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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1:4~8 2012-11-11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누가를 통해서 주님의 육신으로 나셔서 사도들을 택하시고 3년을 그들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훈련을 시키시고 마침내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속죄를 이루실 뿐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인류 구속의 역사를 약속하신 주님의 삶을 기록한 내용이 누가복음이라고 이 사도행전 시작에서 기록을 하고 있다.

누가복음 속에서의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고 나타나는 제한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주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여전히 연약한 육신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연약함을 적어도 오늘 본문의 약속을 받는데 까지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의 가치나 생각은 여전히 땅에 머물고 하늘의 능력과 권능을 의식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엄청난 변화는 오늘 이 시대에도 가능할 것임에 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는 누구며 또 바울은 누구인가 어떤 면에서는 성미 급하고 약삭빠르며 앞서기 좋아하고 세상에서 높임을 좋아하고 정의감을 가졌다고 해도 보복하기에 바쁜 모든 일반적인 죄의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사람의 의도와 방법과 목표로 주도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무너뜨리게 하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 없이 시도되는 인간의 계획과 목표임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연약하였지만 이 약속을 순종하고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지고 나타나는 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변화와 능력과 생명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유대인들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던 제자들이 다만 주님의 약속에 순종하고 기다리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 하늘의 권능을 힘입고 용기 있게 권세와 대적 자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베드로는 누구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은 이 본문의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은 완료된 약속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세부적인 어떤 부분에서는 다를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권능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확신과 감사가 되는지 모르겠다.



Ⅰ.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4~5)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시간과 장소에 어김이 없으시다. 때로는 환경이나 상황이 약속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형편이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의 약속은 언제나 사람의 시간에 기준을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때가 차매” 이루어짐을 확신할 수 있다.

1.주님께서 친히 이루실 성령의 오심과 이 약속의 대상과 장소를 분명히 확인하시는 내용을 본다.(4) ①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②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③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2.시기와 약속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5) ①이루어진 약속의 확인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나중 베드로는 고넬료의 구원 이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11:16)

②시기에 대한 확인,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③무엇을 주시겠다는 것인가를 말씀하신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Ⅱ. 너무나 인간적인 면이 사도들에게도 있었다.(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러한 주님의 약속에도 사도들은 여전히 예전부터 확인하던 것을 묻고 있을 뿐이다. 인류를 위한 구속의 약속을 이루시고 부활로 확증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판단이나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세계 민족과 언어를 머리에 두고 말씀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민족주의에 가두고 자신들의 영광에 기준해서 묻고 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는 적어도 이제 세계 모든 민족과 족속을 위한 주님의 당부를 듣고 있음에도 여전히 육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성령의 권능을 힘입지 못하는 오늘 우리의 어리석음과 독선일 수 있다.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님께 아뢰고 묻고 기도하는 것의 대표적인 모습이면서 신령한 영생에 대한 간구와 기도보다는 세상에 사라질 것을 묻고 구하는 어줍잖은 모습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아직도 여전히 로마의 압제에 있는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후예들의 해방을 묻고 있고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핍박에서 자유 할 수 있는가를 주님께 묻고 있는 모습니다.

“이 때니이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약속을 이스라엘의 독립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의 회복을 꿈꾸며 그 회복의 때가 바로 “지금”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뒤에 주어지는 답변으로 봐서도 사도들의 주님께 드린 질문이 그런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사실 얼마나 여러 번 때와 시기를 나름대로 계산했다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 많았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바둥거리고 계산하며 안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Ⅲ.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만 있다.(7~8)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위대한 신앙의 사람인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라고 찬양하고 있다.

모든 것의 때와 시기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지런하고 준비된 자는 하나님의 때를 잘 만나 은혜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 스스로 때를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때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 때를 알려고 하는 것 역시 사람의 권한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사람들이 때를 만나려 발버둥치고 애쓰지만 때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고유의 권한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3:1~4)

[→v8 돌을 던져 버릴 때-거둘 때, 안을 때-멀리 할 때, 찾을 때-잃을 때, 지킬 때-버릴 때, 찢을 때-꿰맬 때, 잠잠할 때-말할 때, 사랑할 때-미워할 때, 전쟁할 때-평화 할 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것은 인류구원에 주님 구속의 십자가의 희생과 더불어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다.[요14~16장 : 이를 말씀하셨다.] 준비하신 때와 상황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는 말씀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금까지 반복해 왔던 것처럼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람의 수완과 방법과 기술로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이다. 이는 이미 OT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b)

하나님의 주시는 권능으로만 세계 각국을 향해 복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가능하고 유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은 사람의 고안과 기술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으로 권능을 받아야 대적 마귀를 이기고 생명의 씨를 뿌릴 수 있다는 약속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는 마치 잔잔한 수면 위에 물이 퍼져나가는 모습 그대로이다. 한번 시작한 파장은 끝으로 마지막으로 퍼지는 것이 주님의 만들어 주신 자연과 창조의 질서 그대로이다.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 역시 세상 끝을 향하여 무엇을 나타낼 것인가를 가르치시는 교훈이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만이 증인의 자격이 있고 또 목격자는 싫어도 자신이 본 증거를 가감 없이 증언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사도들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증인이 될 수 없을 것인데 주님의 사심에 대한 증인은 사도들이지만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 말씀을 성령과 더불어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으로서 증인이 바로 오늘 믿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이유는 나의 삶을 놀랍도록 뒤집어 변화시키신 것에 대한 증거는 다른 사람들은 증인일 수 없고 그것을 경험한 증인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분명한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이런 입장에서도 나(우리)의 인생 속에 들어와 성령의 역사로 저주와 슬픔과 절망의 삶을 들러 엎으시고 생명과 영생과 소망으로 변화시키신 주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이 증거해줄 수 없는 나만의 고백이요 증거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의 증거는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사명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