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die
아메리칸 드림…
2004-02-26
어제 한번의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멤피스로 다시 출발했다. 멀프리스보로에서 정시에 도착하여 출발한 버스의 운전자는 공교롭게도 지난번에 그 쪽으로 갈 때와 같은 운전자여서 조금은 반갑기까지 했다. 도로변의 나무들은 곧 푸른 잎을 내기 위하여 붉은 눈을 한껏 키우고 있었다. “과연 저 나무들은 이 겨울이 다 가는 마지막에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야 당연히 미국의 한 부분이니까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예전부터 미국으로 와서 멋진 삶을 이루어 보겠다는 많은 외국인들의 기대를 이렇게 표현 했었다.)이겠지!” 라고 차창 밖을 응시하며 혼자 속삭이는 동안 내쉬빌에서 한 시간을 지체한 버스는 다시 지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좇아 달렸지만 멤피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숨어버려 어두움이 짓게 내리고 있었다.

그 동안 Bill 원장댁에서 지내는 동안의 많은 일들이 반추 되기도 한다. 신장이 나빠서 항상 투석을 하나가 마침내 하나를 이식 받아 지금껏 그래도 건강함을 누리고 있지만 언제나 자신의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Dinah 는 역시 나에게도 그러했고 자주 자주 “당신 집에서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시오(물론 영어로 말했지만)”라 시는 Bill 원장의 친절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존이 중국을 가기 때문에 베풀었다는 송별만찬 자리에 모여든 가족들을 보아도 그러했다. 빌원장은 여러 자녀를 입양하셨는데 그 중에는 김씨 성을 가진 딸(한국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못한다고 했다.)도 있었고 이렇게 각각 다른 사람들임에도 신앙으로 엮어져서 그런지 서로를 사랑하고 안아주는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자신의 집에 충분한 음식이 있지만 부인이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3일씩이나 쇼니스(Shony’s-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식당으로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아침식사의 대부분의 음식들이 ‘뷔페,buffet’식으로 제공되는 체인점식의 식당)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여기 오는 날은 내가 음식 값을 치루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면 울거라고 까지 만류를 하셨다.

미국인들은 먹는 것에 대한 절제가 가장 어려운 모양이다. TV로 보던 이미 사람의 신체 모양을 잃어 버렸다고 할 정도로 비대(肥大)한 사람들(자신의 신체를 가누기 힘들어 하고 걷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힘겹게 보인다.)이 자주 보이고 정류장이든 휴게소든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컵(참고로 나는 늘 커피를 작은 것으로 시키지만 먹기 버거울 정도로 많다.)이나 병의 커피나 탄산 음료들을 늘 들고 마시는 것을 보면 “그래 저러니 그렇구나!” 싶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달고(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들) 기름기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쇼니스 같은 식당에서도 자주 보인다. 길 가의 날씬한 나무들과 빌 원장이나 스티브 플렛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하다. 우리는 주로 커피와 함께 시리얼(cereal-곡식을 갈아서 만든 음식으로 주로 미국인들이 애용하는 아침음식)이나 과일을 먹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켄터기의 환원 운동의 역사적 장소들이었던 렉신톤 등등과 같은 장소들도 지나면서 볼 수 있었고 인디아나 주와 알라바마의 추억들도 감사가 넘치게 한다.

이곳 멤피스에서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