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고전 2:1~5 2010-01-07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나누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역시 같은 선상에서 절대적인 지혜인 하늘로부터 세상의 상대적인 지혜로 내려와서 비교될 수 없는 하늘의 신비요 지혜요 구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상의 변하고 소명될 세상지혜로는 전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달의 방법 조차도 하늘의 방법만이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에서도 어떤 일은 사실 도구가 좋아야 원활하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하늘의 일은 더욱이 하늘의 방법 즉,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는 그 방법만이 유효한 방법이고 또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법이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과 눈에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도 세상에서 도입한 방법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고 당장에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미련하게 보이는 방법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라는 구별된 기관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방법, 인간적인 방법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풍조를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방법대로 해서 성공하는 것 같을지라도 사실은 벌써 속으로는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3)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아덴에서 가장 새로 되는 것을 기대하는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울 일생에 가장 철학적인 말씀을 전했지만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런 말미에 이 고린도에 와서 사람들을 두려워했다기 보다는 아덴에 뒤지지 않는 정신세계와 죄악의 도성인 고린도에서(아덴은 그래도 인위적인 철학의 영향일수도 있겠지만 고린도만큼 죄악이 넘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까 두려워했고 고민했다는 고백이다.

오늘도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 동일한 구원의 역사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소망과 생명으로 넘치는 이 말씀을 나누는 …



Ⅰ.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전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1, 4)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①복음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여(1),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4f)”

먼저 여기 “하나님의 증거[헬, 마르투리온(martyrion) 확증된, 증명된, 뮈스테리온(mysterion), 비밀, 신비]”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으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으로 이미 확증된 것이고; 그럼에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갖는 감격(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을까!)이나 세상 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중에 신비이다.

그래서 앞에서도 이미 이 신비스러운 고백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웅변가라 해도 성령의 능력 없이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는 것이고 또 같은 영으로 듣지 않는 사람들은 들어도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별 감응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1) 사실 이러한 바울의 증거는 고린도에 오기 바로 전에 사도행전17:22~ 아테네의 철학자들을 향하여 헬라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 데서 경험을 통해서 하는 고백이다.

당시만해도 웅변술(雄辯術)은 일반적인 학문이었던 이유는 아름다운 언어구사 즉 맛깔스러운 말을 사람들은 대단히 좋아했고, 사도행전14장의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실라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때도 사람들은 하늘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神이 사람의 모양으로 내려 왔다고 소란을 부리게 되는데 여기에 헤르메스가 바로 웅변의 신이었고 바울이 주로 말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헤르메스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1:21)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4)[여기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은 ‘유혹하는 말, 그럴 듯한 말’을 의미한다.]라는 바울의 고백을 들으면 소위 말하는 신학교라는 데서 수사학(修辭學)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유용할까 생각하게 된다.

언어(言語)의 유희(遊戱)는 복음에는 소용이 없다. 말의 언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한 사람의 삶이 가장 호소력을 가지는 복음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②복음은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4f) 라는 말을 더 가까이 가져오면 “능력 있는 성령의 나타남”이다. 조금 뒤에 가면 바울은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증거하고 로마서15:13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v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자신이 당시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널리 증거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 데살로니가전서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시면 또한 증거할 능력도 함께 주시기 때문에 내가 앞서서 인간의 지혜와 방법 즉, ‘이렇게 하면 잘 받아들이겠지!’라는 계산을 버리고 어리석은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한다.(2~3)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오늘 본문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내용이다.

①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했다. 이 2절의 시작하는 원문에는 “왜냐하면(헬, 가르-gar)”이 쓰여지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1),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 “작정하다[헬, 크리노(krino), 결정하다, 결말짓다, 정하다, 선고하다(많은 뜻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결말을 지었는데 어떤 예수 그리스도냐 하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 알기로 정하였다는 고백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여러 모양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기로 결말 지었다는 고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삶의 역사들 중에서도 유독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는 의미이고, 이렇게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다음의 결과들도 당연히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받아들이기 힘 드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의 많은 이적도 좋고 박애정신도 좋고 그 교훈들도 다 좋은데 십자가에 비참하게 돌아간 그것이 왜 나 때문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죄와 저주와 허물을 해결 받기 위해서는 바로 십자가에 돌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이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겠다고 하는 것은 나도 그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고 본받고 나의 십자가를 주님처럼 지고 가겠다는 각오이다.

사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깊이 알면 알수록 감격하고 찬양하게 된다. 여러분 모두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하십시오.

②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십자가를 귀중하게 생각하게 되면 사실 모든 다른 것들은 그 가치를 읽게 된다. 내 인생이 십자가로 인하여 변화되고, 십자가로 인하여 죄와 저주와 죽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어떤 것도 이 십자가만큼 귀중한 것은 없게 되는 것이다.

[439:1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아멘]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나에게 있어서 십자가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켜버렸다.” 모든 것의 가치를 바꾸어 버렸다는 고백이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 모두가 이런 고백을 들릴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고백을 들릴 수 있기를 …

③아테네에서 당한 일 때문에 인간적으로 두려워했던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3)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그들의 철학적 사고와 시까지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허무한 것이었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17:34)

그런 결과를 가지고 고린도에 온 바울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비도덕적인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나중에 고백하는 것을 보면 결국 자신이나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8~11)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는 절대적인 믿음의 사람들로 사시기를 …



Ⅲ. 이것만이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방법이다.(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b)고 증거하셨다. 사람의 지혜가 하늘에 이르는 것 같지만 사실 생명에 있어서는 참으로 미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생각지 않게 사람이 죽는데도 손을 쓸 수 없다는 데서 그렇다.

①우리 믿음의 바탕이 사람의 지혜에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 “너희 믿음”은 “너희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미한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일하심보다 사람의 이성과 지혜가 너무 활발하면 이것은 주님의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늘 사람의 수완과 방법이 참으로 능력 있고 효력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제한하게 된다.

②우리의 믿음이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어야 한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일하고 살았던 바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이렇다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더 겸손히 주님을 의지해야 할까!

③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사람의 지혜도 능력도 복음 증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유용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것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우리들도 증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만약에 주님께서 세상의 지혜와 술수와 이벤트를 사용하신다면 그렇지 못한 우리들은 잠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배우지도 가지지도 못했으니~!’ 그러나 이 세상의 이런 모든 합리적인 방법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유용하지 못하다고 하는 가르침 때문에 “너도 나도” 복음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방법인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증거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역사와 능력을 이루실 것이기 대문이다. 우리 모두 이 주님의 약속에 확신과 충성을 드리는 …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전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다만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우리 각자가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오직 하나의 효과 있는 증거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사람의 지혜로 전하지 않고 사람의 지혜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전하고 들어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은 풍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