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윤곤
주님의 만찬에 대해서
2005-09-29
바울사도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매주 마다 떡을 떼며 생명의 예배를 했습니다.

생명의 예배라는 뜻은 생명이신 주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또한 하나님께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명하신 말씀입니다.

만약 주변에 그리스도인 중에서 오늘날 어떠한 교회들처럼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하지 않는 예배자가 있다면 바울과 함께 동역자라 칭함받을 수 있었을까요? 또한 최종 목적지가 같았을까요? 물론 초대교회시절 떡을 떼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구약의 제사에서 가장 핵심은 희생양과 피였습니다. 왜냐하면 제사는 먼저 하나님의 거룩이 공표되어져야 하고 반면에 '나의 나 됨' 즉 '저는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라고 인정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핵심이 빠지면 마치 물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겠지요...



그 사실을 표현하는  하나님 명령하신 형식이 바로 희생양과 피인 것입니다.

죄없는 양이 나의 죄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피를 흘리는 처절한 모습과 더불어 역겨운 피비린내가 날 것이고 아마도 그 죽음의 냄새로 인해 구역질이 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 자신은 원칙적으로 희생양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이 뼈저리게 깨달아 질 수 밖에 없겠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겁주기 위해 그러신 것은 아닙니다. 낮은 자임을 깨닫게 해서 겸손한 자에게 더욱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함이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자신의 일상생활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죄인이란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하셔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하지말라"라는 규제였다면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후 이제 은혜의 복음시대에 있어서는 "하지말라"는 "하지말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친히 담당하시고 폐했으니 이제부터는 은혜에 감사하며 "기쁘게 하라"라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율법보다 더 강화된 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대신 은혜의 복음시대에 주어진 하나님 말씀은 구약의 율법처럼 까다롭거나 복잡하거나 지키기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쉽고 간편하면서도 그대로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내려 주시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다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말씀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특권이요,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기도원이나 부흥회 때 느끼는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나 환희는 말씀순종에 따른 하늘의 기쁨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같을 수 없는 이치이지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예배를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기시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예배드리니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드리는 예배를 얼마나 만족해 하시며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찬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너희들이 나에게 나아올 때는 꼭 나의 죽음을 기념해야 된다'는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더 기뻐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명령하셨을까요?

그의 자녀들을 번거롭게 혹은 힘들게 하시려고, 아니면 그분께서 더 영광 받으실려고? 어차피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신앙의 가장 기초요, 핵심에서 벗어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내용 가운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다면 성경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됩니다. 전혀 생명을 주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들의 신앙과 예배의 중심에는 잊어버리거나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만약 매 주님의 날마다 행해라 하신 성찬을 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핵심에서 벗어나 나의 죄인됨을 서서히 망각하게 되고 교만해지며 주님의 십자가 은혜도 퇴색되어져서 그분의 거룩하심과 높으심을 자신의 입맛과 이성과 경험, 영적상태에 따라 저울질 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거룩하신 말씀에 섞어서 헛된 예배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19)

-아멘-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의 예배형식은 성찬은 없고 설교 중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를 제외하면 말이죠...



하나님 명령하신 예배는 떡을 떼는 것이요, 떡을 떼는 것이 곧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교나 찬양,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하나님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과적으로 부수적인 것이고,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떡을 떼기 위해 모였기 때문입니다.(행20:7)

먼저 떡을 뗀 후에 자연스럽게 말씀 강론과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쉽게 예를 들면, 일상의 밥상에서 밥이 있을 때 반찬이 함께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밥이 없이 반찬만 있다면 그 반찬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며, 밥상자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찬 없이 주님의 날에 드리는 예배는 한 마디로 축구공 없이 축구를 하겠다고 모인 모임과 다를 게 없지요…

축구공은 없어서는 안될 핵심이요,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모임을 빛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전체를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 사이에 있어서 연결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매개체의 본질과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대 인간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거룩, 완전,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것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실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분의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씀은 거룩, 완전, 영원하시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아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1:1) -아멘-

이어서 우리들의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주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분이시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요1:14) –아멘-

그렇다면 말씀은 곧 하나님, 말씀은 곧 예수님, 말씀은 곧 성령님과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구약에 있어서 희생양의 제사 그 자체가 하나님의 중간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짐승은 거룩, 완전, 영혼하지 못합니다. 희생양의 제사를 친히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한 연결고리가 된 것입니다. 희생양 자체 보다는 그 제사를 있게 하신 말씀이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복음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그 분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입니다.

성찬 그 자체보다는 성찬을 명령하신 구세주 우리 주 예수님의 거룩하신 명령이요, 말씀이 성찬을 감싸고 있지요...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드리는 예배는 성찬예배 자체의 비중을 두는 것 보다는 그 분의 말씀대로 나아가는 예배라 해야 타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찬예배 드리는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드린다는 아름다운 의미가 더해 지는 것이지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늘날 은혜의 복음시대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완전, 영원하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희생제물 제사는 폐해 졌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피흘려 몸을 깨뜨리심을 기념하라는 성찬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주님의 날에 꼭 있어야만 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주님의 절대적 계명이기 때문입니다.(요6:53~54)

또한, 사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 빠짐없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죄인들이 비록 완전히, 영원히 죄 씻음을 받았지만 아직도 죄악 된 세상에서 죄를 짓고 있는 의인이요,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자면 아담이 범죄하기 전이나 주님 재림이후 부활하신 주님과 같은 완전 변화받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한번도 더럽혀지지 않은 새 동전과, 한번 더럽혀졌다가 씻어져 깨끗게 된 새 동전은 동전의 주인이 볼때나 동전 자체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완전한 구원이란 뜻은 절대 아닙니다. 아직도 죄를 짓고 있는 의인이라면 거룩하신 분 앞에 나아올 때 제물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짐승의 제사는 폐해졌고 그 제물 대신에 드려야 할 그 무엇이 바로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이유는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11:28) –아멘-

너무나 은혜로우신 주님의 음성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성화의 단계를 밟고 있는 죄를 짓고 있는 의인들에게 있어서 성찬은 회개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떡과 잔을 들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는 말씀과 하나이신 성령의 은혜가 함께 하심으로 찌꺼기가 전혀 남지 않는 완전한 회개가 될 것이고, 새로운 한 주간을 죄책감을 벗고 오히려 구원의 확신과 감격의 충만 속에서 힘차게 시작할 수 있고 주신 사명도 감당할 수 잇는 것입니다.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기도원이나 부흥회에 따라다니며 긴 시간 무릎 꿇고 펑펑 울며 회개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회개가 성찬을 통한 회개입니다. 일상의 삶과 신앙이 바르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성도들은 하나님 주시는 참 자유를 충만히 누리고 있는 것이겠지요…말씀 순종에 따른 신령한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주님의 은혜로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찬예배를 진리의 말씀 따라서 기쁨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저의 삶 속에서 죄책감은 더 이상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 주님의 날마다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주님을 성찬을 통해 만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구원의 감격이 넘쳐 날 뿐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언제까지 성찬을 해야 합니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아멘-



매 주마다 성찬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매 주님의 날마다 꼭 성찬을 해야 합니까? 라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대답하기 전에 먼저 반문할 것입니다. “안식일이 토요일인데 당신은 왜 주일날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성경을 기본적으로 아는 신앙인이라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20:7)-아멘- 라는 구절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렇다면 그 질문의 해답을 당신 스스로 대답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자라면 말이지요.



부활은 따로 기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날 주님의 날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날에 공동체에 나아와서 몸을 드리는 것 자체가 부활을 자연스럽게 기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도들은 매 주님의 날마다 주의 죽으심을 성찬을 통해 기념함과 더불어 부활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예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파의 대다수는 주님의 날을 율법 속의 안식일과 구분을 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의 기쁨과 자유보다는 두려움과 책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주님 이루신 십자가의 엄청난 은혜를 누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헛되게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있지도 않는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만들고 계란을 삶아서 나눠주며, 마치 그 계란이 부활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신령한 것처럼 비춰지게 합니다.



꼭 지키라고 당부하신 영생의 성찬은 빼버리고 주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활절은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온갖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영생의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고계실까요.

정말 이상한 세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고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말씀 안에서 영안을 열고 마지막 때임을 알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지혜도 꼭 필요하겠지요…



사도신경과 성탄절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섞어서 더하거나 빼야 할만큼 모자라거나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을 바르고 기쁘게 섬길 수 있는 완벽한 가르침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믿고 행해야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지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말씀 밖에서 뭔가를 들고나와 드려야 될 정도로 부족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 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행7:47~50) -아멘-



그리고 그분이 주신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우리 주님도 당연히 완전하시지요. –아멘-

아침에 잠시 피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고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며 아쉬워하겠습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이제 결론적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3,54)–아멘-



성찬은 영생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생을 나눠주시려고 작정하시고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 따라서 성찬을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최종목적지가 다르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보는 우리 그리스도의 성도들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영생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성령께서 전도현장에서 주신 깨달음과 뜨거움으로 부족하나마 적게 되었습니다.



(요15:14)’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