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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8:26~30 2007-07-15
우리가 알거니와 …  
우리는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에 살고 육신의 제한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현상을 보지 않고 세상너머의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거니와”는 우리 영적인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백이며, 우리의 운명과 이 역사의 미래와 결국이 어떻게 됨을 내다보는 사람들의 고백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알거니와”는 육신의 입술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의 소리요 천상의 고백이다. 이 세상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이 고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것이요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또한 “우리가 알거니와”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선언이다.

사실 우리 각자는 믿음조차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 우리 자신의 결심과 감정만으로는 절대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온전치 못함을 인하여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은 믿음 자체를 주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게 되는 약속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하고 절망하여 낙담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주님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영광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이끄시는 것이 확실한 주님의 약속이고 오늘 이 약속에 대한 분명한 약속 두어가지를 역시 확인시켜 주고 계신다.

결론부터 정리 한다면 이러한 약속들이 성령의 중보의 기도와 어떤 상황이든지 결과적으로 선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아심 속에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끄심을 읽게 된다. 결국 “우리가 알거니와”는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 말씀의 중심이고 확신한 언약의 사실들에 대한 고백이다.



Ⅰ.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비록 불편하고 힘겨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돕는 이들이 많다. 우리 신앙의 동료들은 물론이지만 34에서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씀 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가 계시지만 여전히 보혜사로서도 함께 하심을 확신하게 된다.

1.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는 이미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 그의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을 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는 언약을 확신하고 있다.

세상은 강자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됨으로 연약한 자들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고있는 그의 백성들이 연약함을 아시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그러나 이 연약함은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게 하려는 연약함이다.

아무 약점을 가지자들 편에 서려고 하지 않음에도 우리의 성령께서는 연약함을 오히려 도우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거절할 정도로 강하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이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고 말한다.

2.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비신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땅히 드릴 기도가 안된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안타까움을 누구보다도 성령께서 안쓰러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막히고 중치가 막히듯 답답할 때도 우리의 강력한 기도의 후원자가 되신다.

그럼으로 안심하십시오. 기도가 안된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탄식은 우리의 안타까움보다 더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보혜사이시다.

3.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 여러분의 신앙의 교사라고 하는 이종배가 과연 성령보다 여러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더 잘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어림도 없다. 이렇게 성령의 중보기도 덕택에 우리가 시험 중에서도 질병 중에서도 아직 신앙을 부지할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을 너무나 잘 아시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므로 이런 기도를 바로 교통 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구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속 받은 것이므로 참으로 감사할 은혜의 제목이다.



Ⅱ.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런 성령의 기도의 중보를 인해서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여기 안다고 하는 것은 순간의 앎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깊이 아는 부부관계 속에서 쓰여지는 낱말이다. 그러나 바로 앞의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26) 하고는 대조적이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26) 성령의 중보 기도 조차도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의지함으로 우리 인생의 결과는 견고한 하나님의 불변하는 언약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범주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시 경계로 가져야만 한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것은 선을 이루는 첫째 조건인데 온전히 사랑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30) 라는 사랑을 의미하며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8:3)하였고,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 실천되는 사랑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고 요한 사도는 증거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고 이와는 반대되는 모습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라고 역시 사랑의 사도는 못 밖는다.

2.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 말씀은 운명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심을 입은 자들로 바로 연결되어지는 29~30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지고 있고 귀중한 구원의 예정인 교회를 통한 구원 예정을 선포하는 바울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라고 당부하고 나서 다시 4절에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나님의 구원 의 뜻과 같은 소망의 목표를 함께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입장이나 욕심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그 품은 뜻이 자신의 정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된다는 말씀이다.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 부분이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초월하는 말씀이다. 때로는 우리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이것은 아닌데 하는 고통이나 죽음을 포함한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총괄해서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고 견디기 힘드는 것들조차도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을 사람으로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요셉]

그렇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는 것이다. 때로 우리의 삶은 이해하기 보다는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더욱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도 한번쯤은 하늘을 향하여 묻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나중에 “그러면 그렇지”를 외치게 될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사람의 눈에 좋은 것이든 궂은 것이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일 뿐임을 의심치 말고 힘겨울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



Ⅲ.미리 정하신 하나님.(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부분은 현재의 삶 속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확신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도하시는 구원 계획의 실행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여기에 기록되고 이행되는 순서와 과제들 중 어떤 것도 역시 빼거나 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지나치는 것이다.(요이1:9)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4:6) 시는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29~30절의 이 말씀은 인간 구원 계획과 시행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로 받아 들이게 된다. 다섯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데 ①미리 아신 자들, ②미리 정하셨으니, ③부르시고, ④의롭다 하시고, ⑤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것인데 보다 포괄적인 인류 구원의 계획과 시행은 에베소서 1:3~14에 나타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미리 정하심”(행4:28; 본문29, 30; 고전 2:7)이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예정”(엡1:5, 11)이라는 낱말과 같은 뜻이다. 에베소서의 전체적인 예정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교회예정과 그 교회를 통한 인류 구원을 선언하고 있다.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강조되는 것은 창조 전에 이루어진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이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목적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구원된 인간만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찬양을 드릴 수 있다.

이 모든 계획의 출발은 바로 “미리 아심”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다섯 가지 항목 중에서 이 첫번째 부분만 확실히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나머지 네 항목은 자연적으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또 이 구원 예정에서 이 첫 부분을 제해 버리면 공의도 사랑도 없는 하나님은 대단히 독선적이고 몰인정하며 오로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파렴치한 분으로 몰아 붙이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뿐만 아니라 창세로부터 역사가 닫힐 때까지의 이 역사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미 모두 아시며 현재로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살 수 없다.

구체적으로 “미리 아신” 것은 우리의 구원됨과 그렇지 못함 과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오게 된다. 사람은 아무리 해도 이 역사 속에 몇 명의 사람이 오고 갔는가를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미 창세 후로부터 지금까지 이 역사 속에 오고 간 모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완벽하게 아시고, 앞으로도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의 아직 탄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역시 모두 하신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역사 안의 모든 나고 날 사람들의 삶의 모두를 현재적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교회당 안에서 누가 끝까지 구원을 지켜가고 잃을 것인가도 사람은 모르지만 주님은 알고 계시며, 아직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서면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와 구원 받을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성격과 어떻게 삶을 선택할 것까지도 모두모두 꿰뚫어 보고 계신다. 우리의 나타나는 표정뿐만 아니라 내면의 속마음까지도 이미 읽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의 보혈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도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인체 하는 사람과 진실된 그리스도인인가도 사람은 모르지만 알고 계신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 주님을 깊이 경외하며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대단한 행복의 이유가 되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이중적인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위선자들이었던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또한 사람들은 오해를 할지라도 진실을 알아 주시는 하나님께 진실한 사람들은 감사하게 된다. 억울할 때도 “하나님은 아신다!”로 충분히 분한감정이 소화되고 오히려 감격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고백이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우리의 신앙의 행위가 중요하다. 또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나를 더 중요하게 보신 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나를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미래의 과거는 만들어지기 때문에 흘러간 과거보다 현재가 더욱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기 때문에 미리 정하시고 그 정하신 사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부르시고, 예수의 피로 씻기셔서 의롭다 하시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을 입혀 주신 것인데 여기에서도 이유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는 것이다. 미천한 우리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게 하시려고 부르시고 자신의 피로 씻기시고 인치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성숙의 목표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라고 바울은 고백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든지 또는 각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겠지만, 이미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서 영광과 위엄을 입고 있다.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은 하나님과 성령과 더불어 “우리가 알거니와”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적절한 아름다운 말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순종할 것을 이미 아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정하시고 복으로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셔서 의롭다 하시고, 미래에 영원한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 속에서 영화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도 알고 우리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안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라는 고백이 하나님 나라의 자녀 됨의 영광과 위엄을 지켜가는 데서도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