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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되는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라는 귀중한 구원의 역사를 논증하는 책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의 연애 편지이면서 죄와 죽음에 당면한 인류를 그 절망에서 불러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사망을 치료하시는 은혜의 묘약이라고 소개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신약성경 중에서 히브리서와 더불어 대단히 다듬어지고 아름다운 문체를 가지면서 다른 편에서는 대단히 과격한 말투를 보이기도 하지만 복음이라는 주제를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으리 만큼 논리적으로 증거 하는 논문이다.
바울은 항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이 있었고 당시의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5)
바울은 당시의 땅끝이라고 말하는 스페인까지 복음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면서 로마를 거쳐 가기를 이 편지에서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롬15:23~24)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28)
그러나 바울 사도는 나중에 죄인 아닌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고 거기서 결국 유죄판결을 받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지만, 어느 한 때는 자유스러워서 장소를 얻어 담대히 복음을 전했지만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도행전 말미의 누가의 기록을 보기도 한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0~31)
여하튼 로마에 누가 교회를 세웠는가 하는 기록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지 않지만 이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바울이 안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왔던 사람들 중에 복음을 듣고 돌아간 유대인들에 의해서 일 가능성도 많고[“…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행2:10b)]
비록 누가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였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세계로 뻗어 있는 길을 타고 세계로 퍼지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
신앙적 바탕의 부족함과; 복음과 함께 부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들을 별로 누리지 못하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복음적 논리를 제공하고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1)] 보다 효율적인 복음증거를 가능케 하고 싶었던 바울은 이 편지를 먼저 그들에게 썼고, 그 덕택에 오늘 우리도 복음을 우리의 기준에서 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복을 함께 누리게 됨을 감사 드리게 된다.
1:1~17 전체의 요약이라고 하는 복음의 핵심을 증거하고, 1:18~11:36죄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저주에서 구원을 논증하고, 12:1~15:13은 이러한 신앙적 논리를 어떻게 실 생활에 적용한 것인가를 가르치고, 15:14~16:27 결론과 문안으로 마쳐지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로마서를 다루지만 이 로마서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논리로 성경 전체와 신앙의 위인들을 인용하여 창조, 타락, 구속을 다루고 있는 본래의 정신에서 치우침이 없이 우리의 신앙을 비춰봤으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앙적 논문이라고 하는 로마서와 실천적인 서신이라고 하는 야고보서나 베드로서와 극단적인 차이를 지적하려고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런 서신들과의 비슷한 점을 비교 분석하고 조화를 시도하는 주경 학자들도 더러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성경 전체와의 조화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리라고 본다.
어찌 보면 오늘의 시대가 정치와 종교[종교, 정치, 문화], 그리고 이 서신이 쓰여질 당시의 로마의 재현이라고 할 문화나 과학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때인 만큼, 로마서는 바로 이러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서신이라고 볼 때 참으로 귀중한 진리의 교훈을 나눔에 대한 조심성과 경계를 가지게 된다.
이 로마서를 통해서 지적하고 일깨우고 책망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성령과 더불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복되고 사실적인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이 말씀을 상고하고자 한이다.
Ⅰ.하나님의 부르심을 감격으로 고백하고 있다.(1, 5~6)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택정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그의 서신들마다 첫머리에 감격으로 고백하는 것을 본다. 당시에 로마인구의 3/4이 종의 신분 즉, 노예의 신분이었는데 사실 일반적인 종의 신분은 주인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인권조차도 없는 신분임을 본다면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주님께 철저하게 복종하고 섬겨야 할 자신을 고백하는 자세이다.
바울의 언제나 주장하는 또 다른 표현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라는 고백 역시 감격 중에 감격이다. ‘사도’라는 말 자체가 ‘주님께 직적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라고 볼 때 바울에게는 남다른 부름 받은 경험이 늘 그를 감격케 했고 흥분 시켰던 것 같다.
본서의 요약이라고 하는 갈라디아서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1~12)]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다메색 도상에서 불러 주신 감격을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5f)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또 다른 면은 섬김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슨 직분이든지 받았다면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께 받았다는 자세로 섬겨야 하고 감격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로 말미암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직분을 받았다는 감격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도 같은 감격을 권면하고 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6) 우리가 이스라엘과 머나먼 동쪽의 나라, 가장 우상숭배가 강렬한 나라, 자존심 강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즉,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바울의 감격에 미치지 못할까 생각하게 된다.
여러분 모두는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내 자신이 구원 받은 그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끼칠 당연한 사명이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있고, 바울과 같은 감격을 가진 자만이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5b)는 전도의 사명을 또한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Ⅱ.복음의 내용이다.(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부분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복음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하나님의 예정과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인류가 최초로 범죄 한 후인 창세기 3:15에서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셨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 후 수많은 주님의 선택된 종들을 통해서 쉼 없이 역사 속의 사람들에게 약속하시고 선언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3) 즉, 택한 약속의 민족의 혈통을 통해서 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때문에 메시야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 나실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실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 구세주를 탄생시키셔야만 했는데 그래서 택한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이스라엘 민족이었고, 그것은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이셨으므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가질 이유는 물론; 불신을 가지는 것도 그러한 당사자의 손해일 뿐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하나님의 예정된 때에 의해서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 자체가 오늘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는 엄청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4)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구원을 누리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음을 박차고 부활 하심으로 그 사실이 증명 되었다는 말씀이지, 부활시킴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뜻이 아니다.
죽음을 정복하려는 자체가 이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었고,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불가능한 과제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복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 해 주신 것이다.
이 역사 속에 위대하다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고 철학자들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인류가 그만큼 간절히 열망했던 죽음의 권능을 해결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이 모두 죽음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영원한 숙제를 푸실 수 있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대단한 감격을 주는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 그의 죽음을 정복한 사실을 목격한 사도들과 그 이 후 수많은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신의 것으로 고백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늘 수 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동일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또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는 고백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언을 따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나시고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캄캄한 죽음을 정복하시고 사망을 향하여 호령하시며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시고 이제 그를 사모하는 자들을 영원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역사에 다시 오실 예수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고백하는 감격이 주님 이땅에 오실 때까지 고백 되어 지시기를 …
Ⅲ.복음이 미치는 범위.(5, 7)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동일하게 은혜로 부르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주셨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복음 밖의 이방인들을 복음으로 불러 들이기 위한 귀중한 도구로 부르셨음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러 구원하신 것처럼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불러들임에 있어서 나를 쓰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5b) ‘그 이름’이 바로 “예수”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1)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는 “모든 이방인 중에서” 라는 범위를 분명히 해 주고 있고 이것은 오순절날 이 땅에 최초로 복음이 선포될 때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증거 하셨던 말씀이기도 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2:38~39)
다시 그 대상을 아직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대도시에 적용하고 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7) 즉,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로 이 주님의 초청은 역사 속에 계속적으로 그의 충성 된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또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땅 끝을 향하여 지속될 부르심 이다. 오늘 우리가 그 부르심의 복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차별 없이 부르시는 복음의 초청은 그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복음을 통해서 미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초보적인 약속으로 오늘 말씀은 마무리되고 있다.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순종한 모든 사람들이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은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약속된 것이요, 또 어떤 조건에서도 잃지 않을 보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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