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박진아 |
 |
기독교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
 |
2002-07-29 |
|
|
|
"엄마는?"
어린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안계시면 늘 하던 말이다. 먹을 양식도 넉넉하지 못했던 궁핍한 시절이지만 아이들의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계셨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형제들과 뛰놀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마음은 즐겁고 풍요로왔다.
이른 아침이면 석유곤로와 연탄불에서 달그닥거리며 흥얼흥얼 찬송을 부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 자체가 기독교교육이었다. 하루에도 자주 온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에서 가족들은 천국을 만났다.
교회에 가면 언제나 선생님이 계셨다. (그때는 선생님은 으례히 교회에 사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 선생님이 몸으로, 시간으로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셨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OHP기기도, 빔 프로젝터도 없었지만 선생님 한분 만으로 어린이들은 살아있는 기독교교육을 만났다. 그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길을 가면서도 큰 소리로 당당하게 찬송을 불렀고 주일 아침이면 지난 주일의 성경요절을 외우느라 부산을 떨었다. 예수 믿는 것은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큰 자랑거리였고 생활속에서 마음껏 표현하도록 선생님은 교수하셨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어우러졌던 교회 공동체는 아브라함, 이삭과 같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던 간세대적인 공동체로 자연스레 생활로 보여주시던 어른들의 말씀교육, 질서와 예절교육 등으로 아이들은 세상 속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갔다. 인간의 도리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배우는 간세대적인 기독교교육의 현장을 교회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이 발전하고 달라진 세상, 더욱 풍요로워진 오늘의 가정에서의 기독교교육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가? 어머니들이 가정 밖으로 많이 나왔다. 하루종일 일터에서 지친 어머니들이 가정에 돌아오면 밀려있던 가사일 때문에 지치고 말씀양육 보다는 뒤질세라 학교와 학원교육의 내용으로 아이들을 다그친다. 가정속에 머무는 어머니들의 마음속에도 조기교육, 영재교육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교육을 앞서고 있다. 어머니들의 입에서는 찬송의 흥얼거림의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또한 생활속에서의 자연스런 말씀교육을 시행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그 방법도 점점 연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정들은 자녀의 기독교교육을 모두 교회에 떠맡기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교회현장은 어떠한가? 교회속에 더 이상 선생님들은 오래 계시지 않는다. 한시간 정도의 예배와 20분 정도의 성서학습 시간이 지나면 교회에서는 아이도, 교사도 사라진다. 더 이상 아이들은 거리에서 찬송하지 않고 요절을 외우느라 부산떠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도 기도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예수 믿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은 불편하단다. 교회에서도 아브라함, 이삭의 할아버지는 만나기 어렵다. 교육관은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장소와는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일만 아주 맛배기 기독교교육을 만나고 평일에서 세상과 함께 살아간다. 생활속에서 기독교교육을 찾기란 점점 아쉬워지는 시대이다.
가정과 교회(기독교교육의 현장)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남겨줄 유산은 무엇인가. 필자는 믿는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초대교회부터 지키셨던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지킴이로 서 있는 가정의 부모와 교회의 교사들이 생활속에서의 기독교교육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 어떠한 세상교육, 학교교육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먼저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가 숨쉬는 가정과 교회를 전수할 수 있을테니까.
[ 어느 목사님의 글입니다.]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