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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1~3 2010-01-03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바울이 쓴 서신 중에서 에베소서를 교회론을 다루는 서신으로 분류하고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린도서야 말로 교회 속에 존재한 여러 가지 세속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과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교회 속에 침투해 들어온 많은 세속적인 것들을 지적하면서 하늘로부터 온 것들과 어두움으로부터 온 것이 무엇임을 구분하고 있다.

헬라의 빛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고린도는 학문과 문화가 융성했고 상업적으로 번성했고 종교적으로는 다양했고 이런 영향하에서 도덕적으로는 타락한 항구도시로 1세기 당시에 벌써 60만을 넘어서는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바울은 사도행전 18장에서 보는 것처럼 로마로부터 이주해 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2년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다.

그럼에도 나중 글로에의 편으로 들은 소식은 교회의 분파와 당시 고린도에 만연해 있던 부도덕이 그대로 교회에 판을 치고, 교우들 간에는 법정싸움까지 가는 고소의 일들은 물론이고 은사의 바른 사용이 되지 못하여 은사가 은사 되지 못하고, 예배를 구별되게 드리지 못하여 예배의 중심이 되는 주의 만찬을 함부로 행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오해하는가 하면, 예배 시에 당시 고린도의 관습인 여자들의 수건을 쓰는 문제에 이르기 까지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해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어쩌면 오늘의 이러한 고린도화되고 있는 신앙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데서 이러한 신앙적인 문제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문제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오늘 우리의 현실과 고린도는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고 이런 시기에 이 고린도전서를 다루게 되는 것도 분명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적절한 은혜로 여겨진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상황은 이런 입장에서 대단히 공평한 것을 보게 된다. 물질 문명이 상승되고 생활이 편해지면 내면의 세계는 오히려 후퇴하고 그럼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고린도 교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주님은 우리의 각성을 위하여 이 귀한 성경을 은혜로 다루도록 허락 하셨다고 하는 데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올 한 해에도 이 귀한 신앙적 체계를 다루면서 우리 각자와 교회의 모습은 물론 우리의 시대를 바로 진단하고 바른 교훈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성결한 신부로서의 교회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릴 수 있는 이 말씀과 함께 하는 …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단순한 인사나 편지의 서론이 아니라 이 단 세 구절의 말씀에서부터 교회의 근본과 믿는 자들의 복을 접하게 된다.



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하고 권한다.(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1. 하나님의 뜻으로… 역사 속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진 것들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권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은 쉬이 무너지고 만다.

세상이 그럴 찐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나 신앙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아니 하나님의 뜻으로 나지 않은 말씀이나 행사나 관계는 사실 신앙 속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 웃음과 기쁨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것들이 아니면 그것은 쉬이 시들고 말 것이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그래서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은 생명처럼 귀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하늘로부터의 뜻을 구해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권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사도, 헬, 아포스톨로스(apostolos), 사절, 복음의 사신, 그리스도의 전권대사, 사자, 보냄 받은 자] 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 라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 사도의 사도권에 도전을 하고 나서서 나중 자신의 변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전9: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것에는 절대적인 순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된다. 그러면 ‘어떻게 어떤 것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왔는가 구분이 되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직접 분명한 가르침을 주셨다.“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축복]도 권위도 믿음도 행사도 주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무너지고 말 것이지만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사람의 입장을 내려두고 철저하게 순종하고 받들어도 결코 손해가 없다. 우리 교회와 여러분 모두가 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면 철저히 순종하고 세상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라면 철저하게 거절할 수 있는…



Ⅱ.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2f)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1. 죄악의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 앞에서 말했던 대로 고린도는 참으로 죄악의 도성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바라시는 것 보다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살 것을 당부하신다.

어떻게 더러운 곳에 깨끗한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과일들은 것 모습만 보고서는 어떻게 그 안에 맛있는 과육이 들어있을까 의아할 정도인 것들이 더러 있다.[Jackfruit, durian, marang tarab -냄새나 모양으론 영 아니다 싶다.] 세상에 있는 교회가 그렇다. 고린도 교회가 교우들을 모아서 고린도 밖으로 나와버렸다면 음행이나 재판의 문제나 많은 문제들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에 있어야만 했고 오늘 우리도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비록 죄악의 세상에 있지만 그럼에도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물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 라고 불려지지만 교회의 예정과 계획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 이런 명칭으로 불러지는 경우가 성경에서는 더 흔하다. [10:32, 11:22, 15:9; 고후1:1; 갈1:13; 살전2:14; 딤전3:5, 3:15] 그럼에도 최근에는 이 이름이 건전치 못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거듭나는 역사를 거쳐야만 일원이 될 수 있다. 거룩하여 지지 못한 체로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들이 언제나 문제를 만든다. 그래서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 것이다.

2. 죄인이 거룩해지는 자리 그리고 성결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장소도 역시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이다. 바울은 그의 옥중서신을 중심으로 성도가 살아야 할 자리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어떤 죄인이든지 변화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렇게 얻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로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성결을 주님 오실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의 눈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피, 즉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이 교회(행20:28b)요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성도가 교회를 박차고 나가면 다시 토했던 것에 돌아가는 개로,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곳에 다시 눕는 돼지로 비유되게 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백성의 성결을 지켜 주는 곳은 없다. 다만 죄에서 도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만 안전한 처소요 성도들의 영혼이 위안을 얻고 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도피성이다.



Ⅲ.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2b)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성도란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무리의 일원이다. 세상에서 아직도 육신을 입고 사는 성도는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고 주님의 희생의 기념을 필요로 한다.

1. 성도의 성도됨. 우리 모든 신앙의 사람들은 완전하지 못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인하여, 그 피가 나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믿는 것 때문에 성도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대접을 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하는 고백이 이것이다.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5~16)

2.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는 자들. 이래서 어디에 존재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이름으로 이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 라는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요청인 기도도 그의 이름으로 올릴 때만 효력이 발생한다. 아무리 사람이 보기에 거룩한 사람도 자신의 이름으로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 사실을 수없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계속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5: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16:23)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기도로 부르고 은혜로 부르는 자들이다. 누구의 이름보다도 영적으로 효과 있는 이름 복되신 이름이 바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복되신 이름을 100%로 활용하는 …



Ⅳ.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마23:9)고 말씀하신바 계시다. 이것은 세상의 부모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만 인류의 아버지시오 영혼과 영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또 이 역사 속에 지식과 지식 철학의 아버지라 불러야 할 분도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씀이다.

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의 주인…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는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우리 하늘을 향해가는 모든 사람들의 보장이 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람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고 위해도 그와 함께 죽을 수 없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모두의 아버지 이시요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행17:26)

2. 은혜와 평강의 출처.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된 것은 모든 은혜와 은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었던 데서 문제가 생겼다.

모든 믿음으로 인해서 가지게 된 것은 값없이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거저 주신 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리고 “은혜와 평강” 모든 믿음의 선물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안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 못되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나님아버지와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7~18)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세상과 구별된 백성들은 축복의 권한이 있다. 그럼에도 많은 믿는다는 사람들은 이 축복의 권한 즉, “은혜와 평강”을 쓰지 못하고 저주와 정죄를 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은혜와 평강으로 축복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