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배
풍요한 나라 속의 명암(明暗)...
2004-02-17
이곳에서는 대낮인데도 가로등이나 심지어 이 곳 기숙사의 현관까지 불이 켜져 있는 일은 매우 흔한 모습이고(어두운 나라인가!) 그것을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불쾌해 하고, 쓰레기는 우리 나라에서 분리 배출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으로 음식 찌꺼기든 플라스틱이든 종이이든 빈 캔이나 유리병까지도 모두 검은 비닐 봉투에 넣어서 함께 버리는 것이었다.(함 전도자 내외가 처음 따로 분리해서 내 놓았더니 다시 섞어서 담더라고 한다.)

익숙치 못하고 그래도 평소에 근면이나 절약이 생활화 되어 있었던 나로서는 부유한 나라 속의 어두움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빌 램시 원장께서 계시는 멀프리스보로(Murfreesboro)엘 가기 위하여 다운타운의 그레이하운드(Greyhound) 터미널을 갔다가 함 형제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차표를 사서 가고자 했지만 이미 차표는 다음날 아침까지 동이 나고 없어서(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루 두 번 있는 버스 편은 새벽 3:30과 아침 9:00 뿐이란다.-역시 도시마다 연결되고 하루 수회를 오가는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했는데 이곳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MATA 라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물어서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하는 곳으로 3블록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에서 머무르는 곳으로 오기 위해 버스를 바꿔 타야만 했다.

날씨는 싸늘한데 버스가 온 시각은 어림 잡아 한 시간 정도였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흑인들 뿐이었다. 느린 버스는 마치 제주도의 완행버스를 연상케 했고 대부분의 빈민(貧民)들은 이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고 한다. 요금이 $1,35로 우리 화폐로 \1,620 정도인 것도 결코 싸지 않은 액수였었다.

버스의 모양은 대개 공항에서 비행기와 공항 출구를 오가는 넓고 낮은 셔틀 버스 모양인데 특이한 것은 장애자를 태우고 내릴 때는 버스의 몸체가 길 바닥과 아주 가까워 질 정도로 낮아지는 장치를 작동하여 장애자들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탄 버스는 약 1시간 여를 더 지나서야 하딩 대학원의 기숙사 가까이에 내릴 수가 있었다.

우리 나라가 이런 모습에서 보면 지하철이나 노선마다 자주 있는 버스들로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되었다. 여하튼 이곳의 서민들의 삶을 부분이나마 경험해 본 중요한 계기가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곳의 교회도 역시 대형교회는 우리 나라와 같은 현상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주님의 날은 아침과 저녁으로 이 곳에서 가장 크다는 ‘하일랜드 거리 그리스도의 교회’(Highland Street church of Christ)의 예배에 참여했다. 예배당 분위기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스태인드 글래스의 창문은 밖의 정경은 볼 수 없지만 빛을 충분히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지만 그림은 새기지 않은 일반적으로 그림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과는 달랐고 파크 애베뉴 교회와는 모든 것이 순서적으로는 또 달랐다. 찬송을 예배시간동안 열 곡이 넘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것도 어떤 것은 한 절만 또 다른 것은 두절만 부르는 형식이었다. 미국교회 찬양의 특징은 한결같이 악기를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4부의 아카펠라가 자연스럽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만찬 전에는 구속의 보혈을 찬양하는 내용의 찬송을 부르고 만찬을 나눌 때는 아주 조용히 나누었고(특히 주의 만찬에 감동이 되었다.) 연보를 드리기 전에 기도를 하고 연보를 드렸으나 역시 봉투나 연보자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축복의 기도도 없었다. 메시지를 위한 성경말씀을 따로 봉독하지 않고 바로 설교를 하는데 역시 무선 마이크로폰 장치를 한 체로 작은 강대상은 쓰지도 않고 좌우로 오가면서 말씀을 전하는데 로마서 8장을 중심 하여 미래의 영광과 현실의 고난을 대비시키는 은혜롭고 간결한 말씀이었다.

이 제목과 관련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형 교회들도 우리나라처럼 처음 방문자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양의 이방인에게 다가와서 자기를 소개하거나 방문이나 목적 같은 질문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것은 지난 주님의 날에 예배를 드린 교회와 다른 점이었다. 특히 저녁 집회에서도 설교보다는 제목 자체가 “하일랜드 교회의 마음(Highland church’ heart – 적당히 우리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라는 주제로 자신들의 자긍심 고취 같은 형식으로 교회의 성장 과정에 있었던 긍정적인 부분들을 보고하는 형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마도 예배당 건물과 주차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런 형식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그런 내용의 유인물을 오전 예배 때 나눠줬었다.)

이 교회의 이름처럼 높은 곳에서는 멀리 보고 많이 볼 수는 있지만 바로 밑의 어두운 곳을 볼 수 없는 단점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씁쓸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의 명암은 우리와 또 다른 그런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