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롬 8:9~17 2007-07-01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  
지난 시간부터 우리는 靈의 사람과 肉의 사람의 모습을 상고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성령의 계시는 전으로 살아야 할 우리 심령의 성전이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육신은 영적으로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오늘 말씀은 경계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거나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라는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이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고 이끌리지 않는다면 엄밀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생각하게 되면서, 과연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심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신앙의 성패가 좌우되는 이 성령이 우리의 삶에 오시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순서가 될 것이다.

또 많은 신앙의 가르침 속에서 이부분 만큼 혼란이 많은 부분도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약속이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감정만으로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고 사실로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성령의 임재로 착각하는 일들이 많은 것을 볼 때에 안타깝다.

분명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는 귀중한 교훈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 조차도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귀중한 진리를 부정할 수 없다. 성령께서 우리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심을 깨닫게 된다.

성령께서는 분명 인격이시고 죄인을 감동시켜서 복음을 듣게 하시기는 하시지만 죄인과는 함께 거하실 수 없으시다. 성령의 본문에 나타나는 대로 하나님의 영이시요, 그리스도의 靈이시며,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요15:26)

성령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대부분 요13~16장에 나타나고 있고 특히 이 교훈들의 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후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시지 않으시면 자신이 뭐라고 증거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요, 육신의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성령께서 오시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반드시 계시도록 해야만 하는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성령을 받게 되는가? 하나님은 기분대로 성령을 주시고 거둬가시는가?(구약에서는 어찌보면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나 특별한 상황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이 임하게 하셨다. 출애굽기35:31 성막을 만들게 하시려고 [브사렐]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출31:3)

민수기 24:2 이방의 선지자 [발람]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거하는 것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삼상19:20~23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 사울이 세 번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때까지 구약의 성령은 다만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임하였고 그 일이 완료되었을 때는 떠나셨던 일들을 더러 볼 수 있다. 적어도 새 언약의 법 속에서는 약속을 성취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임하심을 본다.

그러나 만약에 자신의 감정에 북 받힌 것을 성령의 감동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다. 이 시대에 이런 사람들을 더러 보는데 대단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복음이 완성된 후 성령에 대한 성경의 가장 분명한 임재의 선언은 침례를 통해서 즉 죄 사함의 결과로 성령께서는 사죄 받은 심령에 오시게 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신 모습은 우리 모든 세례를 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습의 표상이셨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죄의 세례가 필요치 않았고 세례요한은 세례 주는 것을 거절했지만 주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 하셨고, 그 결과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위에 내려 오심을 나타냄으로 세례로 죄 씻음을 받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표상이 되었고, 주님의 약속과 예언대로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들 중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약속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죄는 물속에 장사 지내지면서 죄 씻음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들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 바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입을 통해 선언하신 성령을 받는 가장 구체적이고 명료한 약속이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게 하셨다”(엡1:13~14a) 거나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고후1:22)

세례는 믿음의 가장 사실적인 표현이며 순종이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5:32)

어떤 사람들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는 말씀을 통해서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주신다고 도 할 것이지만, 이 누가복음의 약속은 대속의 십자가 이전의 약속으로 구약의 사역을 위해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성령이라고 확신할 수 없고,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이 오심을 소위 말하는 ‘다락방 교훈’이라고 하는 요13~16장까지에서 예수께서 가셔야 오실 것이라는[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약속과 비교해도 아직도 옛 언약 속에 주어진 말씀이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뒷바침하는 기록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적어도 교회가 이땅에 탄생한 훨씬 후의 사건이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19:1~6)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8:14~17)

이 경우도 고넬료 가정과 같은 맥락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고치 시려는 당시에 개처럼 취급 당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깊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그러한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을 부수 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 신앙적 논리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이 한 곳 있는데 바로 고넬료의 가정의 사건이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행10:44~48)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성령 받음의 가장 분명하고 구체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즉 바울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결국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성령을 받게 했지만 이 믿음에는 세례를 받는 일이 포함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가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하는 것으로 이 말씀을 풀어가 보고자 한다.



Ⅰ.그리스도인이란?(9~11)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주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인류를 위한 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이시는 가운데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라고 기도 하심으로 장차 성령으로 오셔서 주님의 백성들을 온전케 하실 것을 증거하셨다.

여기 시작이 “만일”이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면 비록 육신 안에 머물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미 영의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말씀처럼 사람은 결국 육신과의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데 어떻데 그 육신을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육신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인이냐 아니냐?는 판가름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말씀이다. 9절하반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했는데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는 신비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몸은 이미 죽은 몸이라고 선언을 한다. 다시 11절에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이라고 하여 다시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다. [행5: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마지막 부분은 성령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라야 죽을 몸도 살리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스도인의 표는 여러 가지가 잇겠지만 가장 분명하고 중요한 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약속이다. 결국 죄의 사람이 영원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힘입어야 함을 배우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의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고 행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



Ⅱ.육신을 따라 살면…?(12~13)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는 이미 8장 첫부분에서도 이러한 신앙적 논리를 생각했던 것으로 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은 더 이상 육신대로 살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특히 여기에서 [빚, ojfeilevth"]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와 같이 [죄]와 같은 말이라는 데서 더욱 그렇다.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산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육신의 소욕을 이길 것이기 때문에 몸의 행실 즉, 죄의 욕구를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영적인 사람으로 살 거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당부하기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골3:5~8)고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 역시 성령이 지배하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Ⅲ.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란?(14~17)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두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조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인치신 자들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즉, 성령의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를 여기에서 가르쳐 주고 있음을 본다.

1.두려움이 없는 삶을 산다.(15f) 2.하나님을 가까이 대한다.(15b) 3.반드시 천국을 상속 받는다.(17f) .4고난도 기뻐한다.(17b)

바울은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고 말하였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6)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종과 같이 하나님을 단순히 두려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하였다. 우리 말로 쉽게 표현하면 “아빠”이다.

무엇 보다도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만이 믿음으로 오는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것도 소극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게 되어 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이미 앞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롬5:3) 하였고 바로 다음 절에서도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감격할 뿐만 아니라 말년에 로마의 감옥에 고난 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아닌 육신의 사람으로는 절대로 믿음으로 인해 오는 고난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 성령의 자녀는 주님 때문에 오는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소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인가 아닌가의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