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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8~15 2007-01-14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맨 앞의 한 마당에서는 복음과 그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과의 조금은 넓은 의미에서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감격을 고백했다고 하면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고백하면서 조금 더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형편과 자세를 말하므로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로 그치지 않고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주님의 은혜 아래서 행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은사로나 교훈으로 견고케 하고자 하는 소원과 함께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도 신앙적 힘을 얻고자 하는 나눔을 부탁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신령한 지혜로 충만하면서도 아직 얼굴조차 모르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로마 교우들을 향하여 서로의 안위를 필요로 한다고 하는 바울의 고백 속에서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것보다도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바울이 그 많은 일을 하고 복음 사역을 감당했으면서도 인류의 모든 사람을 향하여 빚 진자라고 하는 고백은 같은 사랑의 빚 진자로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귀중한 각성을 불러 일으키는 교훈이다.

오는 우리도 바울보다 더 큰 사랑과 복의 빚 진자로 깨닫고 그 빚을 갚고자 하는 사랑의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가 복음의 빚 진자라고 고백한다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갚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점검하면서 복음을 위한 사랑과 감사를 확인하는 …



Ⅰ.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감사를 가졌다.(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 사도가 가장 첫째로 꼽는 감사의 조건을 보는데 그것은 세 가지로 ①“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②“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③“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었다.

1.우리는 감사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조건에서든지 바울은 먼저 감사를 찾았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부부관계에서, 직장에서 감사의 조건을 헤아려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행복지수와 관계가 되고 신앙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무엇 보다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한 사람이라도 불만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불신의 사람들 즉, 감사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느 조건에서든지 먼저 불편한 것부터 찾고 불만부터 쏟아낸다. 사람들의 모임도 감사로 시작하는 것과 불평을 시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나 결과를 다르게 이끌어 간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얼굴도 보지 못한 로마 교우들, 그렇게 가고 싶어도 아직까지 거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한 것은 아직 만날 수 있는 기대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부터 하나님과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렇게 첫째는 감사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결과에 관계없이 먼저 감사 하고 보는 것이다. 먼저 감사부터 찾아 챙기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행복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다. 오늘 이 말씀을 뜯는 모두가 이제부터는 바울처럼 “첫째는 …말미암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을 넘치도록 가지는 …

2.오늘 나는 어떤 감사를 가지고 있는가?

①“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②“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③“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하는 보습을 보라!

오늘 많은 사람들은 너무 세상적인 것들에서만 감사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감사를 갖지 못한다. 적어도 바울처럼 감사의 기준을 신앙적인 것에서 찾는다면 얼마든지 감사가 넘칠 것이다. ①“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②“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③“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했다면 과연 오늘 나에게는 어떤 감사가 있는가를 찾아 감사를 챙겨 누릴 수 있기를 …



Ⅱ.예수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삶을 고백한다.(9~10, 13)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각 사람의 환경과 삶의 자리는 바로 그 사람을 결정한다. 바울은 자신의 보이는 환경보다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바울은 본문 9~10에 두 번씩이나 “안에서, 안에서”를 고백하고 있다.

1.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고백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바울 자신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완벽한 구원과 보호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특히 로마의 감옥 안에서 썼다고 하는 비교적 짧은 편지인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서만 이 표현이 무려 30회 이상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들만 몇 곳을 인용하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라는 표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모든 것을 다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고백이다. 바로 베들레헴의 탄생과 나사렛의 삶, 골고다에서의 십자가의 희생, 삼일 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재림의 역사가 바로 자신의 삶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고백이다. 여러분 모두 이런 바탕에서의 삶이 되고 있는가?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같은 역사로 형제가 되고 자녀가 된 아직 얼굴을 면대하지 못했지만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증인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하여 모든 것들을 나의 것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2.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말한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0)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사실 때 늘 이런 모습을 보이셨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도 “…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라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이고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앞길을 찾기 때문에 거절되는 것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을 구했다가 거절 당하면 불만이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구했다면 거절 되어도 분하지 않을 수 있고 길이 막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주님을 섬기고 불확실한 미래를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 안에서 열어 가므로 극단적으로는 거절되는 한이 있어도 감사할 수 있는 영적인 삶이 되기를 …



Ⅲ.주고자 하는 삶으로 접근한다.(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의 삶은 언제나 자신의 것을 챙기는 받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주고자 하는 것이 주님을 만난 다메섹 이후의 삶이었고, 오늘 본문의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11)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이렇게 단순히 줘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2) 서로의 믿음을 인하여 격려를 나누는 것은 신앙 안에서의 교제의 기본이다. 어떤 위대한 사도도 격려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모임과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나누는 교제요, 격려와 힘을 얻고 세상 속에서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즉 예배나 모임, 그리고 교제를 통한 격려를 받지 못한다면 세상에서의 삶,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던가요? 특히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렇진 않던가요?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모임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집회든지, 부정적인 것들로 출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다른 것으로 격려 받는 것이 아니라 “…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2) 라는 고백처럼 “그 사람의 믿음이 나를 힘있게 했다.”는 격려를 모일 때마다 받는 …



Ⅳ.그러고도 빚 진자로 산다고 고백한다.(14~15)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제 우리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에 왔다. 한마디로 믿음의 사람들을 표현한다면, 사랑의 빚 진자로 사는 자가 구원 받은 백성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빚 진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에 빚 진자요, 황량의 우리 심령에 오셔서 신령한 것들로 풍성히 채우시는 성령에 빚진 자요, 그 주님의 은혜를 이하여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랑에 빚 진자들이 바로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나 자신이다. “나는 빚 진자입니다!” “엄청난 사랑에 빚 진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네 종류의 사람을 자신의 채권자라고 말하고 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헬, 바르바로스(barbaros)]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들은 사실 세계 모든 인류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특히 “다 내가 빚진 자라”는 표현은 어느 누구에게도 빚을 지고 있지 않는 대상이 없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어떤 경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지 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그때부터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자에게 빚 진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하셨지만 우리는 복음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빚 진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복음의 대상이 땅끝까지요 모든 족속(마28:19), 온 천하 만민(막16:15)이기 때문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눠주지 않는 사람은 빚을 갚지 않으려고 생 때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빚은 바울 사도처럼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인데 감사한 것은 사랑의 빚이기 때문에 액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빚이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빚을 질 것을 고무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빚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다른 빚은 남김없이 다 갚아야 한다.(마5:26; 눅12:59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러나 계속 적으로 질 수 밖에 없고 지면서 살아야 하는 빚이 바로 사랑의 빚이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표현이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5)는 말씀이다. 바울은 로마의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결국 복음은 모든 인종에게 필요하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복음에 대한 감격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빚 진자로 생각하게 된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의 운명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평생동안 갚을 수 없는 감격이요, 이 죄 투성이인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리셨다는 감격과 그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생명을 바쳤는가를 생각한다면 오늘도 빚 진자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 받으려고만 한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

빚 진자는 겸손할 수 밖에 없다. 빚 진자는 큰 소리 칠 수도 없다. 빚 진자가 큰 소리 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하나, 그 빚을 갚을 때이다. 그래서 복음을 나눠 주는 데는 담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이 다하도록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 진자로 그것을 갚아 가겠다는 각오로 모든 사람들을 대상해서 거저 받은 복음을 나눠주므로 되 갚는 복음증거를 나의 재산과 명예와 권력과 아름다움을 다 동원해서 감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