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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이방인 즉, 불신자들 중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이러한 사람들을 징계하지 않음으로 비도덕적인 죄악이 교회 속에 누룩처럼 번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반드시 형벌해야 하는 것은 범죄한 당사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 라는 사실을 앞부분에서 증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여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전 불신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전혀 상관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능성 조차 닫아 버릴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러한 경계는 교회 속에서의 것임을 분명히 못박고 있는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어찌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죄가 당연히 있음을 인정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역설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이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것임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다.
오늘 우리 각자와 교회에게 주님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한 성결을 묻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아직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악으로 헤매는 사람들에게 빛으로서의 삶을 당부하면서 그들 복음으로 불러들여 거듭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렇게 성결과 전도의 양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
Ⅰ.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성결을 물으시는 것이 아니다.(9~10)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 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 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를 범하였고 스스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들이 되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절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십자가의 은혜 아래로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와 이유를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상태에서 주님의 희생의 은총을 믿고 순종하여 세례를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거듭난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구별된 기관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이다.
바울은 이렇게 교회안에 주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 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경계를 주고 있는데, 이것을 역시 육신적인 입장에서만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신흥종교의 교주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세상은 죄로 넘치고 있기 때문에 그 더러운 세상과 더불어 살지 말고 믿음의 사람들만 따로 살자고 자신들만의 구별된 거처를 마련하여 격리하라는 말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러한 당부는 세상과 타협하라는 권면은 더더욱 아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밤 기도하시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5)라고 기도하셨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천명하고 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빌2:15)
그런 이유이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다시 부연(敷衍)하기를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 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10f) 여기에서 강조되는 표현은 [이 세상]이다.
계속 되는 이야기의 중심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 속에]서 “음행 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즉 교회 속에 이런 사람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교훈임을 알게 된다.
죄가 넘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씻어 정결케 구별하여 나중에 그대로 새 예루살렘으로 옮겨 가게 될 무리들이 세상의 가치만 못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안타까운 호소이다.
만약에 세상 속에서 이런 죄악상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이 나중에 고린도 교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교회의 영적 상태로 봐서 아마 오해하는 부류들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명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시기 까지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직 세상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이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통해서 또 다시 그들을 불러 내시려는 주님의 뜻이 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속한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주님의 빛으로 나타나야 하는 기관인데, 세상의 죄악들이 여전히 교회 속에서 허용되고 만연된다면 그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복음의 빛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세상의 죄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할 도구들이 교회의 성도들이기 때문에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을 외면할 수 없고 그들에게 오히려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
Ⅱ. 교회 안에 부끄러운 일을 일삼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 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바울의 설명은 계속된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11f)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형제나 자매들이’라는 의미이다.
앞의 세상 속에서의 부도덕을 “①음행 하는 자들이나 ②탐하는 자들이나 ③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④우상 숭배하는 자들”(10f)을 거론한 바울은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해서 거론한다. “①음행 하거나 ②탐욕을 부리거나 ④우상 숭배를 하거나 ⑤모욕하거나 ⑥술 취하거나 ③속여 빼앗거든”(11m)
앞의 내용들에 두 개가 더 해지고 있다. 즉,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한 것인데 이 역시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항목들이다. ‘모욕’은 사람을 돌려 놓고 뒤에서 욕하거나 모함하는 것으로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b) 마귀 사탄의 속성을 의미하고 ‘술 취함’은 역시 성령이나 진리의 충만함 보다 허황된 정신에 사로 잡힌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과는 “…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헬, 메데 쉬네스디에인(mede synesthiein)‘주님의 만찬을 함께 나누지도 말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함이라”(11b)고 단호하게 경계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의 장에서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15:33) 경계한바 있다.
하나님의 자녀 즉 형제라고 일컫는 사람들 중에 공공연하게 범죄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과의 교제를 단절할 뿐 아니라 그들을 교회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5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교우들에게 그러한 누룩이 퍼지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단순히 사람만의 사귐이 아니다.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1:3b) 주님께서 함께 하는 사귐에 어둠이 함께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후6:14~16)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여전히 세상과 죄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성찬과 애찬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행사에 함께 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고 거룩한 나눔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 되고 이 거룩한 예식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형제였던 유다는 그러한 자를 말하기를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유1:12) 라고 안타까워 한다.
교회는 그러한 자들을 징계하고 또 그러한 자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결을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Ⅲ. 불신자들의 판단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지만….(12~13)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 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바울 사도는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4)고 하나님의 바른 일꾼의 판단에 대해서는 경계한바 있다.
믿음의 사람들의 기준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가 분명이 다르다. 그러나 바울 사도 조차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12f)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자신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12b)했는데 여기서 바울은 “내가 판단하지 아니하랴”가 아니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고 바울 자신 보다 사실적인 것을 보고 알고 있을 고린도 교우들에게 판단을 맡긴다.
교회 안의 사람들은 역시 신앙적으로 판단하되 진리의 말씀과 성령과 사실적인 증거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분명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인간적인 입장에서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말씀과 성령과 사실이 아닌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가 하면, 분명히 명백한 범죄의 증거가 들어 났음에도 역시 인간적으로 싸고 돌고 옹호하는 잘못된 형태들을 보이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요 고린도교회의 스승이면서도 사실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그것을 보고 격은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판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진리의 일꾼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자세가 바로 “…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12b)고 촉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도 판단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20, 12:33b; 눅6:44) 오늘도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바뀌지 않았다.
바울은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 하시려니와…”(13f) 주님의 십자가를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일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13b)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성령과 말씀의 지배보다는 여전히 어두움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 신앙적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나눔의 암초가 되는 자들은 판단하여 내어 쫓으라고 단호하게 당부한다.
사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9:17b) 그럼에도 그 용서를 헛것으로 돌리는 배은망덕은 용서하실 수 없으신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이래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눅12:47)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평생에 갚을 수 없는 빚을 대신 갚아줬어도 그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배은망덕이라고 하는데 영원히 저주와 절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생명을 대신 지불하시고 사주셨는데 오히려 그 은혜를 짓밟는다면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고 얻은 하늘의 기관이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뒤흔드는 불경건을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도 은혜를 입고 은혜 베푼 자에게 대적한다면 패륜아라고 하는데 하물며 교회 속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 각자가 행여라도 세상에서도 있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옹호한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거룩한 공동체인 우리 교회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순결을 지켜갈 수 있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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