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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7:1~9 2010-05-30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지난 시간까지 사회 속에서의 부도덕이 교회 속에 들어와 있음에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윤리와 도덕부분을 다루면서 세상 삶의 도덕률을 넘어서는 교회의 순결과 성도의 구별됨을 지적했다면 여기서부터는 더욱 신앙과 교회의 바른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접하게 되는데 일세기의 삶의 문제들 중에서 특히 금욕주의와 쾌락주의의 극단주의적인 양상을 경계하는 내용들이다.

특히 오늘 말씀의 시작을 볼 때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에게 질문을 했었거나 이미 과거에 다루다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관련된 것들임을 짐작하게 된다. 주로 “~에 관하여, ~에 대하여” 라는 형식으로 뒤에서도 계속 되어 이는 것들을 읽을 수 있다.(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8:1, 신령한 것에 대하여12: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16:1,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16:12)

아직도 신앙적인 체계가 적립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우리에게처럼 신약성경 전체를 갖고 있지 못한 가운데서 이런 사도와의 교육에 대한 과제는 대단히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성경 66권을 다 손에 들고도 혼란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보면 일세기에 성령의 충만이 아니었다면 신앙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이 7장에서는 신앙인들의 남녀의 결혼에 관한 부분들의 중심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고 특히 가정들이 허물어져가는 오늘 우리시대에도 분명한 혼인의 가치를 보여준다고 하는 데서 대단히 중요하다.

에덴에서 깨어진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회복된 은혜와 사랑의 주님을 여기서도 깨닫게 된다. (때문에 때문에→거룩하여 지고)

결혼의 이유에서부터 당시에 부부 중 한 쪽만이 믿게 된 경우의 자세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리라는 기대 속에서 혼인과 홀로 사는 것의 유익이 다른 것을 가르치면서도 이러한 교훈이 주님께서 직접 주신 것과[10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바울 사도의 의견이라는[12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차이와 더불어 권면을 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어떤 부분에서도 애매함이 없이 분명한 길과 방법을 일러 주심으로서 천국을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것에도 혼란이 없도록 배려하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적어도 성경만큼이나 인간의 삶의 여러 부분들을 명확하게 가르치는 책은 세상에 어느 경전이나 책에도 없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을 통한 죄인 구원이라는 절대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속 받은 백성들이 천국에 이를 때까지 어느 역사나 시간 속에서 어떤 형편에서든 처신과 삶의 기준(road map)을 분명히 제시 하고 있다.

오늘부터 주어지는 이 남녀부부간의 결혼관과 처신을 잘 이해하고 소화해서 보다 행복한 부부관계와 가정을 이루어가는 …



Ⅰ. 혼인의 이유.(1~2)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서 남녀는 각각이 아니라 엄밀하게 하나이고 이 완전한 하나를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창조의 섭리가 지속되는 것 역시 남녀를 지으신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이다.

이런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서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승천하시면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하시고 사셨다. 이런 약속 때문에 주님께서 속히 다시 오신다면 구태여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보다는 신앙에 더욱 정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신앙인들 중에는 더욱 많았던 것 같다.

계속 이 7장을 상고하면서 이런 부분을 생각하게 되겠지만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의 기뻐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이 등한해 지지 않겠는가!’ 라는 문제까지도 대두하게 된 것 같다.(32~33)

또 당시의 금욕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하늘을 소망하는 성스러운 사람들은 남녀의 부부관계조차도 하지 않아야 한다.(딤전4: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고 경건의 기준을 정했던 것 같고, 당시의 영지주의 자들은 여기에 지나서 영혼만 거룩하게 보존한다면 육신이야 무엇을 하든 문제가 없다는 지나친 영육의 전혀 다른 삶으로 유혹하는 부류들도 있었던 것을 본다.

아마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들 가운데서 고린도 교우들은 바울 사도께 결혼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보냈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이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1)라고 이 문제를 설명하려는 것을 본다. 26절에도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는 표현을 봐서도 당시에는 주님께서 오심이 곧바로 이루어 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봐서 이것이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인 표현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2)

이것은 적어도 신앙인들 조차도 결혼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잘못된 육체의 욕구의 분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결혼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이를 방지하게 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

5절 하 반절에서도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고 9절에서도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이런 모든 말씀들은 청춘의 욕구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장치로 결혼이 필요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남녀의 창조의 질서는 반드시 1:1의 관계 속에서 해소하도록 주님은 의도하신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죄가 되고 양심에 고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에덴에서부터 주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 하니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하여,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셨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구약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동행했던 에녹이라는 사람의 “…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창5:22) 라는 기록 속에서도 이를 확인하게 된다.



Ⅱ. 부부의 도리.(3~5)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 의무를 다하라!(3)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데는 분명히 혼자 사는 것보다는 어느 부분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둘을 지켜가기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3)

성경은 절대로 어느 한쪽에만 강조하지 않고 쌍방에게 공평하게 당부한다. 오늘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이러한 균형이 깨어지는 것으로 상대에게만 의무를 강요하고 자신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는 데서 불행해 지는 것이다.

성경은 부부의 관계를 단순히 육신의 관계로 끝나지 않고 이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까지 승화 시키고 있다.(엡5:22~33)

2. 권리는 상대에게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는 상대에게 맡기도록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자신의 몸도 상대의 몸도 자신의 원대로 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만약에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를 따라 산다면 불행할 이유가 절대로 없다. 아내든 남편이든 자신의 몸을 무기로 써서는 절대로 안 된다. 또 이런 원리를 아는 신앙의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분방은 신앙적인 이유에서만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요즘 사람들이 싸우고 나면 베게 들고 거실로 나오기 바쁘다.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렇다고 기도를 핑계해서도 안 된다. 핑계는 언제나 정당하지 못할 때 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옳을 때만 정당할 수 있다.

이래야 하는 이유조차도 성경은 주고 있다.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영적이지 못한 이유에서 분방한다면 그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탄이다. 부부간에 조그만 틈만 생겨도 그 사이에 사탄은 비집고 들어 온다는 경계이다.

분방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회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라는 말씀과 함께 싸움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해결되어야 함을 교훈한다. 든든한 부부관계가 든든한 교회를 지탱한다.



Ⅲ. 자신의 은사대로 살아라!(6~9)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적어도 주님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던 바울이지만 자신처럼 살 것을 강요하지 않음을 본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7f) 복음을 위하여만 살기 위해서 가정을 갖지 않았던 바울은 사실 그러한 자유를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해의 위협이 늘 있었던 일세기나 또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신앙적 소신이 약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할 때 더 견디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이것이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7b)

주님께서 결혼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직접 주신 교훈이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 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마19:12-공동]고 말씀하신 바 있다.

베드로는 바울과 같은 남녀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그런 은사는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을 가졌고, 물론 주님을 만나 뵙기 전부터 한 여인의 남편이었었다.

그러면서도 싱글의 자유에 대하여 가능한 자들에게 권면하기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8) ‘그냥 지내라’가 아니라 “좋으니라”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권면 역시 뒤에 가서 당부하는 당시의 긴박한 박해 때문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결코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꼭 그래야만 바른 신앙이 아님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9) 사실 이 청춘의 욕구도 오래가지 못하고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히려 더 못하다는 권면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모든 가르침은 결국 주님의 절대적인 계명이거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라는 사실을 이 말을 시작하면서 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6)

바울은 성령의 사람으로 비록 홀로 여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남녀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음을 본다. 그러면서도 바울 사도는 언제나 육신적인 것 보다는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에 바울이 마지막에 로마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때로 가족 즉, 부부는 홀로보다 더 많은 힘과 격려를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문제 역시 영적인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왜 그러냐 하면 가정이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한다면 가정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켜질 수 있음을 성경은 교훈해 주고 있다. 그래서 ready made를 권장하는 것이고 신앙을 제대로 하는 부부라면 절대로 불행해 질 수 없음도 확신한다.

가정은 음행 할 수 있는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주셨고, 부부가 서로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자기 몸에 대한 권리는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다툼은 잠자리에 까지 가져가서는 마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의 해야 한다. 아무나 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개그의 한 제목처럼 “싱글 천국 커플지옥”이 풍자적인 것일 찌라도 옳지 못하다. 이러한 결혼의 삶 역시 말씀의 교훈대로 순종하여 보다 행복한 섬김과 삶이 되기를 …