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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4~9 2010-01-10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은혜의 종교라고 한다. 모든 종교가 사람의 노력과 정진(精進)으로 신의 경지에 나아가거나 오르려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을 찾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깨끗게 하셔서 자신과 교제케 하시는 주님 이시라는 데서 그렇고, 특히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자신의 생명으로 해결하신 십자가의 희생이야 말로 은혜의 절정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안부를 전하면서부터 종말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된다. 우리모두의 믿음 생활이 과거와 현재를 비롯해서 미래에도 언제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흐트러질 수 있고, 제아무리 넘치는 주님의 은혜와 은사를 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가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종말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지켜간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을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장렬한 믿음의 삶을 지켜갔고, 언제나 긴장된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갈 영원의 삶을 위한 길을 염두 해 두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사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고린도 교회의 무수한 은혜와 은사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실 주님의 날을 준비치 못하는 안일함이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이유 때문에 바울 사도로부터도 책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계속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마지막이 아름다울 수 있고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 만만할 수 있는 준비된 믿음만이 자신의 영적인 삶을 단속하게 하고 돌아갈 영원한 본향에 목표를 흐리지 않게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현재에 어떠한 행복과 안락함과 편리함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제 떠나야 될 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나그네 길의 삶이다. 우리는 각자 언제 어떤 경로로 주님 앞에 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불러만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영원으로 이끄실 그 곳이 이곳보다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을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부르심에 미련 없이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는 …



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은혜[헬, 카리아(charia), 호의, 선물, 자비(로운), 너그러움, 기쁨, 감사(할 가치가 있는) 헬, 카이로(chairo) 눅10:20 기뻐하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유쾌하게 되다, 행복하다, 유복하다, 안녕,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롬5: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히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신앙의 모든 부분은 사실 은혜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믿음에 관한 한 어떤 것도 사람에게서 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책망하는 것을 듣는다.

믿음 안에 있는 우리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믿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기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된 신앙의 사람이라면 은혜에 탄복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 자신부터가 엄청난 자신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이 말씀은 주님의 은혜를 헛된 대로 돌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고 오늘 우리가 신앙에 바로 서 있지 못하면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먼저는 나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은혜를 은혜 되게 한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권면하면서도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롬12:3f)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찾지 못하면 신앙은 힘겨울 수 밖에 없고, 나의 노력으로만 이루어 지는 것이 믿음생활이 되기 때문에 힘겹고 불만이 가득할 수 있다. 감사를 잊은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헤아리고 감사로 찬양하는 … 그리고 또 한번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은혜가 지속적으로 은혜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2. 너에게 주신 은혜를 인해서도 감사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일 뿐 아니라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라고 상대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는 데서 역시 은혜의 사람이었다. 은혜만큼이나 신기한 것은 내가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을 때 너에게 주신 은혜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게도니아 교우들이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는 내용을 바울은 소개하면서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고후9:14)고 고백하고 있다.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그것도 너희에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로소 은혜의 사람, 신앙의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을 것이다. 저도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Ⅱ.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5~7)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은사[헬, 카리스마(charisma),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신성한)선물, 즉(위험 & 고난으로부터) 구속, (영적인)증여, (객관적으로) 신비한 능력.]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은사로서 주어진 것들을 만족하게 여기고 또 감사할 수 있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있고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그의 백성들에게 늘 풍족히 주시는 분이시다. 결코 하나님께 모자라서 우리에게 주실 수 없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다.

만약에 부족하다면 그것은 사람의 측면에 문제가 있거나 누리지 못할 뿐이지 주님께 모자라서 주실 것이 바닥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것도 본문의 표현대로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다.

1. 믿음의 사람들은 말에 지식이 풍족하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5) 믿음의 사람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은사는 말에 지식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말에 실천이 따르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육체 속에 묻어버리는(가려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6) 여기 증거는 물론 먼저 바울이 저들에게 증거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구원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동일하게 그들의 입술에서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의 은혜가 견고하게 증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에 지식이 부족하지 않는 것으로 무엇을 증거해야 하겠는가?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위한 십자가의 증거가 견고케 되어져야 함에도 은사로 주신 언변을 다른 것을 증거하는 것에 쓴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말의 은사를 받았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에 견고치 못하고, 허황된 것들을 증거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말다툼을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딤후2:14)

3.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주님의 재림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7)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가능하면 그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를 바랐다(15:51; 살전1:9~10; 약5:8~9; 벧전4:7; 요일2:18; 계22:20). 모두가 은사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



Ⅲ.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8~9)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본래적으로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로 지어진 존재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그러나 에덴에서 뱀에게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최소의 언약을 깨뜨리므로 창조주와의 교제를 상실하고 만다. 그런 입장에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교제로 부르신 은혜는 자격 없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받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이다.

1. 믿음과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은…?(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앞에서 언급된 값없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의 목적은 바로 주님 앞에 설 때에 흠 없이 서게 하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왜냐 하면 범죄하고 육신을 가진 인간 스스로는 아무리 좋은 것들도 못쓰게 만들고 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져주신 구원의 선물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좋은 것들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신령한 복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그러므로 영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들의 최종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은혜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를 비롯하여 은사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잘못이다.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를 통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의 때까지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도구로 역할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은혜를 주신 주님께 최선을 다하다가 실수한다고 해도 흠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증하는 자들을 고소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실 분이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 [헬, 피스토스(pistos); faithful, believing; 대상이 믿을 만한, 믿는, 신뢰하는, 확신하는, 진실한]

두 곳에 사용된 예를 보면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약속을 어기거나 변경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신실하다고 하는 것이고 또 같은 은혜 아래 부르셨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신실 즉,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4)

심지어 설령 불신의 사람들 때문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흠이 갈 수 없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3:3~4f)

우리들의 구원이 마지막 까지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신 주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너에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은혜의 사람들로 살 때 은혜는 은혜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 것이다.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우리들의 말에 지식을 풍족하게 하셨고 그 말은 진리를 증거하는데 십자가를 증거하는데 견고하게 사용되고 그럼으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할 수 있는 개개인의 종말적인 삶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은혜와 은사를 주셨건 그것은 허물없이 주님 오시는 날, 또는 주님께 가는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튼튼히 세워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를 십자가를 통하여 교제게 하신 하나님은 사람은 변하고 바뀔지라도 믿음직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