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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창 37:5~11 2012-10-28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꿈은 곧 이상이라고 하며 비젼이라고 한다. 성경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꿈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현대어)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고 하여 꿈의 소중함을 가르친다. 그만큼 꿈을 꾸며 사는 삶, 이상을 품고 사는 삶은 삶에 소망과 활력을 주기 때문에 신앙의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험을 잘 쳐서 명문대학에 들어가리라는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을 것이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꾸미고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행복을 바라며 공부를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로 나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를 바라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손이 닳도록 악수를 하고 자신을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피곤함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요셉이나 신앙의 사람들은 적어도 이렇게 자신의 안위나 부귀와 영광을 바라는 것 보다는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하면서 현실의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그것을 위해서 참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그런 영원의 사람들이라는 데서 현실에 이상을 실현하려는 이 땅의 사람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하였고 베드로 사도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3~4)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가정의 행복을 꿈꾸고 교회의 영적 부흥을 꿈꾸는 것도 사실이자만 그것보다는 주님의 뜻이 우리 각자의 삶에 가정과 교회에 이 인류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셉처럼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영광과 이상을 말하고 소원한다고 하면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이나 요셉의 형제간에서도 이해가 어려웠던 것처럼 주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꿈은 꾸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가진 꿈이나 이상은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수준의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상을 보여 주시는 그것을 요셉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속의 꿈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시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고 그것을 말할 때마다 현실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고 오늘도 땅에서의 어떤 복이나 발전보다 영생에 속한 것을 말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처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하늘의 영광의 꿈을 가지고 또 그 꿈을 잃지 않고 주님 다시 오셔서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라질 이 세상의 것들보다 하늘의 소망을 귀중하게 지켜가는 …



Ⅰ. 세상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5~7)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요셉의 꿈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세상의 가치에 속한 그의 형들이 듣기에는 못마땅할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꿈은 하나님의 뜻을 좋아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이 때 요셉의 나이가 17세였던 것으로 봐서 아주 철없는 아이는 아닐 것 같은데, 그럼에도 하늘의 사람다움의 두 가지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①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이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자신이 이런 꿈을 이야기 하면 형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나이임에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꿈을 생각이나 계산 없이 형들에게 이야기 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요셉은 나중에 애굽에서 형들을 대하는 모습이나 야곱이 죽은 후 형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도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으로 해설하는 모습들을 보면 대단히 생각이 깊고 침착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앞뒤를 제보지 않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이상을 증거하고 있다는 데서 어린아이 같은 천국의 사람임을 읽게 된다.

②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장래의 이상을 가까운 가족들에게 숨기지 않고 알렸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포로 되어 사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3:11) 하셨고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희생과 장래에 이루어질 주님의 역사를 전하라고 당부 하셨다.(막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데서 이런 입장에서 요셉의 사명감을 배우게 된다.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7) 이러한 곡식 단의 꿈은 곡식을 사러 와서 자신의 앞에 엎드리는 형들을 보면서 확실한 꿈의 성취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때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꿈의 이루어짐을 기다렸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과 이 세상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증거를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랑하고 전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 받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며 다시 오실 주님의 당부이기 때문이다.



Ⅱ. 비전의 사람은 계속 자신의 꿈을 반복한다.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지금 제가 나름대로 나눠서 증거하는 3단락의 말씀들은 시작이 모두 미움으로 나눴다. V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8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10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이 모두 그렇다.

인간적으로 계산하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 말을 해서 더 미움을 받았지…!”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다음에 주시는 꿈도 증거하기를 게으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에 대해 대비하려고 하지 않는 가족의 안타까움을 요셉처럼 의식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자세여야만 한다.

형들이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요셉을 통한 꿈의 이야기를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요셉의 형들은 영적이지 못했고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는 사실이나 그를 애굽에 판 사실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꿈은 이루어지고야 만다.

다시 꿈을 꾼 요셉은 이러한 형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보여준 이상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의 형들이 육신의 상황에서는 볼 때는 요셉의 꿈은 그야말로 뜬 구름 잡는 이야기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거쳐서 이 꿈을 이루고야 만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을 모범이었다.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빈정대는 사람들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3:4)고 비아냥거린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다가 오시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에만 빠져있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증거해야 함을 역시 요셉으로부터 배운다.



Ⅲ. 비전을 나눌 소수의 사람들은 있다.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야곱은 비록 심기가 불편한 자신의 다른 자식들의 분감을 삭혀주기 위해서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10)고 꾸짖는 듯 말했지만, 늘 주님의 언약을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11) 모습을 보인다.

당시의 요셉은 자신의 꿈을 나눌만한 대상이 없었지만 오늘 우리 모두는 같은 이상과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를 확인하며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시의 요셉은 모든 가족 중에서 자신의 꿈을 나눌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그의 꿈을 마음에 두고 함께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고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꿈을 나눌 많은 사람들을 허락하신 것을 요셉보다 더욱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주님께서 이 역사를 마무리 짓고 다시 오실 약속도 사실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늘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확신하며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셉보다 감사드릴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늘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내가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꿈을 확신하고 ‘주님의 언약에 대한 확신을 지속적으로 증거하고 기뻐하는가!’를 확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꿈의 사람 요셉이 형들의 시기나 분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증거했던 신앙적 자세이다.

죄악의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꿈을 좋아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비젼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모두에게 자랑하고 전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우리의 주변에 많지는 않을지라도 꿈을 나누고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