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난 시간에부터 견고한 구원의 확신을 계속 상고하고 있는데 ~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데 -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비시고,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나 무조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 이런 구원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셨는데 거기에도 순서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①미리 아신 자들, ②미리 정하셨으니, ③부르시고, ④의롭다 하시고, ⑤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말씀들을 생각했었다.
오늘은 거기에 붙여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의 구원의 경고성을 확신하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증거하면 이 우주 사이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물론이고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랑의 견고성을 논증하고 있다.
Ⅰ.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여기의 첫 부분의 말씀인 “그런즉”은 이 땅에서 주님의 백성들을 철저하게 보호 하시기 위하여 ‘성령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어떤 악조건도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에’ 라는 확신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는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공동) 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할 필요도 없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 가에 따라 싸움에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기고야 마는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싸움은 아무리 유리해 보이는 경우도 결과에 있어서는 전혀 반대의 경우가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예상을 뒤엎는 경우가 더러 있고, 표면적으로는 이긴 것 같은데 속으로는 패배의 가슴 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런 입장에서 각 나라들은 실리를 따져서 줄서기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창조주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신 분이 우리를 위하시면 싸움은 ‘해보나마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위하시는 대상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바울이 권고하는 것처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2~13)는 명령에 순종이 되어야 이기는 싸움이다.
1.우리를 위하여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 하나님만 확실히 우리 편이 되시면 싸움은 이미 결판이 난 싸움이다. 역사 속에 하나님을 대적해서 이긴 나라가 없고 용사가 없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러한 확신을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118:6) 그러므로 우리 승리의 관건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보다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의 백성들을 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보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32) 전쟁의 또 다른 승패는 군수물자의 확보이다. 전쟁을 하는 군대는 군수물자 보급로는 잘 확보해야 만이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이길 수 있는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의 값으로 내어주신 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죄와 싸우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했고 다시 34:10에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다. 다윗이 억울하게 사울로부터 도피 중에도 늘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치가 종이 되었든 타국이 되었던지, 포로가 되었던지 모든 좋은 것에 넉넉함을 누릴 수 있었다.
언제나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붙어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영적 전쟁에 부족함이 없는 영육의 공급을 받았던 것을 성경에서 수없이 접하게 된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이제 주시는 것은 선물이요 덤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32) 다만 우리의 관건은 하나님 편에 견고히 서는 것이다. 이종배 편에 설 필요가 없다. 하나님 편에만 견고히 선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반드시 승리하는 전쟁을 치룰 수가 있다.
Ⅱ.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세상에서는 아무리 의로운 판사도 잘못 판결하여 사형을 시켜놓고 무죄가 밝혀지기도 하는 것을 민주 국가들에서도 더러 본다. 그런 판단 때문에 돈만 있으면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불의한 자가 때로는 의로운 자를 이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판사들이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시므로 주님의 판단만이 의롭다.
1.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송사할 수 없다.(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한다.(계12:10b-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정죄 받지 않는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왜냐하면 만왕의 왕이요 공의의 재판장이신 우리 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 선언은 우리의 상대적인 의(義)와 선(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①미리 아신 자들, ②미리 정하셨으니, ③부르시고, ④의롭다 하시고, ⑤영화롭게 하신] 독생자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2.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씻음 받은 하늘의 백성들을 끝까지 책임 지신다.
사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시고,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을 본다. 지난 시간에 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든든한 중보 기도자들을 모시고 계시다고 하는 부분을 들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또 본문에서처럼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모든 교우들 간에 중보의 기도를 나누기 때문에 든든한 기도의 격려를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 바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정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감당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참소하는 마귀를 향하여 “아버지 제가 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렸습니다!” 라고 간구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참소하던 마귀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사야를 통하여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사50:8) 라는 확신을 주신바 있다. 앞에서도 이미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는 사실을 나눈바 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해 주시는 까닭에 마귀의 참소가 오히려 수치를 당할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당히 보증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면모를 들어내는 삶을 사시기를 …
Ⅲ.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러한 이유에서 이제는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끝까지 견고히 지키심의 약속을 확인하게 되는 부분이 이 영으로 지배되는 사람들의 삶의 확신과 결론이다.
1.어떤 핍박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35~36)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44:22)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7~9) 라고 고백한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받는 여러 가지 세상에서의 핍박과 그로 인한 환란을 거론하고 있다.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표준새) 우리는 이미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17)는 말씀을 들은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오는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이 말씀은 에디오피아 내시가 마차에서 읽다가 빌립을 청하게 된 이사야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말씀과 비슷하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지로 끌려가는 양 같은 취급을 받으셨듯이 이제는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20)고 말씀 하신바 있다.
믿음으로 인해서 오는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지만 진정한 복음의 순종자가 아닌 사람은 여기서도 판가름이 나게 될 것이다.
2.오히려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어
던 경우 이기긴 했는데 자신이 기진맥진해 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순종하는 것으로 오는 어려움은 겨우겨우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고도 힘이 남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이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대상에게도 승리를 확신 할 수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하여 어떤 고난도 하늘의 백성은 넉넉히 이기게 된다. 할렐루야! 세상의 말처럼 ‘혼났다’ 보다는 신나게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3.이 우주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그 출처를 추적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3:21~23) 바울은 고백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늘의 확신과 분명한 소망을 가진 사람의 고백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고백은 자신의 운명을 건 고백이다. 죽고 사는 문제이든 영적인 세력이건 과거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 공포에 얽매이지 않고 음부의 아뷔소스이든 하늘을 나는 새를 떨굴 수 있는 세도가도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오직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을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당부하신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죄를 형벌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시면서 한 영혼도 멸망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복음을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 이유는 하나님께는 전혀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에 대한 경계를 여러 번 주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2:1~3f; 5:11~14, 6:1~6)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는 예는 절대로 없고 오히려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견고히 지키신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어떤 대상과 싸워도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우리의 광야 같은 인생 길에 나타나는 대적들에게 이기도록 지켜주시고 우리의 평생에 필요한 영육(靈肉)의 군수물자를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견고하고 불변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기셔서 의롭다 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친히 간구하시며 중보하시는 사실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백성을 정죄치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우리의 인생의 노정에서 죄와 세상과 싸워서 능히 이기게 하신다. 우리를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서 끊어낼 존재는 보이는 세계에서나 영적인 세계에서나 시간 속에서도 없다.
이제는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8b)는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 편에 견고히 붙어서 순종함으로 오늘의 약속이 모두 우리 각자의 약속으로 누리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