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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4:25~27 2013-12-08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주님께서 세상에 육신으로 계실 때에는 제자들조차 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말씀들이 더러 있었고 이러한 것들은 직접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희생의 십자가와 구속의 완성으로 이 땅에 보내신 성령께서 오심으로 비로소 완전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런 내용들을 요한 사도께서 더러 기록하고 있는 곳들을 읽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곳을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2)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요12:16)

주님의 이 말씀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하신 실제적인 사실을 말씀해 주고 계신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당시에 아니 구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심을 들었음에도 제자들의 마음에 평안은 없고 오직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했음을 보는 데[마17: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오늘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들도 여전히 제자들의 모습에 있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요한복음에서도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 가신다는 말씀을 하시자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16:6) 라고 직접 말씀하신다.

영적인 약속을 육신들로만 이해하면 걱정과 근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역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담대해졌던 제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안이 없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진다면 자신의 믿음의 상태와 주님의 약속에 대한 태도를 점검해야만 할 것이다.

주님의 희생을 기념할 만찬을 나누시고 난 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하신 약속이야말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가장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복이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을 소유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라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OT에서도 거짓된 평안을 말씀하시는 것을 읽게 되는데 막연히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8:11) 잘못된 신앙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허황된 약속을 가지고 위로를 얻으려 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귀한 약속과 함께 자신의 영성을 점검하고 확인하여 주님의 자녀 됨에 좀더 확실한 기쁨과 감사로 말미암아 하늘의 평안을 확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Ⅰ. 보혜사를 약속하신다.(25~2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자꾸만 떠나신다는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두려움과 안타까움만 더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가르쳐 오셨던 약속을 확인하시면서 더 귀중한 언약을 주고 계신다.

분명 주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특별한 경험과 많은 영적인 체험을 누리는 특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까지는 직접 하시는 말씀들 조차 소화를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적어도 보이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영적세계만큼이나 간격을 갖는 것이다. 오늘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영적이지 못하면 깨닫는 것이나 행하는 신앙은 어린아이와 같을 뿐이다.

바울은 위대한 사랑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이것은 육신적인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사랑”이라는 이치를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고보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하는데 세상에 사는 우리가 세상의 벗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다르지 않은 교훈이다. 이 말씀 역시 육신적인 가치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교훈이다.

①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아직 이 약속을 누릴 수 없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25) 그럼으로 이 약속은 오순절 이후 사도들은 물론 오늘 우리의 것임이 확실하다. 이 약속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럼으로 주님께서는 미래에 있을 약속을 육신을 입으신 가운데 말씀하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주님께서 떠나시고 성령께서 오셨을 때 완전한 이해가 가능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주님의 약속은 감사하고 또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실 성령이시다. 이러한 평안의 주체이신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실 것에 대한 약속이고 성령께서 오셨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고 깨닫게 되고 누리게 됨을 말씀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 (26f)

또한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역사하신다. 이런 입장에서도 약속의 주체는 하나님 아버지시고 주심의 통로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본다.

③가르치시며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6b) 이것은 바로 영적인 이치와 실제적인 약속의 이루어짐이 성령이심을 증언하신다.

지금 제자들에게 주시는 이 말씀조차도 성령께서 오셔서 감동을 주심으로 바로 이해되었고 그러한 사실을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세상의 어떤 비밀이나 신비종교의 매개체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에 순종하고 기대하는 모든 자들에게 차별 없이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입장에서도 보혜사이시다. 자신이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으로 인도하시고 없어질 이 보이는 세계보다도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고 기대하게 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시는 분이다.

사실 주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이 귀중한 약속을 들으면서도 당시에는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누릴 수 있음에 감사와 찬양을 …



Ⅱ. 평안을 약속하신다.(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어쩌면 주님께서 주고 가신 약속가운데 가장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분명한 약속이 이 언약이라고 확신하고 감사하다.

①주님의 평안을 주신다. 이 평안은 사실 주님 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이다. 누구든지 갖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것임을 말씀에서 확신할 수 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17:10)

그렇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그대로 이 우주의 창조주요 운행자이신 절대 권세자 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므로 그분의 평안을 소유한다면 사실 이 우주 안에 특히 좁은 보이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구속의 역사를 완료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 가시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헬, aphiemi 남겨두다, 떠나다, 용서하다.]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가지셨던 아버지의 평안을 하늘로 돌아 가시면서 가져가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의 소유가 된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들에게 남겨두고 가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이다.

②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27m) 세상의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상대가 나보다 더 강하면 아무리 강한 자라도 그에 대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상이 주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온전치 못하다.

이런 이유에서 세상이 주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나는 돈이나 권세와 명예가 이런 이유에서 소금물처럼 가져도 가져도 갈증을 면할 수 없어서 가진 자들은 자신보다 더 가진 상대를 보면서 더 가지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끝이 없다.

야고보는 이러한 육신의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세상의 상대적인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는 경고로 끝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은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것조차 세상이 주는 것들과 꼭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다. 주님은 썩어질 것이나 없어질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주님이 주실 생수를 두고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하셨다.

이런 논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께서 주시는 평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환경에 따라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평안을 가진 사람은 죽을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제는 영적인 가치 까지도 세상의 것과 같이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③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b) 주님의 보호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맹수 앞에 떨고 있는 힘없는 지승 같이 떨 필요가 없다.

“근심하다[헬, tarasso, 물이 요동하다, 자극하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혼란하다, 소동하다]; 두려워하다[ 헬, deiliao, 무서운, 비겁한, 무기력한 겁이 많다.] 특히 여기 “말고[헬, me-절대적인 부정을 나타낸다.], 말라[헬, mede-아니다]” 라는 말은 그 뒤에 이어지는 어떤 것을 부정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좀더 가까이 이해한다면 “근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겁을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라는 의미가 된다.

이래서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별명은 바로 “용기의 사람, 꿈의 사람”이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골리앗 앞에서 담대한 다윗은 아직 메시야께서 오시기 전에도 이런 확신을 가졌고 사단에게 참소를 받아 온 갓 불운을 겪은 욥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도 OT의 아직도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NT의 신앙의 사람들은 더욱 분명하였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이 마지막 시대의 우리들이다. 우리도 진리를 따라 순종한다면 이 주님의 약속은 분명히 우리들의 것인 만큼 소동하거나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주님께서 육신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것보다도 더 분명하다. 사도들에게 주셨던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는 두말 할 필요가 없이 분명한 언약으로 오늘 우리가 누릴 약속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와 저주의 죽음을 해결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평안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고 이것은 적어도 세상의 상대적인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졌던 것일 뿐만 아니라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오순절 이후의 사도들로부터 모든 복음 속의 신앙의 사람들이 누리고 자랑했던 것으로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이왕에 허락된 이 놀라운 평안을 모두 주신대로 누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