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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됨의 자긍심을 갖은 유대인이건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오직 캄캄한 절망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인류에게 오늘 본문부터는 서서히 광명이 밝아오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나타남을 보게 된다.
사실 내용대로 강론을 한다면 이 3장의 마지막 까지를 한꺼번에 다루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내용의 중요성과 분량 때문에 다음 시간과 나눠서 상고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도 계속 거론되는 낱말은 [율법, 헬, 노모스(nomos)]이다. 거룩한 문서로 주어진 유대인들의 모세 오경을 비롯한 구약성경 이든지 비록 하나님의 성문서인 성경이나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양심에 주셨다고 하는 데는 누구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특히 본문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했는데 여기에 쓰여진 [육체, 肉體] 희랍어로 사륵스(sarks)]는 범죄 하여 영을 소멸해 버린 모습으로 영혼과 반대되는 (동물의) ‘고기’, ‘육체’로서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낱말이다.
인간 자체 속에는 조금의 기대나 소망의 여지가 남아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인간 본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 죄의 고뇌에서 자유 하고자 발버둥쳐 보지만 마치 고삐에 매인 짐승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것처럼 죄의 깊은 뿌리 즉, 마귀의 권세를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만 것이 본래는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던 인간이다.
인간의 한계는 이렇지만 이런 절망과 좌절의 상태로 버려 두실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주님은 창세전부터 비록 범죄 한 사람들이지만 구원의 길을 예배 하신 것이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과도 관련이 되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는 놀라운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확신과 감사로서 오늘도 절대 절망의 인간상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하신 구원을 나누면서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 …
Ⅰ.율법으로는 다만 죄를 깨달을 뿐이다.(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앞에서 살폈던 대로 동물이 아닌 사람인 이상은 이미 율법 아래 있다고 바야 한다. 그것이 명문화 된 글로 기록한 율법이든지 일반적으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인간 양심의 본성이든지 모두 창조주의 바람이지만 한번 죄 아래 있게 된 인생은 어떤 방법으로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바울은 이미 앞에서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2:12) 거나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3:9)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므로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라는 말씀에서 자유 할 이미 인생은 한 사람도 없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즉, 율법이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결코 온전할 수 없는 죄인됨을 정죄하도록 주어졌다. 행위를 강조한다는 야고보 조차도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고 지적함으로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20) 라는 오늘 바울의 주장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다시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고 율법의 역할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19절을 함축적으로 구성하면 “율법이 말하는 바는 …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는 것이다. 율법 자체가 정죄하기 위한 도구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을 범죄에 대해 변명치 못하도록 하고 예외 없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0) 의의 기준을 판단하게 하는 법이지만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의 구조에 매어있는 인간이고 또 아무리 지키려고 발버둥쳐도 결국 깨닫는 것은 사람은 의로울 수 없다는 것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없는 것이며 이러한 한계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바로 율법을 받고부터라는 말씀이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9, 11)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신자보다 더 책망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은 누가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12:47~48f)고 경계 하셨다.
이러한 죄와 자신에 대하여 절망할수록 하나님의 긍휼은 더욱 절실하고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 앞에 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올 수 밖에 없도록 주신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주신 의도였다. 이렇게 사람의 노력으로서는 절망적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해결책을 나타내시는 내용이 다음에 이어진다.
Ⅱ.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의(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율법, 지키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낙담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 자신으로는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율법과는 전혀 다른 해결책을 하나님께서 제시하게 되시는데 율법과 전혀 다른 방법이지만 이 율법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라는 소망이다.
가장 구체적인 예가 에레미야를 통한 약속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 …”(렘31:31~32f) 라고 증거하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구원의 새 언약을 옛 언약인 율법의 연장 선상으로 생각하고 여전히 율법적인 요소와 뒤섞어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언약은 분명히 애급에서 빠져 나와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새운 언약과는 전혀 다른 새 언약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시기를 “…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b) 율법 속에 사람들이 스스로 준비했던 제물들은 자신의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준비하신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마련하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다음 주에 연이어 생각하겠지만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5~26)
더 자세한 것을 계속 나누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움을 스스로 나타내시고 인간의 절망적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이다. 이것은 비록 율법과는 다르지만 그 율법의 증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의 차별을 없애고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동일한 방법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하도록 하신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22)
율법 시대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차이를 두는 것 같이 보이셨지만 사실은 이 율법 속에 온 인류를 구원하실 차별 없는 생명의 법을 주시기 위한 더 깊은 계획과 약속을 담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차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분명히 알게 하신다.
앞에서 이미 말씀하셨던 이 로마서의 주제라고 했던 [하나님의 의]는 점점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이 역사 속의 모든 인류가 이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다.
Ⅲ.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계속해서 이야기 해 온 것은 율법 아래 죄 아래 한 사람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는 안타까운 논리를 지적해 왔다. 그것이 종교인이든지 도덕적이든지 이성적이든지 관계 없음도 지적했다. 바로 앞에서도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 하였고 이런 절대 절망의 상황은 더 이상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바꿀 수가(반전시킬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결정적인 지적이 바로 이 구절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아담이라는 인간의 대표자로 인하여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었던 축복의 동산에 죄가 들어오고 이 죄의 영향아래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같은 과정인 하나님의 영광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비운을 겪게 되엇다.
인류의 죄의 통로가 된 아담을 이야기 하면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지적하고 여기에 대한 반전도 한 사람으로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5:15)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오늘 내가 형벌 받는 것은 나의 죄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아담이라는 사람으로 죄가 들어오고 나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나에게서 아담의 죄를 묻고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는 나의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구약 율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신명기에서도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하였고 아마샤 왕도 부왕을 죽인 원수들을 죽이면서도 이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대하25:4)
죄는 그 성격상 자신의 죄를 다른 대상에게 전가 하려는 또 다른 사악함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밤낮 참소하는 마귀의 속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각 사람의 죄를 당사자에게 찾으시는 분이시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 내가 죽고 형벌을 당하는 것은 내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의 에스겔 18장과 33장에서도 토론되었던 말씀이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18:2~4)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18:20)
비록 자녀가 부모의 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서 부모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사실이다.
우리가 읽은 마지막 절은 비록 범죄하고 절망하는 인생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과 사랑의 샘이 솟아남을 증거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의 노예로 평생을 살다가 저주와 심판에 바쳐질 정해진 운명에 처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가련한 인생들을 위하여 범죄한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선물을 주신 것이다.
여기는 두 가지의 은혜가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인류의 비극을 창세전부터 내다 보신 하나님은 옥중 서신에 자주 나타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죄인들을 구원으로 불러 들이는 장소로 삼으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타 종교에서 그리스도교를 배타적이라고 지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불러 들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여기 ‘은혜로’ ‘값없이’는 결국 같은 뜻이고 다른 표현으로는 [선물]을 말한다. 어떤 자격이나 대가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공로나 품삯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측의 어떤 조건도 요구치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헬라인 뿐만 아니라 뙈놈이나 왜놈이나 인류나 나라의 조건에 상관없이 부르시는 것이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모든 율법은 구약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선언을 하여 죄인 됨을 깨달은 사람들로 하여 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오게 한다. 이 십자가야 말로 온 인류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이 마련하신 은혜의 장소이다.
아담 이후, 오늘 나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죽고 죽을 절망적인 운명을 가지고 살지만 이 비극에 어울리지 않는 하나님의 엄청나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하신 은혜의 선물 구원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나 어떤 사람들에게 억지가 아니라 선물로 주신다.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마련된 엄청난 선물들을 누릴 것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이제 영생과 진리에 관한한 다른 기대는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1장의 주제로 되돌아 간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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