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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막 16:14~18 2013-09-29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른 종교와 다르게 기적의 신앙임에는 틀림이 없고 이것 때문에 세상의 종교들과 구분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10가지의 기적을 애굽 가운데 베푸셨고 이런 이유 때문에 오로지 기적이 아니면 믿지 않으려 했던 주님 당시의 이스라엘을 본다.

[마12:39,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인간 구원을 위한 역사 속에 때로는 전혀 기적과 다른 희생을 통해서도 일하시며 어떤 역사들은 의도하시는 일이 완료되었을 때는 기적도 거둬들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구원의 역사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말씀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있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이 오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논쟁의 제목이 되기도 하였는데 17~18절 말씀 때문에 조화되지 않은 팽팽한 대결이 되기도 하고 거짓으로라도 기적을 나타내지 못하면 무시하는 계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혼란으로부터 우리의 바른 신앙을 지켜가고 혼란 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과제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 말씀의 중심점은 사실에 있어서 기적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증거의 명령이다. 아담 이후로 범죄한 인류 때문에 고통을 겪는 모든 피조물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통한 사랑의 역사를 증거하는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고 계신 주님의 승천 직전의 귀중한 복음증거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도 은사나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구원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기적으로 감당하는 것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오늘 우리의 헌신과 삶으로 가능할 것이다.

모든 신앙의 분야에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바로 이해함으로 무질서가 아닌 확신과 사명과 감사로 주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



Ⅰ. 복음 증거의 사명을 주신다.(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표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이 복음 증거의 명령에는 특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예외가 없다. 이 말씀의 주안점은 사실 이 말씀에 있다. 공관복음서의 말미에는 어디나 다르지 않게 부활하신 몸으로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려는 주님의 한결 같은 명령을 복음서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서 조차 읽을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b~20)

누가복음24:47~사도행전1:8까지의 말씀도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임을 증거하면서 이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7~49)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결국 복음증거의 일이 사람의 힘이나 열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 15절도 여기에 해당되는 말씀이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결과를 증거하고 계시는 것이 16절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러므로 사람을 통해서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반드시 순종해야 할 모든 사람들의 과제임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하늘의 권세이다.



Ⅱ.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너무나 둔감했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11)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13)

이러한 부활의 능력으로 증거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무려 3번씩이나 거절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이 14절이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이 약속은 불신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 분명하다.

우리는 항상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적을 보이셨고 죽었다가 살아나실 것도 수없이 말씀하셨음에도 둔해진 제자들의 영적인 상대를 보는 것이다. 오늘 우리 또한 진리나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그리고 복음 증거에 대해서 이렇게 둔감해지기 쉽다.

오늘의 복음증거는 어쩌면 이벤트적인 행사로만 하려 하기 때문에 호소력이 약할 수 있다고 본다. 정한 날 시간에 가슴 띠나 완장을 두르고 함께 행사로 갖는 복음증거는 사실 성경적으로 볼 때는 호소력이 약하다. 전도를 받는 사람들이 전하는 사람들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살면서 세상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그러한 이유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자신의 삶의 변화와 이유를 성령과 더불어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능력 있는 전도의 삶이 될 것이다.[벧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사실 3년이나 따라 다니며 훈련을 받은 사도들도 이 정도라는 데서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도전을 주고 계신다.

그럼으로 오늘 제목과 더불어 다음의 제목이 일차적으로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고 오늘 나에게 여기 말씀하신 표적이나 기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절망할 이유가 없다.



Ⅲ. 나중 제자들에게 검증이 되었다.(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들었어도 들어도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주어졌음이 확인된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너희가 도무지 믿지 않지만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라고 불신하는 사도들에게 믿음으로 주시는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말씀을 이적과 더불어 능력 있게 확인 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을 순종하는 제자들에게 확인 되어진 사실을 20절에서 읽을 수 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후에 여기에 나타난 능력들은 그들의 복음증거를 효과적으로 증거하게 하는 역사를 우리는 사도행전 속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오늘날 많은 독소나 질병에 어려움을 당하고 죽고 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실제로 사도행전 속에 어떤 사건들은 그 당사자들인 사도들 자신과는 관련이 없이 일어나는 일들도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행5:15)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9:12)

계속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 17~18절의 말씀이 약속되어졌다면 야고보서5:13~15에 주어지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필요 없는 일을 당부하시는 것이 된다.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라는 말씀이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가를 묻는다면 거기에 어떤 답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지 못하거나 불완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이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면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부조화를 사도들에게서 조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구분을 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바보나 힘없는 무력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약속이 사도들에게 주어졌다는 약속이라고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강력한 무기와 함께 하늘의 소망에 관한 약속들을 수없이 주고 계심을 에베소서6:10~18에 확인해 주고 계신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4~18)

사도들에게 주어진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7b~18)신 약속은 하나도 어김없이 그들에게 이루어졌고 이러한 능력은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달 되었지만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은 자들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러한 능력은 그 다음 사람들에게는 사도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고[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앞에서도 말해왔듯이 이러한 능력들은 아직 NT 성경이 쓰여지지 않은 때에 그들의 말씀을 확증하는 역할을 하였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20)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행14:3)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2:4)

나에게 오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변명도 안 된다. 오늘도 주님과 살며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세상이나 어떤 어둠의 세력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의심치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