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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2:6~11 2010-02-14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비밀이고 사람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주신 신령한 선물이라는 데서 지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람들로부터 가르쳐지고 전달되는 지혜라고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수 천 년을 살면서 삶에서 경험되는 많은 것들도 이 세상의 삶을 사는 데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터득한 것으로 어려움을 줄이고 해결하는 방법들을 전수받아서 보다 더 낳은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지혜도 육신의 삶에는 분명히 유익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유전(遺傳)으로 내려온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에 함께 섞이고 더해져서 영적인 삶에까지 사람의 지혜가 역할을 하려 하는 것은 신앙의 역사 속에서 늘 문제가 되었다.

어느 사회나 이런 통념(通念)이나 지혜(智慧)는 글로도 전수되고 말로도 전달되는데 이것을 철학(哲學)이고 속담(俗談)이고 금언(金言)이라고 한다.

이 정초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토정비결(土亭秘訣 조선 명종 때, 학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지은 책. 그 해의 신수점 풀이에 쓰이는 데 뒷사람의 보충이 많다 함.)이라는 것도 그런 종류의 일종이다. 결국 역사 속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사람들의 학문이나 삶의 지혜는 듣고 배워서 전달되고 계승되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사람의 유전에 맡기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인간의 유전되는 모든 지혜는 역사를 거듭하면서 바뀌고 개선되어지기 때문인데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 복음의 논리는 오히려 바뀌면 문제가 될 만큼 완벽한 것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서 증거하는 구원의 복음을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2)고 증거하고 있다.

사람이라는 그릇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변질시키지 않을 만큼 신령치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구원의 진리도 사람에게 의탁하지 않으시고[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2:24)] 친히 기록된 성경과 성령의 계시로 주님 오실 때까지 변치 않도록 보존하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원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나타내셨는가를 이 2장 마지막까지 말씀하고 계시는데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눠서 오늘 앞부분을 생각하고자 한다. 오늘도 기록된 순서보다는 내용과 더불어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구절들로 나눠서 생각하고자 한다.

먼저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던 하늘의 지혜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신 하나님께 이 말씀과 더불어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



Ⅰ.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알지 못하였다.(6, 8)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서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일 것이다. 사실 그래서 지식이나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각 분야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교사를 삼고 늦게라도 통치에 필요한 지혜들을 터득하려고 하는 것을 역사 속에 많은 통치자들에게서 보아온다.

사실 애굽의 바로 왕이 요셉을 자신의 다음자리에 앉힌 것도 이런 내용과 다르지 않다. 당시 애굽에 많은 술객들과 박사들이 있었지만 그들로 해결되지 않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사람인 요셉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지혜 즉, 십자가의 지혜는 이렇게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하는 통치자들이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여기 ‘온전한 자들’이란 상대적인 세상의 통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성숙한, 영적으로 깊은 생명의 진리를 성령의 지시와 가르침으로 알게 되는 신령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 헬라 시대의 철학은 지혜정치(智慧政治) 즉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권면하고 주창했지만 대대로 내려오면서 이 정치철학(政治哲學)도 조금씩 변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국가론이 다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이 또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죄인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지혜는 예루살렘에서 주님께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실 뿐만 아니라 승천하시고 성령께서 이 땅에 임하셔서 교회가 세워진 후 한번도 바뀌거나 개선되지 않은 것은 이것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라고 구별하고 있고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라고 세상을 향하여 선언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군왕들은 자신의 이전 사람들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배워 백성을 다스리지만 결국 없어질 지혜, 지나가는 지혜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통치자들은 계속 바꿔지고 시대는 변하면서 통치의 방법도 바꿔지기 때문이다.

다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8)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당시 로마의 통치 대리자들인 이스라엘의 왕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도 오순절날 이후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행3:17)고 어리석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당시의 유대의 관료들을 향하여 저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실 때인 헤롯 대왕 때부터 있어왔던 사실이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통치권력에 위기를 느낀 헤롯은 이미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애굽으로 피난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의 애기들을 몰살시키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고 그러고도 얼마 못 가서 정치권력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마저 잃고 만다.

이 세상에 소멸되어갈 통치자들이 어찌 영원 속에서부터 주어진 영원의 생명원리를 알 수 있겠는가! 결국 영원의 나라에 속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정적으로 알고 죽이는 세상의 방법 그대로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던 성경 시대의 많은 통치자들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구약의 사울이 비록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지만 이런 세상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려다가 실패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자신의 정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을 제거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어리석음으로 통치를 마감하고 만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러한 영원한 통치 철학을 이해하고 자신의 지혜가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의 방법인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므로 그의 통치를 그리스도의 완성의 시대까지도 끝나지 않고 영원에 까지 미치고 있음을 그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아래 높여짐을 보면서 확신할 수 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도 알지 못했던 하늘의 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 속에 불러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영원히 드리는 …



Ⅱ. 이 지혜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다.(7, 9)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큰소리 치며 호령하는 통치자들이 하나도 몰랐던 이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하여 감추어 두었던 것이라고 증거한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지혜는 “오직 은밀한(, mysterion, 비밀한, 신비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7f) 라고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따라 세상의 큰소리치는 군왕들이나 철학자들은 발견할 수 없도록 깊이 감추어 두셨던 것이라고 증거한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6~27)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7b) 황공하게도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엄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합당하게 돌려 드리는 영에 속한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영광을 드리는 자에게도 비취기 때문에 영광을 드리는 자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7:18)

오늘도 주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자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는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신비에 대하여 바울은 이사야64:4 말씀을 인용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9)

결국 역사의 수많은 통치자나 지혜자들에게 은밀히 감추어 두셨던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것이요 감추어 두신 것이라는 것이다. 감사하지 않는가!

사람이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보는 것이고 보는 것과 더불어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데, 육신적으로 가장 분명한 이 세가지 도구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 말씀하셨던 것이다. 본다고 모두가 깨닫는 것도 아니고 듣는다고 모두가 이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생명의 약속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오늘 저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주님에 대한 사랑과 성령과 더불어 헤아릴 수 있는 …



Ⅲ. 이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이해되는 것이다.(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세상의 지혜자들이나 통치자들이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만 감추어 두었던 이 하늘의 지혜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가 오늘 우리가 생각할 마지막 말씀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말씀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고 약속하셨다.

그 이유는 바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10b)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이 감춰두신 것도 같은 성령께서는 완벽하게 아시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바울 사도는 교회의 신비를 밝히는 에베소서3:5에서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라고 같은 증거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주고 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11f) 사람의 마음은 다른 짐승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듯이 좀더 높은 차원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1b)고 증거하고 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든지 비록 세상의 통치자나 철학자가 아니라도, 주님의 은혜의 약속에 순종하여 물과 성령으로 나기만 하면 그 하나님의 백성 속에 와 계시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들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것은 절대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역시 순종의 문제일 뿐이다.

하늘에서 주신 구원의 계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지만 오늘 우리가 듣고 순종하여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감추어 두신 것으로 만세 전부터 정하신 것으로 사람의 눈이나 귀로,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었는데 오늘 우리가 알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들 속에 와계시는 성령으로만 알게 하셨다. 이제 더욱 진리와 약속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을 더욱 깊이 헤아려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