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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벧후 3:8~13 2012-11-04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1세기에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을 했고 이것은 어쩌면 2천여 년이 지나면서 더욱 사실적으로 실감하는 부분이 되었다. 바울 사도나 사도들의 시대에도 주님의 재림이 속히 임할 것으로 증거했고 수천 년이 지난다고 해도 이것은 사람의 기준일 뿐이기 때문에 결코 늦은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주님께서도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고 증거 하심으로써 서로 가진 믿음을 굳게 잡어서 상을 잃지 않게 하라시는 당부를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자들에게 주고 계시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면 신앙에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재림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믿음의 자세를 갖게 하는 이유가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도 주께서 다시 오심의 날을 알게 하지 않으신 것도 분명한 은혜가 된다.

1세기에 신앙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의 때에도 그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며 기대하였던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의 당한 고통과 환란과 비교될 수 없는 위로와 상급을 주시리라는 것이었고 오늘 이 베드로의 메시지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을 믿는데 대한 핍박이나 어려움이 없고 세상은 문화의 발달과 생활의 편리로 인해서 하늘의 소망에 대해 너무나 안일해지고 무디어져서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면 영광의 약속에 들어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약속은 주님 오실 때까지는 분명히 유효한 약속이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씻김을 받은 자들에게는 늘 의식하고 기대해야 할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막연한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우리 자신들의 삶의 과제라는 인식을 지켜갈 필요가 있다.



Ⅰ. 주님의 약속은 분명하다.(8~9)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는 “태초에, 창세전에” 같은 주님의 시간에 관한 말씀을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20:37~38) 말씀하신 것도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잡혀 사는 얽매인 사람들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영원과 영생에 관한 사실들을 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①주님의 시간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급하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가져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다. 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8)는 말씀은 주님께서도 이 약속을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런 교훈이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②속히 오신다고 하셨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9f) 초를 다투는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늦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역사의 마지막이 올수록 사람들은 더욱 속도에 민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③기다림의 이유는 죄인들을 위해서다.(9b)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럼 그렇지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늦추시는 이유는 주님 자신 때문이 아니다. 전혀 우리를 위해서다. 감사하지 않은가!



Ⅱ. 보이는 이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10~11f, 12b)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f)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12b)~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과학적 연구와 함께 자연의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편리함에 맞추어 점점 발전해 나가고 이러한 진보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같은 원리는 사람을 해치는 데도 마찬가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다 발전된 문화 속의 사람들은 더 만족하고 행복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로 들어나고 있다.

이러한 창조주를 부정하면서 사람들이 발전시켜가는 과학과 문화는 마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과 같이 사람의 이름을 내고 주님의 피의 속죄를 부정하게 만드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 자주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말을 혼잡케 하셔서 더 이상 쌓지 못하게 만드셨던 것처럼 이 최고로 발달한 모든 것들이 불태워 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①최고의 과학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의 날은 절대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10f)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부터 이 사실을 이미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2~44; 눅12:39~40)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1~3)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②인간이 바라고 기대한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10)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12b) 모든 것을 소멸하는 것은 불이고 마침내 모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히려 오만과 수치만이 주님 앞에 수치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시는 경고가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6~7)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은 더 이상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오로지 죄인들의 오만과 수치만이 분명하게 들어나게 될 것이다. 언제? 주님께서 오실 때에…



Ⅲ.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11b~12f, 13)

(11b)~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f)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인대접을 받지 못하고 범죄한 사람이 주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들을 자신들의 욕망과 영광과 편리를 위해서만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 때문에 이 세상은 형벌 받을 수 밖에 없다.

같은 하늘밑에 땅에 사는 주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이런 사실들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과 함께 망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희생의 피로 저주에서 우리를 사 주신 것이다.

그렇기 대문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물으시면서 우리의 삶을 점검하기를 바라신다.

그럼에도 세상과 더불어 살다가 같이 망한다면 그것은 알지 못한 불신자들보다 더 가련하고 불쌍한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수시로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시는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세상에는 재앙의 날이지만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기대하는 최고의 날이다. 우리 각자가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가 있다.

①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11b) ⓐ거룩한 행실[, 바쳐진, 거룩한, 정결한, 구별된], ⓑ경건한 삶[헬, eusebeia = eu+sebomai, 거룩한, 하나님을 닮은] 신앙의 바탕과 목표이다.

②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12f)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헬, prosdokao, 기다리다, 기대하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헬, speudo, 재촉하다, 간절히 기다리다, 서두르다].

③그래야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할 수 있다.(13)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약속은 서로 간에 하는 것이고 어느 한편이 지키지 못하면 깨지고 마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증거를 삼아 구원을 약속하시고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시고 가셨다. 이 피의 약속을 지키며 그들을 기다린 자들만이 영생의 약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약속과 응답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자. 요한계시록22:7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하셨고 다시 v12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약속하셨고 거기에 대한 합당한 응답은 v20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응답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응답하는 무리에 속한 모두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