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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7:37~39 2013-10-2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여드레(레23:36; 민29:35)를 축제로 지키는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하는 절기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명절 끝 날에 성전에 모여든 군중을 향하여 외치신 귀중한 교훈을 오늘 우리가 접하게 된다. 일년이면 3번의 큰 절기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예루살렘을 찾아 절기를 지켜보지만 언제나 끝나고 나면 허전함만이 남게 되는 것이 또한 절기나 명절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명절과 절기는 폐해졌지만[호2:11,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여전히 그 명절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보고자 하는 것이 많은 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것은 비단 세상 명절이나 종교적 명절이 다르지 않다. 사도행전8:26~ 에디오피아 라는 아프리카의 먼 나라에서 예배를 드리러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재무장관이었던 내시는 허전함과 갈증을 가지고 돌아가는 가운데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성경을 읽다가 주님께서 빌립을 만나게 하심으로 비로소 생수를 얻은 듯이 기뻐하는(8:39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큰 차이를 보는 데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에덴 이후 희락의 동산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갈증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갈증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마치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무저갱[헬, abyssos]처럼 어떤 것으로도 갈증은 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입장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오직 하나의 소망이요 기쁨일 뿐이다. 지식에 대한 갈증을 가진 자도 고독과 그리움에 대한 갈증을 가진 자도 권력과 높은 자리에 대한 갈증도 부와 명예에 대한 갈증도 약속대로 주님께만 확실히 돌아 온다면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다.

주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유대로 내려 오시다가 사마리아에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을 향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선언하신바 있고 진리가 뭔지도 모르는 그 여인도 “그런 물을 내게 주사”(15) 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면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해결책이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신 주님의 초청과도 무관하지 않다. 끝임 없이 되고자 하는 사람,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주님 없는 성취는 여전히 부질없을 뿐이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그래도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모른다.

이런 맛을 봤던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73:28) 라고 증거하고 있다. 오늘도 주님의 성령을 모심으로 모든 갈증이 해갈되고 복됨을 고백할 수 있는 …



Ⅰ. 축제가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람은 본래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이 충만만 희락의 동산에서 범죄로 쫓겨난 후에는 근본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영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 없이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가능한 방법과 함께 최선을 다하여 그 목표에 도달하면 만족하고 기쁠 것 같은데 성취된 목표는 또 다른 목표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도전하는 인생이 멋지고 활기가 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

요즘은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축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골마다 계속 축제가 있고 대도시는 도시대로 축제가 넘쳐난다.[바다, 영화, 불꽃-부산] 그럼에도 축제를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은 허전하기만 하고 집에 돌아와서 남는 것은 여전히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이다. 과연 인생의 갈증을 한방에 날려줄 축제는 없는 것일까!

‘목마르다, 헬, dipsao’ 모든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28절에 나타나는 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신 곳은 성전이었다는 데 더 큰 안타까움이 있고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이제 이 장막절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선언을 하신데 더 큰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카펠라찬양잔치를 계획하고 그 날을 향하여 열심히 찬양을 준비하고 여러 가지를 맡아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경계되는 것은 이것이 끝나고 우리가 더 큰 갈증을 갖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계이다. 이러한 과제를 다루면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말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적어도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책임 지신다. 왜 주님께 구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숙은 오직 하나로 검증된다. ‘얼마나 그리스도의 인격(성품)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삶의 문제를 얼마나 많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해결 받는가! 뿐이다.

감히 결론부터 생각한다면 인간적이고 보이는 것만으로 준비하고 행사로 그친다면 마친 후에는 여전히 목마르고 갈증을 호소하게 될 것이지만 우리의 만족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충족시키고 성령을 힘입어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주님으로부터 흡족한 은혜를 누리고 기쁨과 감사로 또 다음 드릴 영광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세상의 거대한 Festival 이나 Carnival 이 아닐지라도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합당하게 돌려 드림으로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영혼에 반사되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여 더 큰 영광을 주님께 돌릴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그런 복된 잔치가 되시기를 …



Ⅱ. 위로의 생수는 주님으로부터만 흐른다.(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 주님은 갈증의 해소의 방법이 주님 자신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생수의 시원함을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을 말씀하고 있는 이 내용에는 이 약속의 출처를 증언해 주고 있다. 모든 약속에는 조건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약속의 조건이 역시 땅에서부터가 아닌 위로부터임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7b)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가능한 초청이셨고 그 초청에 응하는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이 내용은 마치 복음을 수용하는 순서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서 상당히 흥미를 가지게 한다.

①조건 – “나를 믿는 자는” 이것은 복음의 초청 그대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긴 하셨지만 그 사건을 자신을 위한 사랑의 역사로 받아 들이고 복음에 세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만이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은 물론 승천과 재림이 효력을 가지는 것처럼, 세상에서 해결될 수 없는 갈증을 가진 자들도 다르지 않음을 본다. 때문에 이 말씀은 복음으로 영혼이 회복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더욱 분명해지고 이와 같이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유효한 약속이 될 것이다.

②약속의 출처 – “성경에 이름과 같이” 인간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증거는 이 세상의 어느 책에도 나와있지 않고 성경만이 해답을 주고 있다. “성경에 기록됨과 같이” 라는 말씀은 여러 군데 말씀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라는 약속의 말씀의 완성이라고 보인다.

또 주님께서 수가 성의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는 말씀과도 연관되면서 죄의 사람들에게 살기 위해서 주신 성경만이 이것을 약속하고 있음을 증언하신다.

어쩌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기록된 말씀은 죄로 고통 하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실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요5:39) 있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③위치 – “그 배에서” 분명한 출처를 말씀하셨다면 그 시원한 생수가 어디에서 나오게 되는 가를 말씀하시는 것은 자연적인 순서이다. “배[코일리아, koilia, 마음, 자궁, 내적 자아]” 이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성령께서 계시는 우리의 심령으로부터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삼고 있는 사람들(고전3:16)에게만 가능한 약속이다.

④무엇이 –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 말씀은 계시록 마지막 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의 강을 떠올리게 한다.(계22:1~2) 생명수는 영원 속에서뿐 아니라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성도들의 가슴에 이 땅에서부터 흐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이 답답한 세상의 상태에서도 생수의 위로를 누리므로 생명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생수는 개천처럼 졸졸 흐르는 물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이 풍성이 넘쳐흐르는 강으로 흘러 넘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Ⅲ. 성령이 주시는 위로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마지막 절은 앞의 38절의 설명 같은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살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람이나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까지도 물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물은 가히 생명의 근원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생수의 강]은 과연 무엇인가! 이 해설이 없었다면 많은 혼란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요한 사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것 조차도 친절히 해설해 주고 계신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시작에서부터 이미 이 조건을 “나를 믿는 자는” 이라고 하셨고 여기서도 이를 확인해 주고 계신다.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그럼으로 이 말씀은 너무나 분명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예언하시면서 “보혜사”(요14:16) 즉, 위로자라 하셨다. 성령의 오심의 조건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하였고 이 성령의 계심이 생수의 강처럼 우리의 모든 갈증을 면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에 귀중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39b)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생수 성령의 약속을 말씀하셨지만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이기 때문에 예수님 외에는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성령이 계시지 않았다는 증언이 되고 이것은 또 하나의 이스라엘의 절기인 오순절에 성령이 강물같이 풍성하게 임하심으로 이루어짐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이 말씀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옆으로의 승천을 의미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열흘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들을 옥죄이는 박해 속에서도 영혼의 시원함을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끼쳤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교회 속에 날마다 더하셨음을 사도행전 속에서 읽게 된다.

결국 생수의 강은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임재로 위로가 넘치고 생명의 풍성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의 임재는 시작이었을 뿐이고 땅끝까지 이 생수의 江 성령의 역사는 풍성히 흘러 넘쳐서 오늘 우리 또한 동일한 약속을 누리고 있다.

이것이 나중에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는 약속이셨다.

중요한 것은 “이 엄청난 약속을 오늘 우리(내)가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