께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제자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시러 올라가는 길에서조차 ‘누가 크냐, 높으냐?’(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22:24)는 경쟁을 하기 쉬운데 서로를 씻어 주고, 허물을 씻어 주려는 주님의 자세를 실천하여 천국의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Ⅱ. 주님과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7~9)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발은 절대로 씻길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주님은 주님께서 베드로를 씻기지 않는 이상 절대로 관계가 없다고 하시자 베드로 역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것은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주님과 우리 모두의 사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백성은 반드시 주님의 피로 씻음 받은 자들만이 가능하고 이것은 세상표현으로 그 가문에 태어나지 않으면 그 가정과 관련이 없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①나중에야 깨닫는 것들이 더러 있다.(7)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은 순종이다. 깨닫고 순종하겠다는 자세는 믿음의 사람에게 합당하지 못하다. 무딘 우리사람들은 한참을 지난 후에야 늘 머리를 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②주님의 피로 씻음을 받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상관이 없다.(8)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6:11)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③깨달은 자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9)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이제 “모든 것을 맡기니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 라는 투의 말씀이다. 깨달았을 때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 “나를 드리니, 삶아먹던지 구워먹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라는 정도의 순종이 적어도 베드로처럼 있어야 한다. 깨달음은 절대 거절에서 절대 순종으로 바뀌었다.

깨달았는데도 맡기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더 큰 후회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은혜에 대한 응답은 온전히 맡겨 드리는 것이다.



Ⅲ. 성결의 보존을 가르치셨다.(10)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께서 깨끗게 하셔서 생명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삶에 육신의 청결이 수시로 필요한 것처럼 영혼의 성결도 지속적으로 보존되어야만 한다.

①우리는 주님의 피로 우리 일평생에 깨끗할 수 있는 씻음을 받았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②세상의 죄의 먼지를 늘 밟고 다니는 발은 항상 씻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③모두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두려움을 듣는다. 이것이 당시에는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안타깝게도 “다는 아니니라!”시는 선언은 항상 하나님의 공동체 속에 있어 왔고 사실 주님께서 직접 택하신 사도들 속에(물론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위한 것이지만) 깨끗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과거의 출애굽 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도 그랬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4~6)

이 역사 속의 불안전한 공동체 속에는 주님 오실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고 히브리서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12:15~16)고 경계를 주고 있다.

우리의 성결은 한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가야만 할 과제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불가능할 정도로 낮아지셨고 그것은 바로 오늘 나(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삶 자체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교과서가 되시고 모범이 되신다.

주님으로부터 씻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엄밀하게 주님과 관계가 없다. 주님의 값없이 흘려주신 그 피에 우리 몸과 인생을 담글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주님과 하나님과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그의 피로 씻음을 받는 것이 인생 최고의 과제이다.

그러나 영혼의 목욕을 한 이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다시 더러워지는 발처럼 우리 모두는 살면서 죄를 범하게 되고 이 더러워진 발과 같은 죄도 매일매일 주님께서 주신 방법과 약속대로 씻음을 받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결을 유지해야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