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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문의 공동번역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16)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미 복음이 무엇인가를 확인한바 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①선지자들로 말미암아 ②그의 아들에 관하여 ③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④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⑤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⑥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2~4)
이 단 2절 속에는 신약성경에서 나타나는 핵심적인 단어들이 나타나면서[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능력, 유대인, 헬라인, 하나님의 의, 의인] 복음의 모든 요소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복음이 무엇인가의 윤곽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은 바로 이 복음의 위력과 이 복음이 적용됨으로 나타나는 결과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왜 복음을 주셨는가 하는 이 로마서 전체의 주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의 16~17절에는 이유를 말하는 헬라어 접속사인 [gar(가ㄹ), 왜냐하면]가 문장의 첫머리에 나타나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5)고 한 앞의 내용과 복음을 설명하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서가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사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이방인이 되어 있는 모든 인류에게 주시는 구원의 교훈이라는 데서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미치는 범위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13:46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러한 신비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를 이 서신의 교훈의 부분인 9~11장에 호소하듯 설명하는 바울의 논증을 듣게 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11:25) 하고 나서 이러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탄복하는 데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오늘 이 말씀을 나누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셔서 우리 각자를 구원하신 이 복음을 자랑하고 더 많은 사람이 이 복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 의인으로 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지속하므로 영원한 영광에까지 이르는 …
Ⅰ.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우리는 앞으로 이 로마서를 계속 상고하면서 죄에 무력한 인간과 거기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 앞에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능력의 복음에 의지하는 자만이 사죄의 감격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7~8)
사실 복음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요 신령한 지혜이다. 이것은 인간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세상적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1.오늘 우리 각자도 복음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 바울의 입장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과 또 다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3~24에서 오늘 이 부분과 비슷한 고백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바울은 이 로마서를 진행하면서 이 사실을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라고 선언한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체로 계실 때 이미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신바 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눅12:8~9)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이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영광의 복음을 자랑하지 못한다면 주님께서도 영원한 세계 속에서 그런 사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디모데후서를 통해서는 좀더 적극적이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감수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를 주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약속을 조금 뒤에서 지적한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다른 면은 복음을 받은 자로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7~29)
오늘 나의 나 됨이 복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나를 나 되게 하신 그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도 기쁘게 감당하게 될 것이다.
2.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죄에 있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죄진 인간은 죽었다가 깨어난다고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굴레를 뚫고 나올 수 없다. 그러한 한계의 고백이 바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사람의 힘을 넘어서는 능력을 통해서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신 것이고, 거기에 대한 장치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비로소 절망의 구름이 걷히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백하게 되는 것이고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이런 입장에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이 되어야만 한다.
3.이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만 능력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적인 능력으로 이 복음을 인류에게 주시고 모든 인류가 그것을 누리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 편에서 이 무조건이 각 사람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누리게 하는 도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이 간수가 문을 열어 놓고 “이 감옥에 있는 모두에게는 자유를 허락하였다.” 라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그 감옥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받는 그릇이 “믿음”이라고 하는데도 그 믿음을 공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인간측의 통로 즉, 도구이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사람측에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신 믿음이라는 도구로 받아 순종할 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러한 사람에게 역사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4.이 능력이 미치는 범위는 무한하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사실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걸려 넘어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들만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메시야가 온다고 해도 자신들만을 위해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복음 속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독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입장에서 주님의 교회는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거듭난 사람이면 꼭 같은 권리를 갖게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
이 인류를 2대별 한다면 유대인 외에는 다 헬라인 일 것이기 때문에 이 두 명칭은 모든 인류를 지칭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한 유대인 즉,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먼저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는 종교(宗敎)적인 사람들과 이성(理性)적인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입장에서도 인류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호흡하는 사람 중 누구도 하나님의 복음의 초청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다. 다만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롬10:11)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은혜의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순종하는 사람이면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14)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하신 것처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의 서두에도 “내가” 강조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바울 사도나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직 나하고는 관련이 없다. 오늘 나도 같은 고백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종배에게로다!” 각자 이 고백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
Ⅱ.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실 복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처절한 희생이셨고, 약속의 민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불신의 사람들에게도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불신의 눈으로 보면 평생을 도(道)만 닦다가 죽어도 확신이 없는데 믿고 순종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사실이 꿈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일을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는 고백과 같다.
복음은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요, 조금도 하자가 없는 완벽한 구원의 도구이다.
1.복음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나타났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 까지를 말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마귀 사탄이 보기에는 실패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바로 마귀 사탄을 영원히 패배 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셨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비록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지만 그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밤낮 참소하는 마귀의 사형식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아담이 범죄 한 직후에 이를 선포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오늘도 마귀 사탄이 우리를 하나님께 참소할지라도 이미 그 참소는 효력을 잃은 이유는 “그래, 그 죄 때문에, 그의 죄의 대가를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치루었다!” 하나님은 답변하시고 계신다. 할렐루야!
십자가는 모든 인류의 죄를 향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 부으신 공의의 현장이요, 죄로 인하여 일생을 절망으로 살고, 영원한 절망으로 나아가는 이 역사 속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절정이셨다. 이러한 공의와 사랑의 역사가 바로 이 복음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2.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그러나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앞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한 것처럼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유효하게 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나님의 말씀을 창세기 1:1절부터 기록된 대로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지금도 우리 삶 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비극은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역사로 이해될 뿐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은 감사의 이유가 될 뿐이요, 사랑의 이유가 되고, 섬김의 이유가 되고, 생명을 바칠 이유가 될 것이다.
천국을 비유하는 (마13:12)에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였고 마지막 천국에서 결산을 비유하는 (마25:28~29)에서도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같은 말씀을 특이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눅8:18)
그럼으로 우리의 모든 일은 믿음으로 시작해야만(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하고 계속적으로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곧 복음에 사는 것이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나타”나게 될 것이다.
3.믿음의 사람만이 의롭게 살 수 있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갈대아 군데가 쳐들어 올 것이라는 상황 속에서 주어진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믿음의 가치는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을 앞두고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시기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모두가 불신하는 가운데 믿음이 더 빛나고 가치를 나타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에서 모두가 죄악에 허덕여도 주님을 믿는 사람들만은 의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의롭게 살 수 있다는 고백이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오늘 말씀을 맺고 싶다. 각각 자신에게 묻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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