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행 22:12~16 2012-1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이 내용은 바울이 아가야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어려운 처지의 유대를 위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잡혀서 자신을 죽이기를 원하는 동족들에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고백하며 다메섹에서의 경험 즉, 사도행전 9장의 체험을 되돌아보며 고백하고 있는 조금은 개인적인 내용이다.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왜 그렇게 삶의 방향을 급하게 바꿀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야기 하는데 오늘 우리의 도전을 요청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때로 우리는 주님께 받은 확신과 명령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릴 때가 더러 있는데 사실에 있어서 바울이 그랬던 것 같다.

제목으로 잡은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는 말씀이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사실 오늘 우리 각자도 가야 될 길이 분명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면서도 이 사울처럼 머뭇거리며 시간을 흘리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것을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까지 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 때문이거나 희생과 고난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뜻이 분명함에도 선뜻 행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을 경우에 주님은 오늘 사울에게처럼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다.[And now what are you waiting for?-NIV; And now why do you delay?-NASB]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느냐?, 왜 머뭇머뭇하느냐? 왜 해야 할 것을 늦추고 있느냐?”는 것처럼 물으시는데 이 질문은 사실 우리의 의지를 요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 놀라운 변화 즉, 주님께서 모든 이방을 구원하시려는 도구로 한 사람을 택하시는 이 역사의 특별한 은혜를 이루심에 있어서 사울에게는 다른 이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 함께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들어가던 일행이 사울 외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즉, 사울과 같은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함께 하였을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도 함께 빛은 보게는 하셨지만 사명을 위한 음성을 들려준 사람은 사울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이다.

v7, 9에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를 가리켜 OT성경을 인용하는 내용을 보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4:15~16)

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기는 하지만 그의 음성을 듣는 것은 모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자신이 들은 사명이 귀중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주님으로부터 듣는 각각 다른 음성은 분명히 귀중한 것이다.

어떤 것은 사울처럼 자신에게만 들려준 음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귀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깨닫고 행해야 하겠다고 확신하고 결심하면서도 한 해가 다 가도록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오늘 바울에게 물었던 이 질문을 자신의 말씀으로 듣는 …



Ⅰ.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을 늘 준비 하신다.(12~13)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속에서 언제나 주님의 백성들을 이끌 일꾼을 선택하심에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를 통해서라도 부르시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인 OT시대는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도 이것은 다르지 않다.

사무엘을 통한 사울의 선택이 대표적인 OT의 예였다면 오늘 본문에도 아나니아[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라는 사람을 다메섹에 숨겨두셨다가 사울에게 새로운 눈을 갖게 하고 사명의 확신을 불어넣어주는 귀한 역할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보게 된다.

1. 말씀에 따라 경건한 사람.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9:10에 보는 대로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율법을 잘 지키다가 주님을 알게 되고 그러므로 베드로처럼 유대주의에 정통인 이 사람을 통해서 바울을 세우는 것 자체도 유대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2.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이 사람의 됨됨이 중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신앙적 인격을 볼 수 있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것은 쉽지 않다.

3.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사람.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만약에 사울이 아직 주님께 굴복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형제” 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을지 의문이다. “다시 보라!” 한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사울의 죄악의 눈을 어둡게 만드시고 다시 신령한 눈으로 회복시키시는 모습이다. 이 다음부터 바울은 모든 사물이나 사람을 예전처럼 보지 않았을 것은 다메섹에서부터 즉시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데서부터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직접 하실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의 사람을 통해서 쓰실 일꾼을 부르시고 선택하시는 것을 이 사울이 바울 되는 과정에서도 보게 된다. 아마 여러분 각자에게도 바른 진리에 대해서 ‘다시 보라!’는 안내를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를 유혹해서 진리를 가리고 어둠을 진리처럼 오도시키는 잘못된 종들도 곳곳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Ⅱ. 지체하지 못할 확실한 증거를 주신다.(14~15)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는 어중간하게 희미하게 보여주시고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적어도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에게도 그렇게 하셨음을 본다.

1. 택하신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 너를 택한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고 있다. 사신 주님의 일꾼이 됨에 있어서 주님의 선택은 절대적인 과제이다. 대개 이스라엘 속에서 전통적인 하나님을 부를 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해왔고 아나니아는 이 사울에게도 너를 이방인을 위한 일꾼으로 택하신 주님께서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확인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2. 알게 하신다.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 일은 자신이 해야 할 알아야 가능하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사람 자신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감당할 수가 있다. 주님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은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이다. 그런데 사울에게는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신다고 확인시켜주고 있다.

3. 보게 하신다.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 이것은 적어도 사울에게 일을 시키실 분이 누구심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물론 사울은 자신을 굴복시키시는 주님을 몰라 뵙고 다만 두려움으로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였고 여기에 대해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5) 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4. 듣게 하신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 다른 사람들은 다 들을 수 없는 주님의 음성을 사울만은 분명히 듣게 하셨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분의 명령을 듣는 것이 첫째이다. 듣지 않는다면 주님의 일이 아니라 엉뚱한 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b]

이렇게 구체적으로 사울에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사울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께 택하심을 받고, 자기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인류에 유일하신 의인이신 주님을 보게 하시고, 그 입으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다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사람들에게도 알게 하셨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그러나 주님의 일꾼들에게는 그보다 더 분명한 모든 것들을 알게 하심으로 나중에 핑계하지 못하게 하심이 사울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5. 이 모든 것들의 증인이 되라 하신다. “네가 ①그를 위하여 ②모든 사람 앞에서 ③네가 보고 들은 것에 ④증인이 되리라”



Ⅲ. 이제 우리를 재촉하시는 하나님이시다.(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 미루지 말라고 하신다. 안 사람에게는 안만큼의 책임이 있다. 특히 감당해야 할 일의 사명을 알았다면 미루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속히 하라!”고 당부 하시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개인의 사정 때문에 미룬다면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주님은 이해 해 주지 않으신다. 분명한 사명에 대해서는 그 분명한 만큼의 책임의 신속성도 요구하신다.[요나]

2. 일어나라고 하신다. 아직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받은 자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이성의 패배로 인하여 탄식하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7:10) 라고 하셨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죄와 심판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폐허 위에 앉아있던 주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것처럼 사울에게도 같은 당부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3. 죄를 씻으라 하신다.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하늘의 일을 위한 꼭 필요한 절차이다. 여태껏 나름대로는 율법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것들은 오히려 주님께는 더 큰 죄였고 그것을 씻어내는 것은 잿물이나 비누가 아니라(렘2:22)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의 피에 자신을 담그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라 하시고 하나님으로 주어진 이 방법으로 “너의 죄를 씻으라!” 당부하시는 것이다.

“이제는”에도 이유가 담겨있다. 과거는 몰라서 그랬겠지만 ‘분명히 알면서’ 머뭇거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주저[헬, mello, 의도하다, ~하려고 하다]하느냐?”

말씀과 사람과 사람을 준비하시고 눈을 떠 택하시고 알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보게 하셨으면 보내시는 주님을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 자신의 보고 들은 것의 증인역할을 해야만 한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각자의 과제 앞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물으시는 주님께 믿음으로 바울처럼 응답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