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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6:17~23 2007-05-27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새 생명을 받은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과의 약속이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죽은 과거의 삶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님의 권면과 함께 우리의 삶이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현실적인 우리의 삶의 자세를 살핀바 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의 삶이 경건해야만 하는 이유와 의와 죄의 삶의 결과를 보는 것으로 이 6장의 말씀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Ⅰ.신분의 변화가 분명하다.(17~19)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우리 자신의 운명의 변화와 신분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죄로 인한 저주와 절망의 자리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죽이신 대신 우리를 죄의 덫에서 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감격이 된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람이 쳐둔 덫에 고라니나 노루가 발을 치인 체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괘성을 지르는 모습이 바로 죄의 사슬에 묶여서 처량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버둥거리는 죄의 종 노릇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사실 영적으로 볼 때는 죄에 매인 사람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짐승은 그 생명이 그치면 그 고통은 더 이상 없지만 죄인은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비극적인 모습으로 가야 하는 영원의 존재라는 데 더 심각성이 있다. 그러한 비극적인 운명에서 덫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상한 곳까지 완벽하게 회복 시키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제물로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의 역사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골백번을 외쳐도 목이 터지도록 외쳐도 이 감격을 다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사죄에 대한 감격이다.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너무 감사한데 영원한 절망의 저주에서 건지신 사랑은 경험한 사람만의 감격이요 기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기 전의 우리 과거의 상태는 누구나 예외 없이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었다. 아담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죄는 이 역사 속에 왔다간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지금도 이 저주의 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그늘에 피하지 않는 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입을 벌린 덫과 같은 저주의 죄의 사슬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인생의 행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비록 좁고 협착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생의 고난을 의뢰하기만 하면 저주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생명의 길을 역시 모든 인류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이것은 비단 육신의 일뿐 아니라 영적인 것에서도 그렇다.

그런 까닭에 바울 사도는 방법을 제시하기를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시 딤후1:13에서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라고 당부하고 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고 당부하고 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어느 사람의 어록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교리도 아닌 말씀이 인격을 입고 이 당에 오신 우리의 영원한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만 죄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 우리는 예외 없이 한 곳에는 반드시 종 노릇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왕에 종 노릇할 인생이라면 의의 종살이 하는 것보다 복된 것은 없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약속하셨다.

바울은 일반적인 죄성을 가진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예를 사용하고 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19) 하였고 이미 앞에서도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당부한바 있는데, 여기의 또 다른 차이는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와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라는 비교의 대칭(對稱)이다.

바로 뒤에서 묻는 것처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21)

돌아보면 지긋지긋한 죄의 종 노릇, 아무리 충성해도 대가는 저주와 슬픔 분이요 만족이란 있을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을 이런 입장에서는 회고(回顧)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 평안치 못하면 자녀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오늘의 삐뚤어진 가정도 견디기 힘드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반대로 악과 어둠의 종 노릇 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는 죄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거기에서 빠져 나온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밥티스마로 말미암아 죄의 사람이 죽고 거듭난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죄악의 어두움이 아무리 황홀하고 호화로웠을 지라도 의의 빛에 나와서 보면 그저 몸서리 쳐지는 것 뿐이다.

이제는 새로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이것은 의를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결과요,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받게 되는 상급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거룩함에 이르라!”는 당부이다. 여기에는 이제 나의 노력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나 자신만의 노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죄의 사람이 죽고 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 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의의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을 전재로 하는데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하였다.

“이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성취된 것이 아닌 미래의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고 순종하여 밥티스마를 받으므로 거듭나서 완전히 호적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이제부터는 의로 인정하시는 주님의 면전에서 그 주님의 성령의 능력을 좇아 새롭고 거룩한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에게 전해 준 교훈 말씀을 순종함으로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우리의 죄아된 마음이 아니라 거룩하신 성령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는 신령한 투쟁을 성령과 더불어 감당하는…



Ⅱ.죄와 하나님의 종의 열매의 차이(20~23)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의 과거 소속되었었거나, 지금 소속된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을 증거하고 있다. 의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죄를 짓고 살 때의 얻은 결과가 과연 바람직한 것들이었는가?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거룩한 종이 된 현재와 미래의 결과는 어떤 것으로 결실하게 될 것인가의 예상치를 제시하면서 과연 어느편에 속하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영원을 결과하게 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조금 이해하기 쉬운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면 20절의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은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습니다.”[공동] 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는 뜻을 조금 쉽게 소화할 수 있다.

죄에 지체를 바치면 의의 하나님께는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의의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면 죄 즉,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죄에 종 노릇할 때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모든 인생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지만 의와 죄의 세력은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죄의 종으로 이 짧은 육신의 삶을 살아 버린다면 영원은 영구히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남지만 죄를 짓는 것이 더 쉬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영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막연히 생각하면서 진리의 의의를 부정해 버리지만 의와 빛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마침내는 어두움의 세력을 영원히 무저갱에 가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인데 죄에 잡힌 사람들은 이것 역시 깨닫지도 못하는 비극이다.

결국 어두움은 빛이 비치면 물러 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세력이고 죄로 사람을 이끄는 어두움의 세력을 잡은 존재들도 본래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있던 타락한 천사들이고 의의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함없으신 왕이시라는 사실이다.

이런 입장에서 사람은 절대로 두 대상을 섬기면서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수께서도 마6:24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 하신 것처럼 본문의 의미와 연결할 때도 진리이신 말씀이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21) 죄의 열매를 접하게 되는 반응은 한결같이 부끄러움만 남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으로 가지만, 의의 종 노릇한 결과는 되돌아 봐도 영광스럽고 자랑할 수 있는 복된 것들임을 볼 때도 차이는 크다.

20절과 21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보면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라고 붙여 말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렘12:13)고 증거하고 있다.

결국 의의 하나님을 노여우시게 하고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수치와 진노와 죽음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의 대상을 바꾸어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결과는 즉, 의의 종으로 자신을 드렸을 때의 결과는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22)는 소망과 행복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 ‘그러나’는 우리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의 죄의 종 되었던 곳에서 자유 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를 묘사하면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즉,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면서 이러한 거룩한 결실의 끝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의의 생명,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하늘에 속한 삶을 누리게 됨을 약속하고 있다.

마지막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 했는데 이 6장 전체의 결론이자. 16절인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는 말씀의 확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 이 말씀은 전도시에 많이 사용되는 말씀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인류 역사의 함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인류의 비극의 역사와 이 비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개입으로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친히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 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죄의 결과인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의 첫 열매가 되신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이 6장 서두에서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사심에 일체되는 순종을 통해서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것은 이 인류의 시작인 에덴에서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까지의 어두움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는 말씀은 절대절망의 인류에게 유일한 한 줄기의 빛으로 창조주의 사랑의 선물이요, 희생이다.

이를 위해서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과 아브라함의 선택과 율법은 주어진 것이다.

특히 제목대로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해도 뜻이 통하겠지만 그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라는 중심은 모든 인류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음성이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백의 대상이고 [예수] 라는 이름은 하나님께 소속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죽을 제물로서의 주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런 놀라운 선물이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기 위해서 하나님은 각자의 믿음의 고백을 요구하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경계하기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1~2)

하나님의 엄청난 선물은 주어졌지만 그 선물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받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귀한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조건은 아무 차이가 없는데 불신의 사람들은 그것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불신하는 차이 뿐이다.

분명히 이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는 말씀은 이 약속에 중심이자 인류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 오는 자들에게만 유효한 약속이 될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오는 방법은 이 로마서의 앞부분에서도 이미 여러 번 언급된 것처럼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밥티스마를 받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은혜를 맛본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7~18)는 고백이 감격으로 드려지게 되고 다윗과 바울처럼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7~8)는 감격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이 논리적으로는 너무나 뻔함에도 이를 사실적인 자신의 역사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감이 나지 않고 감사가 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도 않으면서 불신의 사람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인 심판에 대해서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본다.

아무리 두려워 보이는 부모도 당사자의 자녀들에게는 오히려 인자함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은 알고 보면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며 사랑이시고 기쁨의 이유가 되시며 그의 자녀 됨에 충분한 감격을 가질 수 있는 분이시다. 믿습니까?

오늘 바울 사도의 권면을 우리 각자의 말씀으로 받자.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그 결과는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과거의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는 죄의 결과로 오는 수치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온전히 내려 놓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거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는 복된 주님의 언약을 약속된 대로 풍성히 누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