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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6:1~11 2010-05-16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늘 얘기해온 대로 법이라는 것은 좋아할 것이 못 된다. 법의 관계로 관계되는 것은 사실 냉정하고 삭막한 것이다. 이것은 한나님과의 관계든지, 인간관계든지 사랑의 관계로 살아가야지 의무의 법의 관계로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주님의 사랑의 관계 속에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었으면서 서로간의 바른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여 결국 세상법정에까지 서게 된 사실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안타깝게 탄식하고 있는 것을 오늘 읽게 된다.

주님께서 삭막한 정죄의 저주 아래에서 우리를 빼내셔서 자유를 주셨음에도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3:18f)

율법 조차도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 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딤전1:8~10) 라고 기록함으로써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옳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위상을 가진 주님의 백성들이 결국 세상의 불신의 법정의 힘을 빌어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내용이다. 결국 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실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이러한 은혜에 합당한 삶이 되어서 더 이상 법이 필요 없는 사랑으로 지배되는 천국의 백성다운 삶을 누리고 나누는 …



Ⅰ. 재판할 자가 재판을 받을 사람들보다 못하면 되겠는가!(1~4)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①이 말은 세상의 법정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 백성의 한 사람으로 재산이나 권리에 의해서 세상정부의 보호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교회법인) ②그러나 적어도 하늘의 법에 의해서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신과 철학의 인간적 기반과 사람이 중심인 세상법정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불의한 자들’ 앞에서 판결을 받음으로써 그 중에 재판에 진 자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주님의 영광에 누가 될 것이 분명하다. ③참으로 바람직한 것은 신앙의 관계 속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보시는 사람들 앞에 서로 싸우고 다투는 수치를 내보이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에 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1.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현재도 주님의 백성들의 구별된 삶으로 인하여 불신의 사람들의 죄가 들어나는 것도 심판적인 역할로 나타난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3:18~20)

2.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3) 물론 심판할 천사들은 범죄한 천사들이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3. 계속 질문형식으로 경계하고 있다.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리고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4)고 저들의 상태를 돌아보게 한다.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됨의 지위나 주님의 위엄을 망각하고 불신자들 앞에서까지 부끄러움을 들어내는 교회나 교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은 세상의 법정을 이용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교회에서 가볍게 여기는 형제들에게 그 문제를 판단 받는 것이 더 낳지 않느냐?’는 의미로 이해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률은 세상의 사람들과 비교될 수 없는 것임에도 세상보다 못한 행동과 자세를 보이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사람들보다 구별된 행동과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본분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불신의 사람들의 세계에서조차 없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Ⅱ.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5~8)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여기서는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도덕 이하 수준의 사람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경계한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5f) 이 고린도 편지를 시작하면서 바울은 고린도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한 바 있다. 이제 ‘그렇게 자랑하던 지혜는 어디다 두고 이런 일 조차도 판단할 수 없느냐?’는 투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b) 사실 세상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웬만한 신앙의 관계만 바로 유지 한다고 해도 소화되지 못할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결국 주님에 대한 경외감이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초하지 않는다면 교우간의 관계는 세상 가족의 관계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는 적어도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관계라는 데서 세상의 가족의 관계에 비교될 바가 아니다. 세상의 가족관계는 육신의 평생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형제애는 영원에까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믿음이 바탕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결국 영원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결속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6)는 기본을 떠나 있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쟁이라는 잘못된 신앙행위로부터 출발해서 형제를 이방의 법정에 고소하기까지 하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성도를 판단하게 하는 더 큰 죄를 범함으로써 그들 가운데 발생한 악은 점점 자라서 개인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만드는 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바울은 오히려 교회로서 주님께 욕을 돌리는 것 보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 라고 까지 안타까워 하고 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물질적이거나 지위에 있어서 손해를 보더라도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와 성도의 자세이다. 그런 안타까움을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탄식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이제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8)고 인식시키고 있다. 이 말은 좀더 풀어 말하면 “너희는 서로 형제다 그럼에도 서로 불의를 행하고 속일 수 있느냐?”고 가장 근본적인 관계를 확인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교우들 간에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서로를 헐뜯고 고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영원에 이르기까지 함께 가야 할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극단적으로 이해를 한다면 ‘지옥 갈 각오가 되어 있다면 형제를 해해도 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8:11)고 함으로서 먹는 것으로 형제를 상하게 해서는 안될 것에 대하여 경계를 주기도 하였다.



Ⅲ.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아야 한다.(9~1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죄를 용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러한 다툼과 싸움의 경계 뒤에 주어지는 교훈이 구원의 이전 상태의 목록들로 교훈을 주고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9) 이것은 교회 밖에 불의한 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절에서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 과거에 너희도 이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이미 과거의 상태를 지나왔음을 기억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미혹을 받지 말라[, me planasthe,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9m)는 경계는 다시 이런 상태로 뒷걸음질 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외부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유혹을 극복하라는 뜻이 더 강하다.

“음행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 (9b~10f) 이것은 갈라디아서 갈5:19~21의 육의 사람의 묘사이면서 성령의 열매(22~23)에 반대되는 내용들이다.

여기에 나타난 비도덕적 항목들은 결국 과거의 주님을 알기 전의 상태에 돌아간 고린도 교우들에게 주고 있는 경계요, 오늘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세상에 또 다시 빠져있는 상태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는 경계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모든 것에서 빠져 나왔고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수준이 세상의 죄악의 사람들 이상이기를 기대하시는 것은 어쩌면 피를 흘려서 그런 죄악에서 건져내 놓은 구세주로서 당연한 요구이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표현이 주어지고 있다. “~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0b) 이러한 표현이 지금 불신의 사람들에게 주는 경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신부의 성결을 요구 받는다. 결국 주님을 경외함으로 성령과 더불어 산다면 그 결과는 이러한 어둠의 열매는 맺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삶에는 당연히 하늘의 빛과 성령의 열매가 동반될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고리도 교회는 이 21세기 교회의 모형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역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묵인하실 수 없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당연히 영적인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의 사람에게는 강요하지 않아도 빛의 열매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요즘 Cyber 상에 카페나 동호회 같은 것들이 많다. 각자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아 가입하고 탈퇴한다. 교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경건하고 세상과 다르면서도 품위가 있고 세상과 같이 각박하지 않고 평안함을 주기 때문에 그런 교회의 일원으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거룩한 공동체로 남고 싶어 한다.

요즘 검사들이 도마 위에 올라있다.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이 정결치 못하면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영적인 원리도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불하고 산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세상과 천사들을 판결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인데 판결 받을 세상이나 천사보다 못하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재판석에 앉을 수 있겠느냐는 경계를 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보다 낳을 것이라고까지 권면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서 옷 입혀 주신 의를 더럽게 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다고 경계하신다. 거룩한 십자가의 희생을 매 순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성결을 지켜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