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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4:6~13 2010-04-11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신앙 안에서의 대단히 신중해야 하고 함부로 잘못 판단할 경우에 나중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판단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겠지만 바울 사도 자신은 다른 사람을 판단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죄책감을 느낄 것이 없어서 스스로를 판단하여 좌절하거나 흠 잡힐 것이 없다고 선언했던 내용을 앞에서 봤다.

오늘은 고린도 교우들의 교만이 절정에 달하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복음은 물론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음에도 받지 않은 양 자신들이 경건하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처럼 큰소리치고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신앙을 키워준 사람들을 무시하고 대적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기록해 주신 말씀까지도 자신의 생각 밖으로 밀어내고 성령을 앞서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중심 한 것보다도 자신들의 육신적 생각을 더 위에 두려는 데까지 지나침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일세기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전하는 것 자체를 남의 종교를 무시고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오히려 조롱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복음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을 돕지 않으면 헐벗고 굶주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영육의 복을 누리는 고린도 교우들과는 다르게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교회들의 도움 없이 힘들게 복음증거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증거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고 위로를 했던 것을 듣게 된다.

오늘도 지금 자신이 받은 신앙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영향을 끼쳐준 사람들을 마치 고린도 교회의 지체들이 바울을 평가하는 것처럼 평가절하(平價切下)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신앙적인 체계나 믿음이 그들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더불어 영광을 돌리는 …

오늘은 편리상 중간에서부터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모두 받은 것들이다.(7~8)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 사도는 여기 7절에서 세가지 질문을 통해서 저들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지적하려고 한다.

①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물론 바울은 고린도 교회 속에서 유별나게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우리를 죄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 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각자에게 은사나 직분을 주신 것도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인식할 수 있다면 믿음 속의 교만은 쉽게 해결 되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가 이 질문 속에 나타나고 있다.

②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빈손 들고 나와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나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서 살게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하여 선물로 이 모든 것을 주셨는데, 교만하다 보면 마치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지고 태어났거나 스스로 만든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라고 맡긴 것들을 스스로 창조하여 만든 것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은 신앙에 있어 대단히 불손한 태도이다.

자신의 태어난 환경도 재산도 가족도 교회도 모두 받은 것이기 때문에 맡아있다는 청지기 의식으로 섬기고 또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③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두 번째 질문과 연결하여 모든 것을 받아서 누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공로인양 자랑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누리는 것을 받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하게 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기 보다는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해와서 이런데 왜 너는 그 모양이냐고 가지지 못한 자들을 정죄하려 들 수 있는 것이다. 죄에 익숙한 인간은 결국 성령의 감화가 아니고는 겸손할 수도 없다는 데서 낮은 데로 내려 앉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8)

고린도 교우들은 그들이 이만큼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감사하고 찬양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의 근거로 잘 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기의 동사들이 완료형태로 쓰여지면서 마지막 오실 주님 앞에서는 모습으로 묘사되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이런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풍족함을 누리는 것이 바른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면 교만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대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가오고 있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면서 경성함으로 죄악의 요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풍부와 배부름으로 인하여 영적 교만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에 있었고 현재도 계속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책망 받고 있다.

마치 요한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처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라는 책망과 같은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허황된 자만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영원 속에서 자신들과 같이 왕 노릇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책망과 권면이 바로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고린도서를 시작하면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1:2f) 이라고 고린도 교우들을 부른바 있고 이런 명칭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 속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가 풍성하고 물질적 부요도 누리게 됨이 더욱 겸손함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교만의 이유가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받아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적인 영적인 겸손으로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Ⅱ.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는 것이 교만의 절정이다.(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미 앞에서도 고린도 교우들의 은사의 자랑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1, 3) 라고 탄식한 바 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비롯해서 고린도 교회의 스승이었던 아볼로 조차도 말로만이 아니라 본을 보였다고 증거하는데 무슨 본을 보였는가 하면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고 증거한다. 이것은 어쩌면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안타까움이다.

최고의 교만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 즉, 자신이 하나님 이상인 것처럼 자의 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은사를 자랑하게 되는데 사도 요한도 이에 대한 경계를 준바 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1:9)

신령하고 거룩한 성령에 충만한 바울조차 자랑하는 것을 보면 이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최고의 석학이요 지위를 가진 바울이 이렇다면 오늘 우리 같은 사람은 더욱 십자가를 자랑해야 할 것이다.

결국 말씀을 넘어서는 데까지 이르면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고 가장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그럼으로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것은 벌써 하나님의 은혜를 넘어서는 것이고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이래서 신령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단이 되는 것을 보는 데서도 확인 되어지는 사실들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장치를 이 6절 하반절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대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성령 안에서 기록된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겸손과 순종은 당연히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는 결과도 말씀해 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 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 하셨고, 당연히 사도들을 통해서 배운 자들 역시 대적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기록한 말씀을 넘어서 버리는 것으로 자신만이 가진 신비한 능력으로, 오로지 자신만이 하나님의 신비를 꿰뚫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 사도와 아볼로의 본을 받아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 대적하고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의 사람들로 사시기를 …



Ⅲ. 진실된 복음의 일꾼들과 허풍 떠는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9~13)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어쩌면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진리에 자신을 맡기고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만한 자들보다 육신적으로는 더 어려울 수도 있음을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증거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b)

여기서는 고린도 교우들과 자신과 아볼로를 대조시키면서 [너희]와 [우리]로 표현하며 비교시키면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이 겪었던 안타까움을 회상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들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일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고백이다.

권력이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이런 모든 것이 다 있고 복음을 전하게 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편하겠는가 만은, 하나님은 당시 1세기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전혀 이런 것을 주시지 않고 복음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는 표현은 마치 원형 경기장가운데 굶주린 동물들 앞에 찢겨 죽어간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고난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서 계속 양 쪽의 모습을 비교해 가고 있다. ①“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10f) ②“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10m) ③“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10b)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11)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12)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13) 어찌 보면 복음의 양면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진실됨과 거짓됨의 모습이고 그것은 세상의 가치와 다르고 세상의 가치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목록들은 사도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록들 같다. 사도들은 능력과 권능으로 일했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들이다. 이것은 어쩌면 거짓과 미움과 죄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리를 순종하며 살아야 할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당부요 각오이다.

사실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셨다가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주셨던 말씀이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그러나 여기에 대한 상도 약속하셨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4)

그러나 바울에게는 나름대로의 위로와 격려가 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전부가 받은 것이고 두고 가야 할 것들임을 잊지 말고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함이나 남을 없인 여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기록한 말씀을 넘어서는 데까지 이르면 돌아올 방법이 없다. 늘 말씀에 떨며 그것을 전해준 자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복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오히려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큰소리 칠 수 있지만 거기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주님께서 오셨을 때 행한 대로 갚을 것이므로 영원 속의 영광을 바라고 오늘을 희생하는 바울 같은 삶을 감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