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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개역한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서로 같은 도구를 통해서만 교통이 가능하고 다른 도구로서는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가장 흔한 cellular phone - PCS)
앞에서도 이미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11f) 라는 비유를 본바 있고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10)고 적어도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주신 모든 것들은 인간적인 판단이나 지혜로서 이해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한바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 조차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은 당연함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12:3)고 증거하고 이다.
우리 각자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러한 십자가의 도의 원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고 적어도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는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미1:21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증거 한바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인간에게 거저 주신 모든 것들은 아무리 인간적일지라도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뿐이다. 줘야 받고 받아야 주는 대가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논리에서 은혜로 주신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조차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으로만 가능함을 인간 지혜의 시대에 인간 지혜의 중심인 고린도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최고로 치는 사람의 지혜로는 하늘로부터 주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시 오늘 전하는 말씀자체도 사람의 두뇌로 이해하려면 불가능 할 뿐이다. 세상 것들을 이해하는 데는 무딜지라도 신령한 것들은 잘 이해하는 하늘의 성령으로 충만한 …
Ⅰ.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거하게 하신 이유.(12~13)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 세상에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영적인 존재들이 많이 있고, 이 영적인 세력은 우리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영적인 존재에 의해서 영향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고 증거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 각자의 인간됨으로 이 어두움에 맞서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말씀에 순종하여 거듭난 자들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영적인 세계를 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더욱 쉽게 하셨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자들은 적어도 더 이상 유혹하고 넘어뜨리려는 악한 영들에 지배 받지 않게 하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하나가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의 악한 영들의 영향아래 있지 않게 되었음을 확신시켜주는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첫 부분의 말씀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12f) 바울 사도는 이를 더욱 분명히 확신시키기 위하여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명한 이유를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b)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사랑과 은혜의 선물을 헤아리고 알게 하는 것들은 결국 육신의 지혜로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영적일 때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들이 무엇이며 얼마나 귀중한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위로부터 주어진 귀중한 것들을 육신적으로 판단할 때는 절대로 귀중하게도 … 감사하게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우리의 신앙적 삶에서 언제든지 쉽게 확인되어지는 사실들이다. 우리가 영적이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신앙적 가치는 점점 하찮게 여겨지고 세상적인 것들이 더 귀중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들이 하나님의 주신 것들보다 더 귀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이런 기준으로 믿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357후렴)“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믿음에 관한 한은 어떤 것이든지 사람의 지혜 즉,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영생에 관한 한은 사람의 지식이나 학문으로는 알 수 없게 하셨는데 그것은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이 본질상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죄의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 하고 …”(13f) 라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것을 말하거니와”는 바로 신령한 것 영원한 것 하늘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연이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b)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속한 교훈들을 자신의 머리와 지혜로 이해하려고 덤벼드는 일들이 더러 있다.[도심의 돈까스 집의 일요일 휴무-우리와 같은 성경적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늘에서 주신 모든 것들은 하늘의 지혜이신 성령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9)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b) 오늘도 영적인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절대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적인 사람은 영적인 일들을 바로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교회 일은 영적인 사람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질 못하고 끼워 넣기 식으로 교회 일꾼을 뽑는다면 절대로 영적인 기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있고, 영적인 자격을 갖춘 자들이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14:12)
영적인 일 하늘의 왕국의 일 즉, 천국의 일은 영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성령의 사람들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기 위하여 뽑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6:5)들을 뽑아서 사도들이 안수하여 일을 맡겼던 것이다.
[민11:25~29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에게 하나님의 신이 내려와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b) 이것은 만고의 진리요 영원히 바꾸지 않을 신앙의 원리다. 여러분 모두가 신앙과 교회의 모든 일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신령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
Ⅱ. 육신적인 자연인으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진리.(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바로 앞의 말씀에 정 반대되는 의미이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 언제나 가장 큰 장애는 육신의 삶과 肉的인 판단, 그리고 人間的인 價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Christianity 는 Humanism 이 아니다. 여기 “육에 속한 사람[헬, 프쉬키코스 데 안드로포스(Psychikos de anthropos) 거듭난 사람과 반대되는-자연인, 육적인 사람]”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로마서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14f)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으로 났던 유다도 그의 서신에서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1:19)고 지적하고 있다.
야고보도 같은 경계를 주고 있다.“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약3:14~15)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성령을 보내실 것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14:17f)고 증거하셨다.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14m) 육신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일은 언제나 어리석게 보이기 마련이다. 사도 중에 으뜸이었던 베드로는 예수께서 “…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3)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던 베드로였기 때문에 창세전부터 계획되어 있는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를 가로막고 나서다가 호되게 책망을 받았던 것 역시 오늘 우리 신앙의 부정적인 모델이다. 오늘 우리도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가로막고 나선다면 같은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영적인 일의 해답은 오로지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14b) 는 것이 정답이다. 인간적으로 계산해보고 손해와 이익을 따져보기보다는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가?를 영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육신의 판단이 아닌 영적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신령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
Ⅲ.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15~16)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이 마지막 말씀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말씀이 아니다. 바로 영육의 판단의 결론이다. 이 말씀은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사40:13) 라는 이사야서의 인용이고 이를 가장 구체적으로 응용하는 바울 시도의 말씀을 로마서11:34에서 읽게 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기 전에 먼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라고 감탄한바 있다. 역사상 가장 신령한 자이셨던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혼란을 겪지 않으셨고 모든 것을 진리대로 판단하셨음을 읽을 수 있다.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이나 율법에 정통 하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물론이고 비록 당시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 앞에서도 결코 혼란치 않으셨던 이유는 바로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15)는 원리에서 그러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움직이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바울 역시 다르지 않았고 오늘 같은 신앙적 원리를 가지고 산다면 우리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지혜의 성령에 붙잡혔던 솔로몬도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28:5) 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16b)는 말씀은 다른 표현이 아니라 성령의 지도를 받고 따르는 사람의 고백이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표현을 빌립보 교우들에게도 쓴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향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백함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2:8)
성령으로 생각하고 살고 죽을 수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것과 다를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께 속한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가능하고 당연함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의 결론은 한마디로 성령에 의해 사는 삶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통하여 우리에게 거져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헤아릴 수 있게 하고, 육신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나 명령조차도 기쁘게 감당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세상을 보고 교회를 보고 영혼을 보는 거룩한 삶을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감당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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